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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섬 탐험

- 마흔의 내가 나에게 선물한 유럽여행, 2002

by Annie


빵 한 개와 밍밍한 커피 한 사발의 부실한 아침 식사였지만, 정신은 또렷하고 마음은 기대로 설레며 풍족하다. 성모는 눈곱도 못 떼고 나왔다가, 아침을 먹은 후에 가서 씻고 체크아웃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밖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썼다.


문을 나서면 늘 더 큰 세계가 우리를 맞이해준다. 뮌헨행 야간 쿠셋은 예약이 모두 차고 없다. 2등석 좌석 하나만 우선 예약해두었다. 역에서 여행자수표를 환전하려니까 200유로에 19유로를 수수료로 떼고 준다. 도둑들. 그 돈이면 선물 쇼핑 한 가지로 쓸 수 있는데.


성모와 함께 무라노 섬에 먼저 갔다. 유리 세공품들을 볼 수 있었지만, 별로 눈길을 끌지는 않았다. 무라노에 가기 전, 청과물 시장에 들러 과일을 샀다. 싸고 풍성했다. 맛도 물론 좋을 것이다. 방파제 위에 앉아 수상버스를 기다리면서 청포도를 뜯어먹는데 진짜 맛있다.


무라노 세공품 공장을 잠시 견학하고 어디 쉴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땅치 않았다. 아파트 앞 공터 그늘에 앉아서 점심을 펼쳤다. 성모는 내가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무슨 선생님? 미술? 사회?”하고 묻는다. “영어 선생님.” 모두들 내가 영어 선생님이라고 하면 의외인 듯 바라본다.


내겐 초코파이 5개가 있었고, 우리가 함께 산 과일은 멜론 1개, 청포도 2송이, 자두 열 개 정도, 그리고 망고 2개였다. 멜론을 깎아서 먹어보니 음~ 그 맛이 정말 상큼하다. 성모의 휴대용 칼이 유용했다. 전혀 초라하지 않은 점심이었다. 조금 먹으니 배가 불렀는데 성모는 한없이 먹는다.


비둘기 떼가 모여들고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앞의 아파트에서는 불쾌감인지 불안감인지 창문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먹으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얘기한다. 결국 음식을 다 털어먹고서야 성모는 일어난다.


이번엔 부라노 섬으로 간다. 정말 한적한, 볼 것이라곤 없는 섬이었다. 건물들마다 새로 칠한 페인트, 파랑, 하양, 노랑, 빨강 등의 원색들이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다. 약간은 촌스럽게 빛난다. 이곳에는 레이스나 식탁보 등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부라노 섬에 이르기까지 너무 졸리고 지루해서, 이제 성모랑 서로 헤어져서 가자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라노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었다. 어젯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멍하기까지 하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 나니 그래도 정신이 든다.

모퉁이를 돌아서 쭉 걸어갔더니 웬걸? 아주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난다. 사진을 찍었다. 잔디밭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그 풍경을 바라본다. 한적한 호수 위로 날렵한 배들이 활기차게 오가는 게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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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곳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충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지금은 연세대학교 화학과 4학년이라고 했다. 대학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군대는 헌병으로 마쳤고, 부모님 말씀을 대체로 잘 따르고, 나름대로 바르게 큰 청년이었다.


어릴 적(초등 2학년)에는 물건을 훔치기도 하다가 엄마에게 들켰는데, 엄마가 서럽게 우시는 바람에 그때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는 나쁘다고 생각되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나이 때는 한두 번쯤 부모님의 호주머니에서 푼돈을 슬쩍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5학년 때 공부에 신경도 많이 쓰고 매도 때리고 한 선생님 덕에 공부를 시작해서, 지금의 대학에 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종교는 불교. 연대의 채플 과정에 반발도 있지만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고. 학창 시절 좋았던 선생님에 관한 얘기, 고등학교 때 하고 싶어서 야간 자습 끝나고 밤 11시부터 12시까지 했던 킥복싱, 대학에서 적십자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으며 ‘공부할 땐 짧게라도 확실히, 놀 때도 확실히’가 신조라고.

클래식 음악, 특히 ‘마왕’을 좋아했다고. 교양이 깊지는 않았지만 솔직 담백하고 다변에, 건전한 사고의 막내 티가 나는, 어려 보이는 청년이었다.


마지막 행선지인 리도 섬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에 탄 배는 컸다. 큰 배 위에서 바라보는 베네치아 앞바다는 장관이었다. 우리는 또 난간에 기대어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바다 가운데에 방파제처럼 둘러 쳐진 나무 막대기들에 대한 추측들을 주고받았다.


리도 섬은 무척 큰 섬이라는데 해변으로 가는 길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안다고 한다.

슬슬 배가 고파져서 우리는 가게에 들러 빵과 과자, 치즈, 요구르트, 맥주 2캔을 사들고 걸었다. 도중에 길을 놓쳐서 샛길로 빠졌다가 과수원 안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나무 위에 먹음직스럽게 열린 토마토와 자두, 망고. 너른 풀밭 위에 드문드문 자리한 농가들.

이런 곳에서 아침에 일어나는 기분은 정말 좋을 거라 생각하며, 길을 잃고 헤매긴 했지만 참 좋았다.


가도 가도 해변은 보이지 않고 드디어 해가 기운다. 엄청 많이 걸은 후에 해변에 도착했을 땐, 해도 거의 져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해가 진후의 노을은 크고 강렬한, 검붉은 구름들을 거느린 채 온 바다와 하늘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 강렬함은 머나먼 나라의 외딴섬에 막 착륙해서 접하게 된 경이로움 같았다.


방파제 돌 위에 사 가지고 온 먹 거리를 펼치고 앉으니 식탁도 풍요롭게 느껴진다. 그 광활한 해변에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이었다. 맥주 캔을 부딪치며 정말 유쾌한 여행이었노라고, 베네치아를 못 잊을 거라며 우리는 즐거워했다. 다 먹고 일어서니 어느새 주변이 어둑해졌다.


우린 팍팍한 모래사장을 뛰다시피 걸었다. 돌아가는 길도 모른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빈 해변은 더욱 어두워졌고, 우린 확실하지도 않은 밤길을 걷고 또 걸었다. 해변을 벗어나 캠핑장을 지나고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상점에서 물어보니 이 인적 없는 길로 3킬로를 더 걸어가야 한단다.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조금 더 가니 그나마 있던 가로등도 없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길 입구가 어슴푸레 보인다. 그 어두운 길을 걸으면서 내가 ‘우린 사람만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니까 성모 왈, “한 사람 정도는 제가 보호할 수 있죠. 제가 있잖아요.” 한다. ‘그래? 그럴까?’


어쨌든 어두운 길을 별자리도 보며 농담도 해가며 부지런히 걸었다. 그는 인도 여행을 한 사람이 들려주었다는 괴담을 늘어놓았다. 인도 여행을 떠난 부부가 있었는데 여행 중에 아내가 실종되었다고, 천신만고 끝에 찾았지만 부인은 장기들이 적출된 상태로 높은 벽에 사지가 묶여 있었다고. 떠도는 괴담일 뿐이었지만 너무나 무서운 장면이 상상되었다.


우린 빨리 걷느라 숨이 차서 헐떡이면서도 얘기와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선착장을 찾았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배가 떠나버렸고, 10시가 넘고, 10시 40분이 되도록 배가 안 온다. 성모가 타야 할 로마행 야간열차는 11시 40분에 출발하고, 나는 11시 30분이면 호스텔 문이 닫힌다. 10시 50분쯤 배를 탔는데, 한 번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갈아타야 한단다. 열차 시간 내에 도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시간이다.


성모와 나는 다시 난간에 기대어 밤바다를 본다. 지치고 시간에 쫓기면서, 오늘 밤이 정말 막막하면서도, 우린 또 밤바다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미 기차는 놓쳤고, 그는 역에서 노숙하고 새벽차를 타겠다고 했다. 내가 “같이 노숙해줄까?” 했더니, 그는 “아뇨, 편히 주무셔야죠.” 한다.


배에서 내려, 그도 나도 서로 다른 배로 갈아타야 했다. 급히 헤어지면서 내가 걱정스러워서, “어떡해.” 하자 그가 말한다, “연락드릴게요, 여행 잘하세요.” 한다. 짧은 악수를 하고 배가 떠난다. 홀로 남겨진 느낌. 11시 4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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