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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7. 2021

호스텔 여행자인 내가 국영 호텔을 즐기는 법

- 톨레도, 스페인

    

  모든 도시에서의 첫날은 대부분 가장 좋은 날이었다. 톨레도도 그랬다.  그곳에서는 국영호텔(Paradore de Toledo)에 하루, 그리고 호스텔 개인 룸에 3일을 예약했다. 3일로도 도시를 돌아보기에는 충분하므로 오늘은 온전히 이 호텔만을 즐기기로 했다. 

  한국의 유명 연예인 부부가 이 호텔에서 결혼사진 촬영을 했다고 해서 최근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하루 밤에 24만 원이나 하는 비싼 곳이니 어떻게 해서든 그 값을 하게 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톨레도에 도착해서 버스 터미널 주변의 마트를 찾아갔다. 와인 한 병과 치즈, 오레오 쿠키, 생수를 샀다. 호텔에서 점심, 저녁, 아침까지 먹으려면 너무 비쌀 테니 이렇게 두어 끼는 때워야 한다. 터미널에서 멀지 않아 택시비가 5유로도 안 되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룸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호텔 내의 그 전망 좋다는 카페에 나가보았다. 인터넷에서 워낙 칭찬들이 자자했던 터라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야경은 이보다 더 근사하겠지. 한국인 남자 두 명이 사진을 찍고 있기에 나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서 보니 맞은편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바위들이 있는 산이 보였다. 그 바위 위에는 사람들도 두어 명 있고, 그리로 난 길도 보여서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룸은 뭐 특별할 것은 없었는데, 복도 끝 방이어서 직각으로 구부러진 테라스가 정면과 측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모서리 부분에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날씨는 약간 서늘한 정도여서 따뜻한 옷을 걸치면 나와 앉아 있을 만했다. 

  테라스 의자에 앉아 와인을 한잔 따랐다. 눈앞에 톨레도의 전경과 호텔 야외 수영장, 그리고 잔디 정원이 펼쳐져 있다. 기역자로 된 호텔 객실들의 테라스 어디에도 사람의 자취가 없어서 이 넓은 뜰 전체가 그냥 내 앞마당인 듯하다.






  





   늦어지기 전에 아까 보아둔 산에 가려고 밖으로 나섰다. 정원을 내려오다 보니 수영장으로 난 문이 있어서 밀고 나가봤다. 비치파라솔은 있는데 의자는 없었다. 잠시라도 파라솔 아래 몸을 쭉 펴고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좋겠지만 날씨가 서늘해서 그러기엔 무리일 거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며 사진도 찍다가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문이 안 열렸다. 수영장 건너편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곳이 있었는데, 그리로 올라가면 카페의 테라스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그 통로는 카페 잔디 뜰로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뜰과 카페테라스 사이에는 가슴 높이만 한 금속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야외 카페에는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난 그들이 보는 가운데 그 울타리를 넘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냥 대뜸 넘기가 이상해서 그들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아무래도 갇힌 것 같네요.” 


  그들이 도와줄까 물었지만 그냥 혼자 해보겠다며, 먼저 가방과 카디건을 울타리 너머 카페 의자 위로 던졌다. 그리고는 짧은 치마에 드러난 다리를 훌렁 울타리에 걸쳐서 풀쩍 뛰어내렸다.

  “Nice!”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씩 웃고는 카페를 통해서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로 진입하는 긴 길에는 이름 모를 가로수들이 맵시 있게 뻗어있어서 무척 근사했다. 고호의 그림에 나올 것 같은 나무들이었다. 가로수 사이로 톨레도 시가지가 내려다 보였다. 그 멋진 가로수 길을 신기해하며 혼자 걷는 기분도 참 좋았다. 호텔은 거의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 산들이 언덕처럼 보였다. 산을 끼고도는 오르막길을 전문 사이클리스트로 보이는 사람들이 용용하게 오르고 있었다.





  햇빛은 따스하고 바람은 산들거리는데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솜사탕 같은 구름들은 어린 강아지들 마냥 귀여웠다. 길옆은 나지막한 산들로 이어져 있고 군데군데 사람들이 오르내린 흔적이 있었다. 좀 전에 호텔에서 바라보며 가봐야겠다 생각했던 곳도 이 길로 이어지는 것 같아서 옆에 난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아서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나지막한 산들이 걷기에도 좋고 풍경도 좋았다. 


  호텔에서 바라보았던 그 바위산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를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오를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바위를 한 바퀴 돌다 보니 거기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처럼 바위를 깎아놓은 부분이 있었다. 바위 끝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과 빙 둘러선 산 풍경, 그리고 정면에 쓱 다가선 톨레도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동행이 있었으면 신나서 분명히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혼자인 나는 소리는 못 내고, 소리 지르며 웃는 양 하는 표정으로 셀카를 찍었다. 저 비싼 호텔에 와서 카페만 들렀다가 방에서 잠만 자고 갔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호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이 작은 모험을 떠났던 내가 스스로 참 대견했다.


  그렇게 탐험을 마치고 호텔 룸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와인 타임을 시작했다. 담요와 카디건을 두르고 테라스에 나가 앉았다. 와인과 치즈, 크래커를 테이블에 차렸다. 

  테라스 옆에 서있는 커다란 포플러 나무는 보기도 좋았지만, 무성한 잎사귀들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더 좋았다. 수많은 포플러 잎들이 바람과 사랑을 나누는 소리... 거기 그렇게 앉아서 내 몸의 모든 감각으로 스며드는 모든 것들을 즐겼다.



이 호텔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



  저녁 아홉 시가 다 되어 노을이 톨레도의 하늘을 물들이더니 어둠이 찾아들었다. 톨레도 대성당과 알카사르 등 큰 건물들이 환한 조명을 밝히고 도시의 불빛들이 깜빡거리며 사라진 햇빛을 대신했다. 수영장의 푸른빛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밤 분위기였다. 






테라스에서 당겨 본 톨레도 대성당


  난 방과 테라스를 드나들며 와인과 풍경에 취했다. 밤 12시를 알리는 대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대성당의

조명이 꺼졌을 때, 마지막 와인 잔을 비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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