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빅토리아에서 밴쿠버로
시내에서 페리 터미널, 페리 승선, 페리 터미널에서 시티센터 역까지 3in 1으로 연결되는 버스표를 66달러에 끊었다.
그런데 숙소 주인이 2달러 50 센트면 버스로 페리 터미널까지 40분이라고 해서 좀 속상했지만, 페리 운임에 밴쿠버 페리 터미널에서 호스텔까지 가는 복잡한 과정을 생각하면 이편이 낫다 싶었다. 도중에 내가 딱히 접하게 될 것은 없을 것 같으니, 시간과 편의를 돈으로 샀다 치자.
페리가 밴쿠버에 도착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가 밴쿠버 맞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맞나 보다. 난 잠시 고속버스나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는데도, 미리 일어나서 기다리는 승객들을 생각하며 그냥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아니지.’ 난 다시 선실 아래 차량 칸에서 기다리고 있을 버스에 타있어야 했는데.
부랴부랴 계단을 내려가니 나가는 문은 모두 닫혀있고,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데크 2번으로 가라고 했다. 내려가 보니 차들이 모두 빠져나간 그곳은 휑했다. 그곳에서 배에 실은 차들을 인도하는 직원에게 물었더니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이미 떠났다고 했다.
일반 버스나 택시를 타던가 아니면 두 시간 후에 올 페리를 기다렸다가 그 배에 함께 타고 오는 다음 버스를 이용하던가 하라고 했다.
캐리어랑 다른 짐도 다 버스 안에 있는데...
승객들이 표를 내는 곳으로 가서 버스를 놓쳤다고 했더니, 기다려 보란다. 승객들이 모두 나간 후, 한 직원이 나를 데리고 그 버스 티켓 창구로 가서 내 대신 사정을 얘기해줬다.
그도 창구에 있는 직원도 모두 답은 똑같았다.
결국 난 일반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과정도 복잡한 데다 1시 버스는 이미 출발해버려서 50분 후에나 온다고 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보다 30분 더 기다려서 다음 페리로 오는 버스를 타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창구직원은 전화를 걸어 다음 배로 오는 버스기사에게 내 얘기를 해서, 그가 내 짐이 있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나의 부주의로 큰 낭패에 빠졌지만, 나를 창구까지 데려가 사정을 말해준 직원과 내게 최선의 조치를 취해준 그 창구 직원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들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자 그들도 뿌듯해했다.
직원은 내가 다음 버스를 타야 할 지점까지 나를 에스코트해주고 돌아갔다.
화장실까지 다녀오니 뭐 45분 정도 남았다. 안으로 들어갈 것도 없이 그냥 버스정류장 근처 벤치에 앉아 글을 쓴다. 황량해도 괜찮다. 고개 숙이고 쓰면 그곳이 분위기 좋은 카페든 황량한 버스 정류장이든 마찬가지다. 여긴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다.
그래. 또 이렇게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으면 심심하지.
파블로에게 함께 저녁이나 먹자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
어차피 호스텔 체크인 시간까지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이미 간식을 먹어서 배도 부른 데다 스낵도 필요 없으니 상관없다.
시내에 도착하면 체크인하고 나와서 송이가 부탁한 트러플 오일을 알아보고, 오늘은 캐나다 플레이스 야경을 보러 가야지. 놀란 심장이니 근사한 저녁도 먹고.
내일은 뭐하지?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날, 뭘 할까?
호스텔 룸에서 영국인 핍을 만났다. 말을 걸기 어려울 것 같은 인상이었다. 뭔가 어벙해 보이는 얼굴은 썬번 때문인지 온통 빨간 데다가, 피부도 거칠었다. 거기에다 몸짓은 여자 애 같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방에 들어왔던 한 여자가 방을 바꾸어달라고 했다는데 핍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난 어쩐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는 막 적극적으로 얘기를 한 건 아니나 그래도 담담하게 계속 질문을 던졌고 내 얘기도 했다. 있다가 항구에 야경 보러 갈 건데 별 일없으면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자고 했다.
난 밖에 나가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어떤 메뉴든 4,9달러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실제 음식 메뉴에 가격표가 없었다. 처음에 샐러드와 맥주를 시켰다가 같은 가격이라면 맥주보다는 그냥 음식을 두 개 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아 동양 국수 샐러드로 바꾸었다.
샐러드 두 그릇이 가득 담겨 나와서 처음엔 좀 난감했다. 이걸 어떻게 다 먹지? 근데 가격은 정말 5달러씩이 맞나? 이미 시켜놓은 음식인데 이런들 저런들 뭐가 다르겠나.
국수 샐러드는 맛이 아주 좋았다. 약간 짭조름한 소스로 버무려져서, 다른 샐러드 그릇에서 야채를 덜어와 섞어 먹었더니 딱 맞춤이었다. 팁과 함께 12달러를 주고 나와 샤워하고 머리도 감았다.
핍은 굼뜬 나를 순순히 기다려 주었다. 드디어 예정시간보다 13분 늦은 8시 13분에 룸을 나섰다.
보통 호스텔에서 만나는 젊은이들과는 그다지 할 얘기가, 아니 들을 얘기가 별로 없다. 시시콜콜한 여행 얘기 외에는. 그러나 핍은 꽤 많은 얘기를 했다.
지금은 스웨덴 대학에서 스웨덴어 공부를 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별로 잘 지내지 못했으나, 대학이 그를 보다 자유롭게 해주었다고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게, 자기에게서 벗어나 세계 안으로 편입하게 해 주고, 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고. 여행 또한 그렇다고.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하는 추세이지만 자기는 결혼이 급하지 않아서, 당분간은 여행하고 공부하는 이 자유로움이 더 좋다고 했다.
걸으면서, 그리고 항구에 도착해 바다를 바라보며, 일몰부터 시작해서 어두워지고 강 건너편 건물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강물에 점점 더 긴 그림자를 만들 때까지, 거기 서서 함께 얘기하고 사진 찍고 풍경을 감상했다.
아름다웠다. 풍경도 아름다웠으나 물결의 움직임,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물소리, 그 모든 것이 다 무척 좋았다. 우린 11시가 거의 다 되어 호스텔에 돌아왔다.
핍은 내일 아침 일찍 빅토리아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