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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3. 2021

삶도 예술도 놀이처럼,
살바도르 달리

- 스페인, 바르셀로나

     


   오늘은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달리 미술관에 간다. 친절한 리셉션 레이디 덕분에 메트로 이용법을 알게 되어, 메트로를 타고 산츠 역으로 갔다. 기차는 깨끗하고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로나’ 역에서 내렸는데 책에서 보기로는 내가 내려야 할 곳이 지로나 역이었던 것도 같고, 그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려서 내심 불안했다. 


  그 후로도 약 30분을 더 가는데 만일 내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거라면, 고속열차라 그 거리 차가 엄청날 터였다. 다행히 내가 내린 피게레스에 달리 미술관이 있는 것이 맞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쯤 더 가서 내린 곳은 정말 아담한 시가지였다.     

 

  달리 미술관은 상당히 큰 규모의 미술관이었다. 막 들어서면 넓은 홀이 나오는데, 삼면이 유리 채광창으로 되어있고, 천정은 4-5층 되는 미술관 전체 높이와 똑같이 높았다. 

  넓은 홀의 정면 벽에는 커다란 달리의 그림이 걸려있다. 달리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갈라의 누드였다. 듣기로는 갈라의 누드와 링컨 대통령의 얼굴이 화면에 오버랩되는 그림이라고 했는데, 1층에서 올려 봐도 2층에서 내려 봐도 내 눈엔 갈라만 보였다. 어디에 링컨 얼굴이 오버랩된다는 거지? 



갈라의 누드



  결국 링컨을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거기서는 신기하게도 링컨의 얼굴만 보였다. 링컨 얼굴을 확대해 보니, 링컨의 코 부분에 갈라의 뒷모습 누드가 보였다. 참으로 신기한 그림이다. 달리는 이 그림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링컨 얼굴에 갈라의 누드가


   달리의 작업은 방대하고 다채로웠다. 그는 자기의 예술을 갖고 노는 사람 같았다. 작업 자체가 삶의 재미이고 놀이인 것처럼. 무릇 예술가는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예술은 고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나 과제이기보다, 놀이처럼 재미있고 신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그게 무겁기만 한 과제처럼 여겨지는데. 


  그러고 보면 난 어릴 때부터 꿈꾸던 예술가는 결국 못되려나보다. 가우디와 달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보며 난 압도되어 버렸다. 예술가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난 애초에 그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금부터 내 꿈은 예술가가 아니라 그냥 예술 애호가인 걸로.’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들은 오랜 세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가들이다. 이 순간에도 예술가로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그들처럼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 이유나 가치가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존재 이유가 그 성취나 결과물에만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달리처럼 진정 작업을 즐기거나 그것에 몰입하는 것이 삶 자체이자 예술행위일 수도 있으므로. 나도 결과물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처럼 즐기면 될 것 아닌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나의 지난 여행을 돌아보고,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면서 보내는 이 시간도 나름 성취감이 있고 즐겁다. 그러다 친구들이 카페에 들르면, 함께 맥주랑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책도 보고, 소소한 쇼핑도 하고.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시간과 생활도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가.

 

  키아가 어느 노벨상 수상 작가의 말을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을 들일뿐이다. 내 글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해 종일 생각하고 그들을 만들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치면서 다듬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머릿속에서 굴리고, 그것을 쓰고, 또 다듬고, 그러면서 또 생각하면 무엇이든 되어 가리라.   

  

  달리 미술관을 다 돌아보고 건물 밖의 정원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너무 따뜻하고 공기도 청량했다. 생각 같아선 벤치에 드러누워 한숨 잤으면 좋겠다. 그러면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이 내 머리를 어루만지듯 스쳐갈 것이다. 


  돌아갈 기차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지만 미술관을 나와서 그냥 걸었다. 조그만 도시라 달리 볼 것도 없는데, 뱅뱅 돌다가 나중엔 너무 많이 걸어서 지쳤다. 혼자 여행하면서 혼자임이 너무 좋을 때가 많지만, 지금처럼 정처 없이 헤매야 할 때면, 누군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자유 여행을 한다는 건 어떤 거냐고 친구가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은... 달콤 쌉싸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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