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님들께.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인격체를 하나 더 갖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영어나 불어를 하는 인격체를 만들고 싶었지만, 나의 인격체는 좀처럼 분리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대신 나는 글을 쓰는 인격체가 하나 있다. 이 인격체는(루시라고 하겠다) 주로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나타난다.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 있거나, 한창 마음을 뺏기는 일이 있거나, 머리가 복잡할 땐 좀처럼 나타나 주지 않는다. 마음이 고요할 때만 나타나는 루시가 나는 더 마음에 든다. 잠잠하던 루시가 어쩌다 일어나진 새벽을 틈타 나타났다.
브런치에 밀려있던 작가님들의 새 글들을 선물포장 벗기듯이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반갑고, 좋았다. 나와는 상관없이 쓰였을 그 글들이 전부 나와 단둘이 만났다.
내심.. 나는 솔직히 작가는 아니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카톡엔 주로 이모티콘과 헐! 대박! 같은 반사적인 반응으로 고민 없이 답장을 보내기도 하고, 업무 메일은 용건만 간단히 기계적으로 적는다. 가뭄에 콩 나듯 인스타에 포스팅을 하고 반가운 댓글이 달려도 '좋아요'만 누르는 무심한(?) 사람이다. 어쩌다 괜찮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글감이 생겨도 쿨하게 잊어버리고 그냥 그 시간을 살고 만다. 마음이 깊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더 말하지 못한다. 어떤 말도 적당하지 않고, 부족한 것만 같아서 그렇다.
맛있는 귤을 한 박스 주문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이웃들에게 건네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귤을 까먹는 건 내가 하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모티콘 없이 기분을 전하고, 행동 없이 표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글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이란 것도 있다고..
구구절절 변명이라도. 한 번쯤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조금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루시를 사라지지 않게 하는 고마운 분들이라는 걸 귤 말고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