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나의 문제다.
왜 이렇게 호불호가 정확한 사람이 되었는지,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가정환경 탓이라고 탓하기엔 난 너무 늙어버렸고
잘 늙지 못했다고 자책하기엔 아무래도 싫은 감정이 앞선다.
누구라도 관계에서 삐걱거리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사람의 본능은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기본이니까.
내가 있는 공동체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온통 사람과의 관계 속에 지지고 볶는다.
우아하고 고매한 태산은 멀리 있고 욕망과 시기심과 당장의 이익은 코앞에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관계나 사회생활도 오메가 3처럼 영혼 속에서 감정의 찌꺼기를
삼켜주고 혈관을 튼튼하게 해 주어 상처 주고받는 질고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녀가 클수록 새롭고도 싱그러운 시험지를 받는다.
나도 저 두 사람에게 다다가 함께 있고 싶다. 하지만 너무 멀다
언젠가 정신분석을 잠시 받았던 적이 있는데 나는 전형적인 회피형의 사람이었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유쾌하고 쿨하게 행동하고 말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말을
듣고 살았기에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난 회피형이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거나 엉켜있으면 끊어내고 환경을 바꾸었다.
아마도 그래서 살면서 여러 직업을 거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깊이 사귀는 친구가 없고 늘 혼자였는지도.
기질상 혼자 있는 게 편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이 좀 어색했다.
이 생각은 오래되었는데 이것도 상처받기 두려운 마음에 사람을 피하는 경향이 굳어졌는지도.
지금도 어색한 사람 두어 명이 있다.
같은 공동체에서 만나는 것이 불편하다. 그들도 그럴 테지.
도대체 마음이 풀어지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나도 나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다. 나도 잘 지내고 싶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웃고 싶지만
난 그런 게 힘들다. 이렇게 어리석고 미숙한 사회생활이 또 있을까.
오늘 새벽에 100절을 하면서는 정말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고 싶다.
이런 감정의 골이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왈칵 한숨이 쏟아져서
순간 균형이 흐트러져 절하다가 뒤로 넘어갈 뻔했다.
혼자서 씁쓸한 웃음을... 어두운 거실에 조용히 번져가는 쓸쓸한 웃음소리가 흩어진다.
혼자만 잘 살고 싶지도 않고
고립되고 싶지도 않고
평화로움이 겨드랑이에 날개처럼 돋아나길
먼저 스스로 평화롭길
스스로 먼저 평화를 찾길
나는 지금 탱자나무 가시 사이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