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고찰-우리 집 강아지를 보며

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by 키만큰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자기는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우리 집 강아지는 이제 9살이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중년의 아저씨인 셈이다. 2년 전만 해도 안 그랬는데 지금은 물을 마시다가도 호흡기가 약해졌는지 재채기를 자주 하고, 뜀박질도 사람보다 더 잘하던 녀석이 속도가 확 줄어든 것이 보인다. 간혹 잠을 잘 때 배에 귀를 가져다대면 장기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옛날에는 그 소리에서 활력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약간 불협화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문득 생각이 든다.

이 녀석의 죽음이 곧 다가올 수도 있을 텐데, 그 상황을 마주하면 두려울 것 같다. 이 녀석의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번 글(내가 죽으면 누가 울어주련지)에서도 말했지만 나의 가장 궁극적인 소원 중 하나가 죽음과 관련이 있을 정도로, 나는 내 또래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는 죽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죽음과 관련된 책은 나오면 흥미롭게 기억하다가 꼭 읽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것뿐 아니라 고독사, 안락사, 연명치료와 같은 사회적 파장이 큰 주제부터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이야기, 말기 암 환자들의 이야기, 펫로스(애완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무기력증)까지 죽음과 관련된 주제라면 책이든 다큐든 흥미롭게 보는 편이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호기롭게 완독하겠다고 달려들었다가 굉장히 어려운 본문 내용에 진절머리가 나 1/3을 읽다 포기한 건 안 비밀이지만, 언젠가 다시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다.


내가 이토록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나의 죽음, 내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망라하고 죽음을 마주할 때의 순간을 상상만 하면 두려움이 앞섰다. 물론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할머니는 밤중에 집에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안치된 모습을 마주하고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시간이 있었다. 고령이셨고 곧 이렇게 되리라는 생각은 해왔었지만 막상 죽음이 지배한 할머니의 몸과 무뚝뚝한 얼굴을 보니 두려움이 앞섰다. 큰아버지가 할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덕담을 말하는 것을 나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었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못했으며 저승길 노잣돈도 손에 쥐어주지 못해 간신히 양발 사이에 피부가 닿지 않게 끼워넣었을 뿐이었다. 시신을 만지기 불쾌해서가 아니라, 내가 꼭 껴안았던 할머니의 따끈한 몸이 한순간에 차가운 덩어리가 되었다는 사실에 형연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 순간에, 삶의 영역에 있는 나에게 죽음의 영역은 넘어갈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때가 20대 중반의 나이에 군대의 험한 꼴을 다 이겨내고 갓 전역한 때였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더 죽음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 책이나 영상을 보면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삶의 일부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죽음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살아있음의 소중함이 더욱 느껴진다."


물론 그 말에 백 번 동의한다. 내 삶의 일부이며, 생명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습성이기도 하고, 불변의 자연현상이면서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자극제이기도 한 죽음. 죽음 덕분에 우리는 부모, 친구들과 다투면서도 '있을 때 잘하자'라는 생각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점들과 별도로 아직까지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체는 크게 줄어들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집 강아지의 죽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니(이런 인간적인 감정 하나 고려하지 않은 사체 종량제 봉투 처리 현행법이 제일 소름끼친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녀석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 다가와 공 좀 던져달라며 보채고 있다. 다른 때라면 시끄럽다고 안 줬을 텐데, 지금은 왜인지 던져주고 싶다. 살아있을 때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일까. 곧 시끄럽게 짖어대는 녀석을 보며 괜히 주었다고 후회할 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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