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ke This waltz
밴쿠버, 아니 캐나다에서 여행을 즐기는 마지막 날이다. 아침을 먹고 9시 넘어서 호스텔을 나왔다. 어젯밤에 핍이 손으로 가리켰던 도서관에 가보려고 했는데, 지나쳐 버렸는지 안 보인다.
그냥 항구로 가서 Subway 샌드위치를 사고, 항구 앞 공원 벤치에 앉아 공원의 모습을 즐겼다. 분수대에서 어린 꼬마들이 뛰어놀고 있다. 한 여자애는 좋다고 뛰노는 모습이 어릴 적 봄이를 연상시킨다.
그늘이 너무 서늘해 소름이 돋고 재채기가 나오려고 해서 잔디밭 양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슬이 아직 덜 말랐다. 샌드위치를 다 먹을 때까지 등은 따스했지만, 햇빛 아래서도 여전히 서늘했다.
길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노부부, 너 댓 명이 둘러앉아 싸온 점심을 먹고 떠나는 동양 걸들, 가까이에 편안하게 눕거나 앉아있는 서양 여자들, 싸온 샌드위치를 먹고 벌러덩 누워 쉬는 남자,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두 평화로워 보여 좋다.
한국에 돌아가면 습한 찜통 같은 더위로 불쾌지수가 한껏 높을 텐데, 즐길 수 있을 때 이 좋은 날씨를 한껏 즐기자.
공원에서 여유로움을 즐기다가 도서관을 찾아 나섰다. 핍은 그냥 도서관일 뿐이라고 했고, 아침 식탁에서 만난 영국 남자는 인상적 곳이라며 가보라고 했다. 인터넷 여행정보에서도 추천하고 있어서 궁금해졌다.
어제 점심을 많이 먹었다며 저녁을 아이스크림 하나로 때운 핍에게 배고프지 않으냐고 물었을 때, 그가 말했었다. 딱히 배고프다고 느끼지 않으면 먹을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난 지금도 먹을 것을 많이 생각하는데.
그가 말한 ‘비버 테일’이라는 디저트도 먹어보고 싶었다. 또 근사한 저녁도 먹어보고 싶다.
하지만 빅토리아에서 만난 독일 여성이나 핍의 얘기를 듣고 보니, 먹는 것이란 그냥 인간의 집착인 것 같다.
할 일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으면,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자연히 사라지는 것이리라. 난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당장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비버 테일을 먹을 수 있는디저트 카페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도서관은 넓고 좀 자유롭다 싶은 정도. 핍 승!
마지막으로 송이가 부탁한 트러플 오일을 사러 큰 마트를 찾아야 한다. 밴쿠버에서 지낸 1주일 동안의 기억을 총동원해서 마트를 찾아 나섰지만 한 시간 정도 헤맨 끝에, 그냥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봤다. 진작 물어볼 걸.
사실 트러플 오일은 종일 머릿속에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에 어떻게든 수행해야 하는 번거로운 미션이었다. 난 송이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무게도 있는 것을. 나 같으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아무리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사다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이러한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탁할 수 있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했다.
몽골 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 나는 마땅히 입을만한 캐주얼한 옷이 없었다. 송이는 그런 나를 집에 데리고 가 그녀의 옷장에서 몇 개의 옷을 골라 빌려주었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옷 많다며. 나로서는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나 같으면 청하지도 않았는데 내 옷을 그렇게 빌려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두고두고 인상적이었고 참 고마웠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참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그 다른 사람들끼리 맞추고 보완해가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양이다.
아침 일찍 공항으로 떠날 준비를 다 마쳤을 때, 핍이 들어왔다. 그는 빅토리아 여행을 마치고 어젯밤 늦게 돌아왔다고 했다. 난 바로 떠나야 했고, 핍과 어정쩡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기내식과 함께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셨더니, 온몸과 정신이 느긋하게 풀어지며 문득 집이 그립다. 아이들도 그립고. 안락한 내 침실과 거실, 서재도 그립다. 도착하면 정리해야 할 물건들, 치우고 청소해야 할 집, 빨래들이 나를 기다리겠지만.
염색도 해야겠고 얼굴에 팩도 좀 하고 싶다. 4주 동안 거칠어진 내 피부와 머리칼에도 휴식과 영양을 주어야겠다. 스페인 여행을 마무리할 때도 그랬을까? 그땐 돌아갈 때까지도, 여전히 여행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젊은 한국인 커플은 담담했었고, 난 여전히 여행 기분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핍과 그렇게 헤어진 게 좀 아쉽다. 악수라도 할 걸. 막 잠에서 깬 그에게 그냥 황망한 인사만 하고 나온 게 영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아쉬움이 좀 남는 것이 좋기도 하다.
파블로에게도 메시지를 남길까, 경호에게도 마지막 메시지를 남길까 생각했지만, 그냥 다 안 했다. 그들과의 여행은 그들을 마지막으로 본 순간, 그때 이미 다 끝났다. 앞으로의 여행도 그러할 것이다.
여행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이 그렇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내가 그들을 만났던 그때의 모습으로 늘 생동한다.
면세점에서 몇 가지를 샀는데, 제일 만족스러운 것은 여름이에게 줄 저금통 초콜릿이다. 안에는 초콜릿이 들어 있는데, 통은 저금통이다. 근데 너무 이쁘다. 순간 여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 커서도 아직 어린애처럼 저금통을 하나 사달라고 계속 말했는데, 번번이 까먹곤 했다. 아주 좋아할 것 같다.
비행기 안에서 'Mommy'라는 영화를 봤다. 그전에' Take This Waltz' 도 봤는데, 둘 다 감정이입이 잘 되는 영화였다.
출처 : 'DAUM 영화' 이미지
'Take This Waltz'는 가질 수 없을 때 더 강렬해지는 갖고 싶은 마음, 그러나 갖고 나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를 것이 없어지는 마음. 가진 후에 무감해져 버리는, 그래서 또 공허해지고 외로워지는 그런 마음. 그런 취약한 인간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남녀 간에 설레고 사랑하는 마음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다만 처음의 그 색깔이 아니어도, 다른 색깔을 덧입혀가며 살아가는 것도 사랑이다.
'Mommy는 여름이를 키워 본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였다.
당사자가 아닌 3자들이 보면, 부모가 좀 더 큰 인내와 무한한 사랑, 믿음으로 지켜봐 주고 보듬어 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탓하기 쉽다.
그러나 당사자였던 그 엄마나 나는, 나라는 '현 존재' 안에서 너무 힘들어했다.
엇나가는 자식을 온 마음으로 돌봐야 하지만, 그 속에서 고통받는 ‘나’라는 한 인간도 함께 살아내야 했다. 그래서 함께 뒤엉켜 싸우며, 상처를 주고받아야 했던 엄마들이었다.
그 누구를 위해서든, 그것이 자식이라 해도 완벽한 희생이라는 것이 있을까?
어른들은 책임으로 번민하고, 자식을 위해 모욕을 감수하고, 그 고통이 또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아이들은 튕겨나가 더욱 방황해야 했다.
격한 상호작용이었다. 그 순간에는 피할 겨를도 없이 빠져들어 함께 휩쓸려야 했던.
엄마 역을 맡은 안느 도발(Anne Dorval)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영화였다.
'Take This Waltz'에서 보여준 미셸 윌리엄스(Michelle Williams)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내 앞에는 아직도 여러 번의 긴 여행이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매번 그 여행들이, 내가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왈츠이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앞에 온 차례를 넘겨버리지 않고 기꺼이 그 왈츠를 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