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기사님께 인사라도 하지

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by 키만큰

잠시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화창한 햇살에 속아 차가운 바람이 윙윙 불어대는 줄도 모르고 나왔다가, 배차간격 20분의 버스를 기다리느라 손이 얼어 잔뜩 움츠려야 했다. 초행길이었는데, 지나가는 노선이 1개 뿐이었는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인근 종점에서 출발한 버스가 오자마자 황급히 올라 손부터 엉덩이 아래에 깔았다.


다시 따뜻한 버스 안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바라보고 있던 도중, 다음 정류장에서 한 학생이 탔다. 살색 패딩에 안의 흰색 후드티, 검은색 마스크를 쓴 학생은 얼굴 반이 가려졌지만 마스크 위의 눈은 굉장히 매서웠다. '아, 약간 노는 스타일인가' 싶은 이미지의 학생이었다.


그런데 학생은 교통카드 잔액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듯했다. 카드를 찍으니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안내말이 울렸다. 한 번 더 찍어도 똑같은 안내말이 나왔다. 애매하게 남은 잔액이 기억에 안 남아서 버스를 탈 때 자신도 확신이 없었는지, 학생은 그 소리가 연달아 두 번 나자 미련 없이 빠르게 턴하여 다시 내리려고 했다. 그때, 버스기사님이 학생에게 무언의 말을 하더니 학생이 올라탔다. 정확히 듣진 못했지만 "다음에 내요" 정도의 말로 들렸다.


나는 이 과정에서 다소 찝찝함을 느꼈다. 그 학생은 아무런 인사말도, 바디랭귀지도 없이 쌩 하니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비교적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작은 말을 해도 소리는 들을 수 있었는데 그런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소 황당하게 그 학생을 쳐다보고, 뒤이어 괜히 눈치가 보여 아무렇지 않게 운행을 이어나가는 버스기사님을 쳐다봤다.


서울과 같은 시내버스의 경우, 고령의 어르신이거나 막차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금이 부족한 승객들을 잘 태우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시민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정도 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옛날과 다르게 실제로 sns 등을 보면 그런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도 요새는 더러 있는 듯하다. 버스기사님으로 일하는 아버지 지인 분은 최근에 그런 항의를 승객에게 직접 받은 적이 있었다고, 아버지를 통해 듣기도 했다.


낮 시간대, 20분을 다시 기다리는 동안 충전을 하거나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있는 정류장, 돈 자체가 없어 보이지 않는 행실, 젊은 학생이라는 상황은 무임승차를 배려해 줄 우선 조건들은 아니다. 하지만 기사님은 그런 점들을 따지지 않고 조용히 무임승차를 허가했다. 뒷자리에 앉은 다른 승객들의 눈치가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기사님도 큰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딱히 그런 것에 신경을 쓰시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고개라도 꾸벅거렸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찝찝함이 지금까지도 든다.


아주 사소한 배려일지 몰라도, 그 역시도 '배려'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런 행동들이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위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배려로 인한 물질적인 이득과 상관 없이, 배려라는 행동을 보여준 상대방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다면, 배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본인은 어쨌든 배려를 받은 것이니 해피한 거지만, 상대방까지 해피해야 진정한 해피엔딩이 아니겠는가.


괜한 찝찝함에, 다른 사람들과 앞문으로 내릴 때 좀 더 소리내어 "수고하세요"라고 말을 건내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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