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ie Sep 03. 2021

나를 울린 가우디(1)

 -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그리고 구엘공원


 

  어제는 가우디 건축의 첫 탐방으로 까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에 갔다. 카사는 집이나 저택을 가리키는 말이고 바트요와 밀라는 그 저택의 주인 이름이다. 이 두 저택의 건축은 주택으로서는 내 평생 처음 보는 독특한 양식이었다. 


  가우디는 모든 건축의 형태를 나무나 잎사귀, 돌고래나 박쥐, 새 등의 동물과 그 뼈, 해골, 곤충, 조개껍데기 등과 같은 자연의 형상에서 따왔다고 하다. 그것을 알고 그의 건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원래의 형상들을 유추해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들도 카사 바트요의 풍경이 되어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는 너무나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미술관 관람을 할 때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 두 저택들을 숨죽여 돌아보고 난 후에도 나는 기진했다. 게다가 토마스를 놓치고 혼자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조금 쓸쓸하고 공허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에’에 갈 건데, 아직 메트로나 시내버스를 타보지 않아서 걱정이다. 인터넷으로 구엘 공원을 검색해보았다. 아침 8시 이전에 가면 7유로인 입장료가 무료인 데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니, 차라리 택시를 타고 일찍 가면 그 편이 나을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시 반쯤, 호스텔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스페인에 가려면 정말 기본 적인 말이나 발음 형태 정도는 익혀서 가야 마땅하다. 내가 아무리 ‘구엘 파크’라고 몇 번씩을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 택시 기사는  나를 두고 그냥 떠났다. 두 번째 기사가 이렇게 되물었다.

  “빠르꿸?”

  “아! 맞아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에 올랐다.      


  8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지만 여전히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약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갖고 갔던 모자를 쓰니, 우산 대용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한국인 여행자들과 마주쳤다. 외국 여행 중 한국인과 마주치면 서로 반가움보다는 어쩐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데, 그건 무슨 심리일까?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외국에 나갔을 때는 외국의 풍광, 그리고 국내 여행과는 다른 경험을 갖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국내에서 마주치는 풍경이나 사람들을, 맘먹고 나선 외국 여행지에서까지 보고 싶겠는가? 


  그래도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참 편하고 좋은 점이 많다. 한국 여행자들끼리도 마주치면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나눌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눌 일이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여행은 일상이 아니므로, 분명 서로 다른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비 내린 아침의 어둑한 구엘 공원


  구엘 공원의 타일 구조물들은 워낙 기대가 컸던 탓인지, 큰 감동은 없었다. 이게 전부인가 하며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 그곳에서 긴 회랑을 만났다. 

  흙과 돌로 이루어진 작은 기둥들이 마치 뼈대가 드러난 지붕 살들처럼 뻗어 있다. 거창하고 세련된 느낌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정겨우면서 독특하다. 내가 앞으로 스페인 여행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가우디 건축들의 서막이었다.


  입장료를 받는 곳은 공원의 작은 중심부였고, 여러 개의 출구가 있는 그 중심부를 벗어나면  군데군데 호젓하면서도 멋진 곳들이 많이 숨겨져 있었다. 길 양편으로 탑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고, 그 길들은 산책로처럼 길게 이어졌다. 



이 구조물의 형태는 나무 같고 질감은 나무껍질 같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지만 그래도 맞고 다닐 만했다. 비가 오니 날씨가 쌀쌀했다. 한국을 떠날 때 얇은 옷만 챙기면서, ‘따뜻한 옷이 필요해지면 스페인에서 사 입지 뭐’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면 꽤 쌀쌀했고 낮에도 햇빛은 따뜻한데 그늘에서는 서늘했다. 


  그래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겨울 코트나 패딩 점퍼에서부터 스웨터, 반팔 옷, 민소매 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의 옷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군상들의 어느 옷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사람들도 그리 추워 보이거나 더워 보이지 않는 오묘한 날씨였다. 

  내 옷차림은 얇은 편이었지만, 그도 밤이면 그저 조금 쌀쌀할 뿐 크게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택시를 타고 시내 ‘자라’ 매장으로 갔다. 자라는 스페인 브랜드라 한국에서보다 값이 싸서, 관광객들의 쇼핑지로 손꼽힌다는 말을 들었던 터이다. 마음에 두었던 전천후 집업 같은 것은 없고, 기대했던 것보다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조금 요란한 디자인의 옷들이었다. 


  크고 너풀너풀한 어깨 장식이 달린 밝은 회색 니트를 골랐다. 세일 폭이 커서 가격이 만 오천 원인데, 품질이 좋고 따뜻해 보였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입지 못할 난해한 옷이었다. 그래도 길고 헐렁해서, 입고 있는 타이트한 자주색 니트 원피스 위에 무심하게 걸쳐 입어도 되고, 허리에 동여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후로 이 옷은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심지어는 잘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내 몸에 붙어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된다.

     

  비가 내려 추운 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한국에서처럼 근사한 카페를 찾기란 쉽지 않아서 한참을 추워하며 헤매야 했다. 카페를 하나 찾긴 했으나 바라던 만큼 따뜻하지도 아늑하지도 않았다. 그저 잠시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정도일 뿐. 


  이틀 내내 혼자가 되어, 지나는 곳마다 비처럼 쓸쓸함을 뿌리고 다닌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운 토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