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강아지가 기다려요 2
동생은 이른 아침에 출근을 했다. 동생이 꼭두새벽부터 집을 나서면 나는 그제서야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제제와 동네 산책을 했다. 산책을 1시간 하고, 또 1시간 정도 출근 준비를 마치면 9시. 퇴근하는 동생이 늦어도 5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오니 제제와의 '8시간' 약속은 수월하게 지킬 수 있었다.
나는 업무 특성 상 야근을 하거나 집까지 일감을 싸들고 올 때가 많았으며, 회식도, 출장도 많아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아예 비우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제제 옆엔 동생이 있으니까, 마음 놓고 야근을 하고 저녁 약속도 부담 없이 잡을 수 있었다. 반대로 동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다. 둘 다 출근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만, 8시간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면 동생은 무조건 제 시간에 집에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동생 덕분에 나의 귀가 시간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하지만 내가 집에 늦게 들어갈수록 동생 혼자 제제를 돌보는 시간은 길어졌고,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동생의 피로감은 쌓여갔다.
“제제는 나만 키워?!”
“나 혼자 데려오자고 했어?”
언뜻 들어보면 독박육아로 다투는 부부의 대화 같다. 제제 입양 초기, 동생이 자주 했던 말이다. 둘 다 밖에 나가 똑같이 일을 하는 맞벌이인데 제제를 돌보는 시간은 동생이 절대적으로 많았으니 나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어쩌다 동생이 저녁에 약속이 생기면 내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야 했는데, 아무리 출퇴근이 유연한 회사였어도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난처해하는 나를 보고는 동생도 점점 저녁 약속이나 회식을 피하게 됐다. 결국 동생을 집에만 묶어둔 셈이다.
지금도 우리는 하루 두 번 산책과 8시간 약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을 조금 늘려서 1~2시간만 더 제제를 혼자 두면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제제도 8시간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우리가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집에 늦게 들어오면 흥분하고 낑낑대는 정도가 다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8시간을 넘기기가 미안해진다. 그리고 제제가 보고 싶어서 집에 빨리 오고 싶기도 하다. 우리 자매는 원래도 집순이였지만, 제제를 키운 뒤 더 강력한 파워 집순이가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내 사정을 봐주는 직장 덕분에 오전에는 재택근무를 하고 오후에 출근을 하고 있어 8시간 약속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갑자기 동생이 저녁 늦게 들어올 일이 생겨도 문제없다. 내가 정시에 퇴근해도 7시간 만에 다시 제제를 보는 거니까, 제제를 혼자 두는 시간도 조금 줄었다. 제제를 키운 지 5년 만에, 동생과 나 서로에게 맞는 일상 패턴을 겨우 찾은 것이다.
제제와 함께 살기 위해 우리는 원룸이 아닌 넓은 집으로 이사했고, 반려동물용품을 빠짐 없이 구입했고, 현관 안전문 설치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던 것 같다. 제제를 돌보는 일로 동생과 자주 싸웠고, 일상 활동의 제약으로 답답한 순간도 많았다. 이 모든 걸 예측하고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알아서 잘 자랐던, 시골집 마당견 바둑이와 살 땐 상상도 할 수 없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제 입양을 후회하거나 무르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다. 제제와의 약속을 어길 생각도 없다.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제제는 우리에게 사랑과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동안 이불 속에 틀어박혀 언니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제제를 떠올리면 가슴이 찌릿찌릿 아프다. 집에 왔을 때 잔뜩 흥분하며 반겨주는 모습을 보면 ‘늦어서 미안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려견을 돌봐야 해서 집에 일찍 가야 한다고 하면, ‘나는 집에 애가 있다’, ‘갓난아기도 아니고 돌봐줄 게 뭐가 있냐’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일상이 너무 제제 위주로만 돌아가나?’, ‘신경을 좀 덜 써도 괜찮은데 오버하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의 마음은 제제와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우여곡절 끝에 안정적인 일상 패턴을 찾았고, 그 일상이 남들이 보기에 좀 피곤하고 유난스럽다 해도 나와 동생, 제제는 이렇게 사는 게 좋다. 제제와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금상첨화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