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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9. 2021

다시,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알렉스 (1)

 


  톨레도에서 마드리드까지,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지난번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산츠 역에서 기차를 타본 적이 있으니, 내려서 호스텔을 찾느라 헤맬 일은 없었다. 전에 묵었던 호스텔을 한방에 찾은 나는 리셉션 걸 앞에 서서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말없이 웃고만 서있자, 그녀는 뭘 도와줄까 물었다. 


  내가 예약했다고 하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오늘은 단체 손님들이 있는 데다 새로운 예약 손님이 없을뿐더러, 빈 방도 없다고 했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호스텔 예약 사진을 함께 확인해 보니 이름이 비슷한 다른 곳이었다. 이런 낭패가 없다. 그녀가 지도를 보고 어떻게 가야 할지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녀도 확실히는 알지 못했다.


  다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한참을 기다려 버스에 탔는데, 차 안이 몹시 붐볐다. 그렇게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려 보니 막막하다. 호스텔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택시를 탔어야 했다. 구엘 공원 앞이니까 8유로면 됐을 일이다.  


  그때부터 한 시간 동안, 나는 대 여섯 사람들에게 번갈아 길을 물어보며 갔던 길을 되짚어가기를 반복했다. 여기서 호스텔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지? 아무 호스텔이나 보이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접어든 길은 45도 정도 가파르게 경사진 오르막길이었다. 캐리어를 밀고 100미터쯤 올라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호스텔에 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내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언덕 끝에 이르러 다시 길을 물어보았다. 상냥한 걸이 구글맵을 검색해 보더니, 직진 후 좌회전해서 50미터 정도 내려가면 된다고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번에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은 언덕바지에, 돌출된 간판도 없이 꽁꽁 숨어 있었다. 룸에 들어가 보니 2층의 침대만 비어 있었다. 여행 중 2층 침대는 처음 사용해 본다. 모두 나가고 아무도 없었다. 


  침대에 시트를 깔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키 큰 남자가 한 명 들어왔다. 톨레도에서 4일 동안 혼자 지낸 데다 호스텔을 찾아오기까지 무척 고생했던 터라, 사람이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영국인이었다. 이름은 알렉스. 구엘 공원과 공원 옆의 산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톨레도에서 나흘 동안 말할 사람 없이 혼자 있다가, 이 호스텔에 도착하기까지의 무용담을 단숨에 풀어놓았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숙모가 지금 바르셀로나를 여행 중이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며 샤워를 하러 갔다.


  잠시 후 한 걸이 들어왔다. 난 또 그녀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녀도 산행을 했는지 몹시 지쳐 보였다. 한참 내 질문에 대답하며 부스럭거리더니, 가방을 들고나가며 인사했다.

  “어디가?”

  “이제 떠나는 거야”

  “그렇구나... 안녕 ”

  그녀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려 난 좀 멍해졌다. 


  샤워하고 돌아온 알렉스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내가 물었다.

  “그러니까.. 이모랑 저녁 먹으러 나가는 거야?”

  “응.. 원한다면 함께 가도 돼.”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난 소리쳤다.

  “가고 싶어.”


  숙모네 커플도 다른 친구들이랑 오기로 했다고, 아마 일행 중에 우리가 제일 젊을 거라고 했다. 이 외딴 호스텔에서 뭘 해야 할지 난감했던 나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토마스와 함께 나갔을 때처럼, 난 그저 알렉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참 좋았다.







  15분쯤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또 구글맵을 보면서 알렉스는 식당을 찾았다. 숙모인 리즈 커플과 그녀의 친구인 제인 커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마치 알렉스의 여자 친구로 그 자리에 함께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그들의 맞은편, 제인의 남자 친구 옆에 앉았다. 그는 5년 전에 아내와 사별했고, 이후 제인을 만나 함께 살지만 결혼은 안 했다고 한다. 제인은 전직 교사였는데 지금은 둘 다 퇴직해서 손주들을 봐주기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퇴직 후의 삶에 무척 만족한다고 했다. 둘 모두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반면 리즈 커플은 오래된 커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만큼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부부가 꼭 함께 백년해로를 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이 들어 사별이든, 이혼이든 헤어지고 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긴 생애, 새로운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하면 나는 지탄을 받게 될까?


  리즈와 제인은 샐러드를, 나는 해산물 빠에야와 와인 한 잔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교적 가벼운 음식을 주문했다. 그들은 와인 한 병을 따로 시켰다. 내가 와인 한 잔을 다 마셨을 때, 제인의 남자 친구가 한 잔 더 하겠느냐며 병의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는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제인도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때 무척 반갑게 대답해 주었다. 디저트를 주문할 때, 난 옆에 앉은 제인의 남자 친구에게 적당한 디저트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도 내게 추천해 준 것과 같은 디저트를 주문했다. 우린 그 디저트에 아주 흡족했고, 그는 몹시 즐거워했다.


  지금까지 여행이 어땠느냐는 질문을 받은 나는 한 달간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했다. 5명의 네이티브 스피커 앞이라 긴장된다고 했더니, 그들은 내 영어가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식사가 끝난 후 계산서를 받은 리즈의 남편이 계산기를 두드릴 때, 제인의 남자 친구는 그에게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가 반반씩 내자고 말했다. 

  난 내 몫으로 30유로를 건넸지만, 제인의 남자 친구가 한사코 만류했다. 정말 즐거웠다고, 정말로 이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그와 제인의 기쁘고 넉넉한 표정이 내 마음을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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