- 마흔의 내가 나에게 선물한 유럽여행, 2002
아침에 눈을 떠서 창문을 열어도 아침 공기가 그리 상쾌하지 않다. 처음에는 간소하고 깔끔하게 느껴졌던 이 수녀원 안의 객실이 이제는 좀 답답하다. 뭔가 활기가 결여된 공간. 이곳에 음악을 틀어놓고 싶다.
난 아파트에는 못 살 것 같다. 어제' Villa d'Este'에서도 혼잣말했듯이 ‘난 숲에서 살 거야.’ 정원이 있고, 정원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나무와 산이 보이는 그런 곳이라야 한다. 내가 살 곳은.
슬슬 챙겨서 나가 볼까나.
이곳 수도원의 성당을 돌아보았다. 지하에는 서기 1600년의 벽화가 발굴되어 있고 당시의 무덤과 건물의 잔해들이 유리 바닥을 통해 보인다. 성녀 수산나를 소재로 하여 신약과 구약의 두 가지로 나뉘어서 그려진 긴 벽화가 있고, 천정도 로마의 다른 성당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장식들로 빽빽했다. 더러 관광객들도 드나든다. 젤뚜르데가 어느 한국인 관광객에게 성당 내부의 장식들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테르미니 역에 가서 베네치아에서 뮌헨으로 가는 야간 꾸셋을 예약했다. 밤 열 시 사십 분에 출발해서 아침 여섯 시 반에 도착할 예정이다. 주변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 들러보기로 했다. 1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내가 다모임에 올려놓은 영문 글을 영운 선생님이 번역본으로 다시 올려주셨다. 밴드팀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여행 중에 나를 조금씩 발견해 가고 있다고. 그것이 본래 이 여행을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이라고.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고. 난 그 모든 것을 'seeing'이 아니라 'meeting'이라 부르고 싶다고.
나는 여기 로마에 있고 너희는 그곳 한국에 있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더라도 열정을 갖고, 우리들 각자의 길을 가야 할 것이라고. 너희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고. 빨리 다시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그것을 보고 밴드 멤버인 다운이가 토요일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하겠다는 각오의 글을 올려주었다. 기쁘다.
‘내가 찾아가고 있는 나’는 어떤 나일까? 반성하는 나, 끊임없이 발전을 지향하는 나, 관계들 안에서의 나. 여행 중에 만난 다른 여행자들, 민박 주인들, 거리에서 내게 길을 가리켜주고 내 짐을 들어준 사람들. 표피적으로나마 새롭게 다가온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여행지에서 서로 눈길을 피하며 스쳐가거나 희미한 미소를 주고받았던 한국인들.
그들에게서 보이는, 그들과 비슷한 나 자신의 초상. 표정을 가꿀 줄 아는 나, 남들 앞에 당당하게 나를 드러내면서 더욱더 자신감을 쌓아가고 있는 나, 수도원 식구들과의 만남. 파드레, 마드레, 젤뚜르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부원장 수녀님. 내게 매일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보내주신 고흥 수녀님. 내가 'little bird'라고 불렀던, 나의 밝음과 나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아주었던 카테리나 수녀님.
그리고 내 동생, 젤뚜르데 수녀와의 만남이 있었다. 한 가족이면서도 40년 가까이 미미한 존재로 각자 떠돌았던 우리의 만남. 그 안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얘기들 안에서 재인식되었던 우리 가족들 모두와의 만남. 지나간 우리의 개인사와 그것을 딛고 이제 각자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토대 위에 꿋꿋이 서있는 현재 우리들과의 만남. 앞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가족들에게 보여주게 될 우리들 존재의 의미. 이런 모든 만남이 있었다.
또 하나는, 그것이 내 지적인 허영에서 비롯된 것이었든 다른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껏 내 안에 쌓아왔던 모든 지식과 취향이 내 여행을 한층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 혹은 자신감이었다.
‘내가 이걸 해서 뭐하나?’가 아니라 ‘해놓으니까 다 쓸모가 있더라’, 더 나아가서 ‘더 풍요롭게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더라’, ‘씀씀이에 낭비를 줄여서 또 이런 기회를 만들자’,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자’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오고 간다.
한편, 여행 중에 있었던 오류에 대해서도, 생기지 않았으나 생길 수도 있었을 일들에 대해서도,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말과 글이 그들에게 또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던가에 대해서도.
젤뚜르데와 나누었던 대화들도 생각난다.
현재의 자기가 되기까지, 그 바탕에는 반드시 뭔가 이유가 있다. 또 내가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생각 속에는, 그렇게 여기게 만든 근원적 환경이나 상황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기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더불어 위축되어있던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다는.
또 어떤 사람의 자체를 사랑하는 것, 그가 못나 보이든, 비열한 짓을 하든, 그의 과거나 현재가 어떤 모양이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 하는 것. 나에게는, 또 나는 누구에게 그런 존재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남녀 간의 사랑도 로맨틱한 감정만이 아닌,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진짜 사랑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사랑이란 존재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러기엔 난 자기애가 너무 강한 사람이다. 로맨틱한 감정이야 있겠지. 욕망도 있을 테고. 그러나 사랑은? 내가 알기로는 아마 없을 것이다.
며칠 로마에 머물면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씻고 마사지도 해서 얼굴이 통통하고 반들반들하다. 이제 화장기 없는 내 얼굴에 스스로 익숙해졌는지 심란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젊고 빛나 보인다.
지중해를 보지 못해 서운하다. 로마에는 높은, 혹은 최신 건물이라는 게 없다. 티볼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외관이 유리로 된, 그것도 낮은 현대식 건물을 딱 하나 보았을 뿐이다. 새로 짓거나 보수를 해도 모두 주변 건물에 맞추어 튀지 않는 색으로 칠하고, 하다못해 낮은 아파트 같은 곳의 베란다도 건물과 모두 비슷한 사각형에 창문 같은 커튼을 달고 있다.
로마 시민들은 또 유적들을 보존하기 위해 좁은 도로를 그대로 둔 채 스스로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 것 같다. 로마에서만 산 사람이라면 하늘을 찌를듯한 건물들로 가득한 서울도 참 신기하고 대단한 곳이라고 여길 것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곳의 차들이 대부분 소형차인 것은 딱히 로마 시민들이 검소해서가 아니다. 유적 보존을 위한 좁은 도로 사정 상 작은 차가 아니면 도저히 굴릴 상황이 못 되는 것이다.
오늘 혼자 걸으며 보았던 로마 거리의 오토바이족들이 인상적이었다. 대낮에도 불을 밝히고 다니는 오토바이 무리가 신호 대기 중이었다. 헬멧 아래 긴 머리를 날리며 꼿꼿한 자세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로마 여자들. 건강하고 당당해 보인다.
한 도시를 가이드가 있는 투어 버스로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파리에서 시도해볼 걸. 너무 일차원적인 여행이 아닐까 하는 자만심에 그냥 패스했었는데 후회된다.
파드레가 이틀 동안 차로 안내해준 덕에 로마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햇빛이 너무 뜨겁고 숨이 턱 막히도록 더운 한낮의 로마. 이 더위에 한 번 가본 곳을 다시 가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롭게 갈만한 곳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오전에 보르게세 공원을 돌며 그냥 젤뚜르데랑 오래 얘기만 했다. 그러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서 판테온은 달리며 보다시피 했다. 로마에서 7년을 살았지만 젤뚜르데는 요 며칠, 비로소 주체가 되어 조금이나마 길을 익혀보았다고 한다.
오늘 같으면 내가 경탄해마지 않던 로마가 여기였나 싶다. 늘어진 엿가락처럼 흐물흐물해지게 만드는 날씨 속에 별 목적 없이 먼 길을 걷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로마를 떠날 때가 확실해진 것 같다. 내일 피렌체로 간다.
테레사 수녀님이 내일 가면서 먹으라고 자두 한 봉지와 다른 이에게서 받아두었던 선물도 보내주셨다. 나는 여기서 많이 받기만 하고 간다. 고마운 마음만 간직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돈도 많이 아꼈다. 숙식에, 자가용 관광에 거의 200유로 가까이 아꼈다.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극히 절약해야겠다. 스위스까지 남은 일정은 10일 정도다. 숙식만으로도 300유로 정도 예상된다. 차비와 관람료 합하면 지금 남은 여행자 수표로는 빠듯할 것 같다.
새삼 배낭여행을 새로 시작하는 것 같다. 로마는 배낭여행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젤뚜르데에게 50유로를 남겼다. 살다 보면 간혹 조금씩이라도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이다. 여행하면서 조금씩만 더 아끼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