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진 것
매일 100배절을 하며 잡념을 덜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지난 2년, 퇴사하고 딱히 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서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을 바람부는 저녁에 단풍이 와르르 떨어지는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음이 불쾌했다. 몇 주 동안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내 선택이 아니었다고 난 이용당한 거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괴롭고 힘들었다. 모든 것에 질투가 났고 억울했고 두번째 책에 오타가 많은 것 때문에도 분노 게이지가
찰랑거렸다.
오늘 절운동을 하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계속 원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다.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원망하는 마음을 멈추고 나니 시야가 밝아짐을 느꼈다.
그리고 퇴사하고 지금까지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현재 있는 모습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돈오돈수 되었다고나 할까.
지금도 충분하다. 무언가 해서 괜찮은 효능감의 존재가 아닌 '있음'자체로도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가볍다. 그동안 받은 감사와 칭찬과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망과 미워했던 마음, 시기심의 마음과
안달했고 조급했던 것들,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일들을 물에 흘려 보내고 새로운 날을 맞이 했다.
어쩌면 세상을 사는 일은 연필처럼 제 몸을 깎아내어 가벼워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창조의 시간은 지금도 유효하며 언제든지 내가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내가 나의 엄마가 되는 시간"
나에게 선한 마음을 갖도록 키울 것이다.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책을 읽히며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할 것이다.
내가 나를 잘 데리고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둘은 형제다
나의 지나치게 물렀던 감정을 탈수하고 나를 독수리의 눈으로 내려다 본다.
삶을 자체로 사는 것, 고양이나 개처럼 모습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
고양이나 개처럼 만족할 수 있는 내공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양말을 뜨는 일은 그만두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능력을 길러
오직 나는 나와 가장 잘 지내는 것으로 충분하게 살고 싶다.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산나는 일은 더 높게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에 들어가는 것이란 것을
명심하며 시간의 촉감을 느낀다면 울컥 쏟아지는 걸음을 멈추어선 안 된다.
원망을 멈추고 나를 마주보니 막다른 골목의 끝이 아니었다.
자세를 고쳐 바로 선다.
나는 자신을 지켜보는 냉소의 관객이긴 하지만 삶을 끌어가는 일에 흥미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물음표를 물고 시작된 생애, 느낌표를 하나 하나 만들어가는 작업을 쉬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