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누가 울어주련지

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by 키만큰

최근 부모의 학대 및 방임으로 인해 가장 필요한 존재로부터 받아야 할 기본적인 사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난 아이들의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그런 뉴스를 볼 때면 특히 가슴이 아려 온다. 피가 섞인 친지조차 찾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 처리가 될 뻔하고, 장례식장에는 그렇게 구하기 쉬운 과자 하나조차 없으며 보송보송하고 기분 좋은 내음이 나는 유아용 옷도 하나 입지 못한 채 한 줌의 재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면, 세상엔 마음 놓고 살아가기에는 비극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그 비극의 중심이 되어, 나이가 들었을 때 쓸쓸히 고독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져 든다.



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소원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이 소원만 이룬다면 그래도 내 인생이 1%라도 의미 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나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3명만 있다면 좋겠다."

여기서의 사람이란 가족을 제외한 지인을 의미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에는 중학교 때의 외할아버지 장례식에서의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당시 같이 살던 외할아버지는 조용히 생을 마감하셨다. 부모님이 서둘러 장례식장에 할아버지를 안치고 조문객을 받기 시작할 즈음, 한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시더니 조용히 절을 하고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잘 보이는 반대편 상에 앉으셨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 분이셨다. 친구 분은 눈을 붉히고 멍하니 할아버지 영정을 보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셨다.


"야, 갔다. ...... 칠성이가."


이 짧은 말 한마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죽었다'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문장도 아니고 '갔다'라니. 서로의 삶이 이제는 알고 지낸 시기보다도 훨씬 적게 남았음을 이야기해왔던 오랜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한마디인 것 같았다. 그 분은 꼬박 하루를 있으면서 이후에 찾아온 다른 친구 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나는 종종 위 말들을 나의 친한 친구들에게 말하며 생각해 왔다. 과연 나의 장례식 때는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내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할까. 그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지금 맞은편에 있는 이 놈은 그럴까.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죽어서 이 세상을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야만 확인이 가능할 것일테니.


지금도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는 "장례식장에서 나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3명만 있다면 좋겠다"이다. 장례식에 와서 누군가 내 영정을 보고 가슴을 부여잡는다면, 하늘을 떠다니고 있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슬픔 덕분에 행복을 느끼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것 같다(물론 지옥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겠지만). 이 목표 때문이라도 사람이 죽은 이후에 정말 영혼이 잠시나마 이 세상을 떠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과연 나는 외할아버지 친구 분이 말했던 것처럼, 소중했던 동지이자 벗을 잃었다는 감정을 아주 쓴 에스프레소 원액처럼 응축하여 담아낸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지. 아직 청년인데도 소울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벗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나의 죽음은 너무나도 쓸쓸해질까 싶다. 과연 미래에는 나의 소원을 이루어줄 사람이 나타날까. 나의 죽은 이후 소원을 위해 먼저 발벗고 나서야 하는 걸까. 결국 내 소원도 '관계주의'라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품목으로 인해 파생된 소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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