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이 말은 제우스의 수많은, 아니다. 아주아주우우 수많은 여인 중 한 명인 세멜레의 유언과도 같은 말이다. 당시 인간이 신을 보면 그 찬란한 빛과 열기에 버티지 못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제우스는 여인들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을 하여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세멜레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취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를 본 헤라는 분노에 휩싸였고, 세멜레에게 위와 같은 질문으로 진짜 제우스인지를 확인하라고 했다. 스틱스강에 맹세하면 신이라도 그 맹세를 지켜야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제우스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 모습을 본 세멜레는 순식간에 불에 타 몸이 녹아버렸다.
요새 '벌거벗은 세계사'를 읽고 있다. 첫 3장까지는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다루는데, 제우스의 바람기가 왜 그렇게 심했는지에 대해서가 1장에서 나온다. 결론은 '권력을 유지 및 확장'하고 '자신의 세계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대의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읽다 보면, 권력 유지라는 대의를 위해서 한 바람과 그 바람에 화가 난 헤라 등의 보복에 애꿎은 서민들만 피해를 엄청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조커>의 조커에도 많은 공감을 했는데, 그런 나의 입장에서 세멜레는 권력 다툼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멜레처럼 고통스러운 죽임을 당하거나, 보복을 당해 장애를 안게 되거나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니 읽다 보면 제우스가 못됐네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신들의 모습을 보다보니 누가 떠올랐다. 바로 오늘날 고위 정치인들이 줄기차게 외치는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대의와 이 말에 애꿎은 피를 보고 있는 서민들의 모습이다.
"대의 중요하지. 근데 내 삶은?"
예나 지금이나 결국 우두머리들의 자기 세력 다툼에 피 보는 건 서민들인 것 같다. 대의, 물론 중요하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 대의란 불안정해서 풍랑 속 배처럼 한없이 흔들린다. 아무리 배가 크고 단단하다고 해도, 끊임없는 풍랑 속에서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서민들은 그 배를 지키기 위해 비바람을 맞으며 배를 보수하고, 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갑판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때로 이 배는 곧 가라앉을 거라 생각하여 목숨을 무릅쓰고 다른 대의의 배로 갈아타도 결국 풍랑 속 배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데 포세이돈에게 강제로 취해지고, 순결을 강제로 잃은 것도 모자라 벌까지 받아 끔찍한 모습으로 변했다. 이런 모습이 그 당시에는 몰라도, 지금에 와서도 권력 유지와 창조라는 신성한 신화로 포장되어야 할 이야기인가에는 고민이 든다.
메두사나 나나, 먹고 살기 힘들고 하루하루 외롭게 살아가는 건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