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은 사양할게요

집에 강아지가 기다려요 1

by 구스리

“혹시 저녁에 다른 일정 있나요?”


퇴근 시간 즈음, 사무실에서 이런 질문을 듣는다면? 그다음 예상되는 상황은 두 가지. 야근 아니면 회식이다. 하기 싫어도 일이 많으면 해야 하는 야근과 없던 일정까지 만들어서 피하고 싶은 회식.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잠시 귀가를 미루고 사회생활을 좀 더 이어나갈 수밖에.


나는 그나마 회식은 즐기는 편이었다. 예전에는 까마득한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많았지만 연차가 쌓이고 나서는 팀별로 모이는 회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연차가 비슷한 또래끼리 일한 경우가 많아 회식이라기보다는 친목 모임에 가까웠다. 술 마시며 수다 떨고, 짜증 나는 사람 욕도 해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 그래서 갑자기 생기는 회식은 오히려 반가웠다. 하지만 지금은? No, thanks!


제제를 데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함께 일했던 선배와 저녁 겸 술 약속이 잡혔다. 오랜만에 만나 할 얘기가 많아서였을까. 시간은 벌써 12시. 잘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겨우 타고 집 현관문 앞에 서서 도어록 버튼을 누르니, ‘멍멍멍멍!’ 개 짖는 소리가 길게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겨우 잠들었다 일어난 것 같은 동생과 늦게 들어왔어도 반갑다고 꼬리 치는 제제가 보였다.


역시 동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지금이 몇 시야?”하고 묻는 말에는 ‘나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제제 산책시키고, 씻기고, 밥 먹이고 배변 케어하고, 여태 놀아주느라 진이 다 빠졌는데 언니 너는 지금 이 시간까지 놀다 와서 기분이 좋냐?’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특히 그날 밤은 바깥에 인기척이 있을 때마다 제제가 자꾸 짖어 잠도 못 잤단다.


P20190311_174024397_D98F6AE2-0264-47D6-943D-020CE40D2473.JPG 홈캠으로 제제를 케어하느라 지친 동생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나도 할 말은 있다. 맨날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니까 금방 헤어질 수도 없지 않나. 하지만 야근을 하고 늦게 들어와도 동생의 반응은 비슷했다. 그럴 땐 억울하기까지 하다. 아니, 나라고 늦게까지 일하고 싶을까? 직장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건데. 하지만 나름 호소력 짙게 항변을 해도 언제나 지는 건 나였다. ‘나는 일 안 하냐?’ 이 한 마디면 반박 불가. 동생도 나와 똑같이 사회생활하는 직장인이라는 걸 간과한 것이다.


제제를 키우기 전, 우리는 서로의 일정에 전혀 간섭할 일이 없었다. 야근을 하든, 회식을 하든, 출장을 가든, 친구 집에서 자고 오든. 통보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 갑자기 회식 잡혔는데, 가도 돼?’ 서로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제제를 위해 약속한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산책. 제제는 아침과 저녁 1시간씩, 하루 두 번 산책을 해야 했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산책과 놀이로 풀어주지 않으면 문제 행동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제제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은 8시간을 넘기지 말 것. 무리 생활을 하는 개들은 혼자 남겨졌을 때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각자의 출퇴근 시간을 앞뒤로 맞춰 하루 최소 8시간만 집을 비우고, 출근 전과 퇴근 후 산책을 나눠서 맡은 거다. 이 간단명료한 두 가지 약속이 우리의 일상을 180도 뒤바꿔 놓았다.


- 2편에 계속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른 아이템 없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