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1월 21일 토요일, 모처럼 큰 마음을 먹었다. 복권을 사기로 한 것이다. 설날맞이 새해 다짐도 아니고, 이게 무슨 큰 마음 먹을 일이냐고? 사실 난 복권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기억에 있는 건 한 번 정도이며, 그것도 꽤나 오랜 시간 전이었다. 젊은 사람들도 복권을 소소하게 구매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가 사지 않는 이유는 크게 2가지,
1) 복권을 매주 살 만큼 지갑이 풍요롭지가 않다.
2) 안 될 확률 99.9%에 매주 돈을 쓰고 싶지 않다. 그 돈으로 콩나물국밥을 사먹겠다.
정도이다. 물론 당첨된다면 뛸듯이 기뻐하겠지만,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는 복권에 쓰는 돈은 소액이라고 해도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 짠돌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돈을 아끼며, 돈 많이 버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오면서도 복권은 사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날이 하필 설날 전날이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하나 사도 좋겠다 싶었다. 설날 전 날이니 꽝이 되어도 새해 전 액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마침 가야할 곳 인근에 유명 복권집이 있다고 하니, 들려서 사기로 했다.
복권집 앞에 다다라서야 복권은 현금으로밖에 사지 못한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은행에 들렸다 다시 도착했다. 한 편의점이었는데 1등만 10번 넘게 배출시킨 곳이었다. 편의점 물건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복권 사려는 사람들로 줄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제일 뒤에 쭈뼛히 서서 사람들을 지켜봤다.
구매자는 대부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았다(그 인근이 공장단지였다). 특이점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이 최소 1만 원 이상을 산다는 점이다. 3만 원 이상도 많았다. 다들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구매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나처럼 특별한 의미를 두고 구매하는 것은 더더욱 아닌 듯했다. 그 분들에게 복권을 사는 것은 일상에서 매번 반복되는 일 중 하나인 듯했다. 마치 일하는 듯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돈을 주고 복권을 받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그분들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아니다. 복권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저 분들은 이 복권에 자신의 삶을 걸 수밖에 없는 걸까.'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에 인생을 걸 수 없어, 남은 인생을 이 복권에 거는 걸까.'
'저 분들에게 복권이란 무엇일까.'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좀 더 나이가 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복권이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려나 싶다. 그때가 되어서 복권을 사면 과연 무슨 감정이 들까. 아무런 감정도 안 들게 될까.
대부분은 자동으로 구매를 하셨다. 자동으로 1등을 많이 배출한 지점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그러나 나는 왜인지 자동으로 사고 싶어지지 않았다. 당첨 확률과 무관하게, 내 스스로 번호를 점찍고 싶었다. 이 작은 복권 한 장에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고, 복잡한 사고 절차를 통해 구매하고 싶었다. 줄에 서서 사람들을 보는 동안 5천 원을 쓸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3천 원으로 결정하여 구매했다.
집에 와 번호를 맞춰 보니 역시나. 대부분 비껴나갔다. 순식간에 의미 없는 종이쪼가리가 된 복권을 보며 생각해 봤다. 나이가 지긋이 든 우리 아버지가 평소에는 돈을 그렇게 아까워하면서도 왜 이 복권에는 많은 돈을 쏟아붓는지를. 당첨이 안 되었다며 화를 내면서도 다음날 왜 복권을 사러 가는지를.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아닌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