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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7. 2021

포르투에서 마드리드로

- 어느 곳도 그냥 지나가는 곳은 없다

     


  호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여성과 함께 조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엔틱 제품들을 사고파는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여행은 자유로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우리는 조지아 오키프로 시작해서 그림과 사진에 관한 긴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사지 못해서 아쉬워했던 그 화집 얘기를 하며 사진을 보여줬더니,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그녀는 전 날 도착해서 비치에 다녀왔고, 오늘은 호안 미로 전시회를 보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서양 여자들에 비해 여행 동선이 짧고 한정적이다. 그들은 뛰기도 하고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멀리 나가기도 한다. 자주 산을 오르기도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자전거를 열심히 타서, 외국에 나갔을 때 두려움 없이 자전거 여행에 도전해 봐야겠다.     


  난 아침에 만난 그 여성 말대로 가까운 비치나 호안 미로 전시회에 갔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보낸 시간이 길고 지루했다. 다시 서점에 가서 친구에게 주려고 조지아 오키프의 책을 한 권 더 산 것밖에 한 일이 없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너무 피곤해서, 걷기도 앉아있기도 내내 힘들었다. 어떻게 공항까지 가서 마드리드로 넘어갈지, 에너지가 고갈되어 도중에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호스텔이 긴 내리막길 아래쪽에 있어서, 메트로 역까지 캐리어를 앞세우고 뒤에서 밀며 올라가야 했다. 나처럼 공항에 가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도 그들을 따라가면 되니 걱정은 없었다. 


  초로의 영국인 여성들을 따라 갈아탈 기차를 찾아다녔다. 그때까지 나이 많은 단체 여행객들을 보면, 난 나이 들어서 저런 식의 여행은 안 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젊은 할머니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그들은 아직 젊은 편이기도 했고, 활기도 넘쳤고, 동행한 친구들도 있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이드도 없는 자유여행이었다. 저렇게 라면 괜찮겠다 싶기도 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있을 때, 한 승무원이 줄 서있는 승객들을 체크하고 다녔다. 승객들이 좀 더 빨리 탈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내 앞에 오더니 캐리어를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어느 철제함에 내 캐리어를 넣어보라는 것이었다.  내 캐리어는 그 함에 들어가기엔 너무 컸다. 그녀는 내게 15유로의 별도 화물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어떤 한국 청년이 다가와 내 캐리어를 거꾸로 넣어보라고 했다. 그러면 들어갈 수도 있다고. 그러나 여전히 너무 컸다. 그는 내게 캐리어를 열어서 짐을 숄더백에 나누어 넣으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그가 일러준 대로 캐리어를 열고 짐을 다시 정리했다. 캐리어는 가뿐히 그 함에 들어갔다. 그 청년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여행객이었나 보다. 자기 일도 아닌데 굳이 승무원에게 맞서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다니, 너무 고마웠다.    

   

  드디어 마드리드로 넘어왔다. 호스텔은 일단 이틀만 예약했고, 그 후에 상황을 봐서 연장하든지 할 계획이다. 비행기 안에서 보는 노을이 너무 근사하다. 도착할 무렵에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드리드의 야경 또한 너무 멋지다.





  마드리드는 재스민의 말처럼, 그냥 일반적인 대도시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미술관, 가능하면 퓌센 미술관까지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버스 안에서 보니, 환한 조명 아래 빛나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밤에 보는 놀이동산처럼 화려하다.      


  모든 도시에서의 첫날은 호스텔을 찾는 게 가장 큰 과제다. 호스텔을 찾을 길이 없어서 택시를 탔다. 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는데 그 근처까지 가더니 호스텔을 찾지 못한다. 그는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에서 내려 나와 함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는 길에 서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청년에게 물어보더니, 그 청년이 뭐라고 말하자 그 청년에게 나를 인도하고 떠났다.


  졸지에 그 청년은 나를 데리고 길 찾기에 나섰고, 어느 호텔에 들어가더니 리셉션에서 길을 물어보았다. 리셉션의 청년이 또 뭐라고 설명하며, 호텔 밖으로 나와 방향을 가리켜주었다. 그러자 그 청년은 그 방향을 가리키며, 바로 저 앞이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며 떠나갔다. 그래도 확신은 안 섰고 인적 드문 밤길에 혼자 남아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청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지점에 호스텔이 있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12개의 침대가 있는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너 명의 짐이 보이기는 하는데 그 짐의 주인들은 없었다. 모두 아직 안 돌아왔다는 말이다. 

  ‘와우, 마드리드, 센데!’ 

  물을 사러 라운지에 갔더니 그곳은 저녁 시간을 즐기는 젊은 투숙객들로 와글와글 붐볐다. 당구를 치고 있던 한 청년이 나를 보더니, ‘니 하오 마’를 두어 번 외쳤다.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이었다.        


  다음 날, 호스텔 조식은 6유로에 꽤 괜찮은 뷔페였다. 식사를 하면서 옆자리의 걸에게 말을 걸었는데 한국인이었다. 대학생인데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한 달간의 유럽여행 중 11일을 바르셀로나에 할애했다고 했다. 여행 중인 여대생들을 볼 때마다 딸들 생각이 났다.  

  

  내일 톨레도에 가려면 기차표를 예매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급행열차인 렌페를 예약해 보려다 실패했다. 할 수 없이 직접 아토차 역에 가서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표를 사보려고 애썼지만, 그곳에서 30분간을 서서 지켜봐도 성공하는 사람을 못 봤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창구를 이용해보려 했지만 하염없이 늘어선 대기 숫자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표를 끊으려고 두 시간 넘게 허비하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래 그냥 버스 타고 가자.’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갈 기차표는 톨레도에서 끊으면 될 것이다. 작은 역에서는 오히려 쉬울 수 있다.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서 피게레스에 가는 기차표를 사본 적이 있으니까.      


  아토차 역 근처에 미술관들이 모여 있어서 제일 먼저 프라도 미술관까지 걸어갔다. 미술관 관람이 얼마나 쉽게 지치는 일인지 익히 알고 있는 데다, 역에서 많은 시간을 헛수고로 보낸 끝이라 걱정이 좀 되었다. 그래도, 내 평생 가볼 수 있을까 싶었던 꿈의 미술관이었으니, 다시 힘을 내어 지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프라도 미술관의 그림들은 중세시대의 종교화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재미가 덜했다는 평이 있었다. 돌아보니 유명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봐도 봐도 끝이 없는 그 방대한 양에 그만 기진했다.      


  프라도에서 나와 요기를 하고, 소피아 미술관으로 향했다. 저녁 7시부터는 무료입장이라고 해서 조금 기다렸다. 창구 직원이 피카소의 작품들은 2층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큰 미술관에서 피카소만 강조하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과연 피카소 작품들이 많았고 그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도 전시되고 있었다. 게르니카는 사진을 통해 보았던 작은 크기에 눈이 익숙해진 때문인지, 원본은 오히려 그 밀도가 떨어져 보였다. 그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이었지만.


  미술관을 나오니 어둑해지고 있었다. 마드리드에 하루 더 묵는 일정이었더라면, 두 미술관을 하루씩 나누어 좀 더 좋은 컨디션으로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드리드에 가면 재스민을 만나 함께 저녁도 먹고 미술관도 다니자고 했었는데, 연락해 보니 하필 독일에서 남자 친구가 오는 날이었다. 몇 달 만에 보는 남자 친구인데, 내게 할애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혼자 돌아오는데  노을 지는 마드리드의 거리가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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