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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19. 2022

혼자서 제주 본태 미술관으로

- 3일간의 제주 여행, 2019


  낯선 곳에서 혼자 탐험에 나서는 것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괜히 한번 웃어보고 발걸음도 가볍게 거의 춤추듯 걸어본다.


  그러다 내가 탄 시외버스는 기름 냄새가 심해서 멀미가 날 것 같았다. 택시와 버스의 차이다. 택시는 쾌적한 환경에서 바깥 풍경까지도 한껏 즐길 수가 있다. 그러나 버스는 냄새나고 털털거리고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 때문에 창밖의 풍경을 볼 수도 없다.      


  말이 시외버스지 시내버스만큼 정류장이 많았다. 좋은 점은 요금 또한 시내버스처럼 1,100원밖에 안 된다는 것. 37,000원과 1,100원의 차이다.      


  여행자 안내소에서 알려준 대로 동광 환승 센터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택시로 본태 미술관에 가는 길은 인적은 물론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이 외지고 굴곡진 길이었다. 숲길이라기에는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이었지만 양쪽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숲으로 이어져 있어서 대낮임에도 조금 무서웠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기념품 가게 입구에 리셉션 데스크가 있고, 직원 두 명이 2만 원이라는 거금의 입장권을 판매하며 안내하고 있었다. 그중 여자 직원이 내게 호텔 투숙객이냐고 물었다. 

  “아, 이곳에서 호텔도 운영하나요?” 했더니 그녀가 그런다. 

  “아뇨, 빨간 원피스에 긴 머리...” 

  “아~” 순간 난 그녀를 향해 반가운 웃음을 터트렸다. 사라가 그녀에게 알려준 정보대로 나는 한눈에 알아볼 인상착의였던 것이다. 유쾌하게 기억되는 순간이다.  

    

  미술관 관람 전에 이곳 카페에서 브런치와 커피를 먼저 마시고 싶었는데, 카페는 일단 전시관 몇 개를 지나야 갈 수 있는 곳에 있어서 직원이 알려준 관람 순서대로 5전시관부터 갔다.      


  그 전시관 앞에는 예쁜 정원이 있었다. 정원 끝에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여러 개의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은 분수대들이 귀여워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물을 뿜는 조각상들의 사진을 각각 따로 찍었다.     







 

  5전시관은 조선 후기 양반가의 생활 용품들로 시작되었는데, 단아하고 기품이 있어서 흐뭇했다. 진열 방식과 설명에 따라 똑같은 전시품들도 무척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 곳이었다.     

  

  병풍 위의 문자들은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한 한자들이었는데 그 시절의 도안으로는 놀랍게도, 서양 남자 같은 모습의 문자 도안들이 있었다. 내가 휴대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있으니까 직원이 다가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있다고 한다.     

 

  다른 병풍 화도 산수화인데 문양의 구성에서 미니멀한 현대 디자인의 면모가 보여서 의외였다. 사찰을 지키는 사자상의 모습들이 모두 익살스럽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불가에서 세속의 번뇌를 이겨내고 인간 중에 가장 높이 깨달은 이들을 나한이라고 하는데, 그곳에 전시된 나한상들은 평온하기보다는, 번뇌를 끊어내느라 힘들었는지 몸과 얼굴이 모두 괴로움과 인내로 일그러진 듯 보였다. 나이 든 일본인들에게서 보았던, 극한의 인내를 드러내는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시관 가운데 불상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나이 지긋한 직원이 관람객들에게 불상들의 자세와 손 모양에 대한 해설을 해주었다. 불상의 손 모양들이 몇 가지로 나누어져 있고, 의미하는 바가 각기 달랐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처음 들었다.   

  

  3, 4 전시실은 별 특색 없는 전시였다. 그곳을 나와 1, 2 전시실을 향해 칸막이 같은 작은 벽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더니, 이 박물관 건축의 백미가 시원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기와를 올린 하얀 담장이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고 그 사이를 강처럼 흐르는 검고 얕은 물, 그 물은 아래층 담벼락으로 흐르듯 떨어지고 있었다. 







 

  그 얕은 강은 그것이 디자인을 통한 인공이라는 것을 굳이 드러내 보여주고, 각기 다른 길이와 면, 원근법을 이용한 간결한 선들이 흑백의 미니멀한 색감과 어우러져 현대적인 조형미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창문 같은 사각의 프레임은 전경의 한 토막을 창문에 담은 듯 보여주고, 그 사이로 공기와 바람이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관 안의 작품들이야 다른 대형 미술관의 것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뛰어난 작품인 그곳의 건축이다.     

 

  원근법 상의 소실점에 이르면 그 아래로 노천카페가 있고, 그 앞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과 아래층 1, 2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중간 지점에 카페가 있다. 위치상으로 그 연못은 카페에서 내다보이는 근사한 전경이기도 하다. 











  실내 카페 공간은 좁은 편이었지만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야외 카페와 연못으로 이어진다.      

  이미 두 시 반을 넘겨서 배도 고프고 커피도 필요했다.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그곳에는 전복 해물 짬뽕, 돈가스 등의 메뉴도 있었지만 너무 무거울 것 같아 기본 우동을 시켰다. 맛도 개운하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배가 불러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1, 2 전시관은 현대 미술을 전시하고 있었다. 백남준 외 몇몇 유명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곳의 전시 작품들도 익히 눈에 익은 것들이어서 이 미술관의 건축과 공간 배치에 비해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곳은 맨발로 들어가야 하는데 1전시관의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면, 미로 같은 작은 사각의 면들이 방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건축과 전시의 일부였다. 이 미술관을 설계한 안도 타다오가 일본인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일본풍의 느낌이 강했다. 








  건물 밖으로 나와 귀퉁이를 돌면 위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보인다. 그곳으로 올라갔더니 넓은 루프탑이 나오고 사방이 뻥 뚫린 그곳의 조망이 인상적이었다. 회색 구름 아래 멀리 한라산인지 일출봉인지 평지 위에 솟아있는 모습이 장엄했다.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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