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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Jan 30. 2022

동네 개랑 줄다리기 한판 후

봄이에게 배운 것들

매일 할 일 리스트에 '운동화 신기'가 있을 만큼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집 옆이 바로 산으로 이어져 산책하기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겨우내 한 번도 산책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집에 친구가 놀러 왔다가 자고, 같이 아침을 맞은 날이 있었다. 집에 누군가 놀러 오면 뭐든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라 명상 후 아침산책을 하자고 했고, 그렇게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백사실 계곡으로 산책을 하러 내려갔다.(집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산에 가려면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걷다 보니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우리는 "너무 좋다~~"를 남발하며 계곡까지 내려갔다. 거기에는 또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평소에 아쉽게 지나치기만 하던 개 '봄'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봄이한테 뛰어갔다. 봄이도 목줄을 탱탱하게 당기며 나한테 오려고 했다. 봄이 목이 아플까 봐 나는 더 빨리 뛰어서 봄이한테 갔다. 봄이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뒤이어 온 백군과 친구한테도 공평하게 아는 척을 해주고 다시 나한테 와서 몸을 기댔다. 그동안 아쉽게 지나치기만 했던 봄이를 원 없이 만졌다. 주인분께 매일 이 시간에 나오시냐고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셔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봄이를 보려고 산책을 했다. 봄이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간식도 주고, 나무 막대기 던지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다가 집에 왔다. 놀다 보니까 봄이한테 더 정이 들었다.

그날도 봄이를  생각에 신나게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밤새 눈이 와서  신이 났다. 눈이 와서 흥분한  봄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나를 보러 뛰어와선  장갑을 물고 놓지를 않았다. 나는 반가움도 잊고 장갑을 놓치지 않으려고 난데없이 봄이와 줄다리기를 했다. 장갑을 잡아 끄는 정도가 심해지자, 한껏 웃으며 봄이를 반기던  표정도 어쩔  모르게 되었다. 봄이 힘에  이겨 질질 끌려가다 결국 앞으로 넘어졌는데 그런 사정도 봐주지 않고  세게 끌어당겼다. 장갑을 벗어주고 나서야 일어나서 눈을 털어낼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씩씩하게 일어났지만 속으론 눈물이  돌았다. 무릎이 아프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고, 봄이가 미워지려고 하기도 했다. 봄이는 결국 주인분께 잡혀서 머리를 두대 맞고 장갑을 내려놓았다.  모습을 보니 조금  부아가 치밀었다. '저자식.. 내가 만만했구나.'


긴박한 상황 속에서 본능적으로 누른 셔터
한바탕 소란 후에 정적이 민망해서 찍어보았다.


그동안 내가 봄이한테 쏟았던 애정들이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앉아!' '엎드려!'라며 훈련을 시켜보라고 주인분이 쥐어주신 간식도 '내가 어떻게 너한테 명령을 하냐' '뜻밖의 행운도 있어야지!'라며 쉽게 내어주고, 큰 덩치로 뛰어들어 새로 빤 옷에 발자국을 남겨도 웃으면서 다 받아주고, 엄청나게 많은 침과 털을 장갑과 옷에 범벅해놔서 오전 내내 재채기를 하며, 빨래를 하게 만들어도 매일 보러 갔던 나를! 너는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나를 보니 보통 우스운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날은 민망함과 아픔을 삼키고 봄이랑 잘 놀다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 엄청나게 삐진 건 아니었는데 막 그렇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무릎과 허벅지에는 오랜만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렇게 3일인가 산책을 거르다 보니 슬쩍 봄이가 궁금했다. 나를 반기며 동동거리는 발과, 모터를 달아놓은  같이 세차게 흔드는 꼬리와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봄이가 나에게 앙심을 품고 발을 걸어 넘어트린 것도 아니고, 나를 무시하려고 '만만히 봐야겠어!' 마음먹은 것도 아닐 테다.


발걸음도 가벼웁게 다시 봄이를 보려고 간 그날 나는 봄이한테 많은 것을 배웠다.

'진작  버리면 넘어지지 않는다' 것과 '봄이를 좋아한  봄이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일이었다'  '좋아하는 것에도 좋은 방법이 필요하다는 ' 막대기 던지기 놀이를 하면서는 '같이 놀려면 물고   내려놔야 한다는 '등도 배웠다.   



봄이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걸 보고 주인분이 말했다. "개도 자기 좋아하는 사람은 알아보고 좋아해요."

'봄이 너.. 알고 있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봄이


'나랑 놀고 기분이 좋은 봄이'라고 생각해본다.



'먼저 집에 가는 나를 보며 서운한 봄이'라고 해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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