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맛집 코너 작가의 고군분투기 2
오후 6시 혹은 7시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군침 도는 비주얼을 자랑하는 다양한 음식들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모든 외식 메뉴의 총집합체! 데일리 프로그램의 ‘맛집’ 코너들이다. 사람들이 줄 서는 맛집, 현지인들만 아는 숨은 맛집, 택시 기사들이 추천하는 찐 맛집, 대를 이어가는 맛집 등등 콘셉트도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나는 가격이 저렴한 맛집을 소개하는 코너를 맡았다. 가격이 저렴하기만 해서는 안 됐다. 시청자들이 놀랄 만큼 맛있어 보이고, 양도 푸짐한 곳이어야 했다. 저렴한 음식 가격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도 필요했다. 예를 들어 국내산을 고집하지만 직거래, 자급자족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시킨다든가, 가족 경영 또는 셀프서비스를 통해 인건비를 아끼고 있다든가. 이런 멘트들을 쓸 수 있어야 했다.
주말 포함, 10일 간격으로 방송되었던 내 코너. 일주일마다 방송되는 다른 데일리 프로그램보다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힘들었던 이유는 '아이템'이었다.
각 요일별 방송을 담당하는 외주 제작사 팀장과 메인작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템 회의를 하는데, 그때 들고 가는 아이템 리스트에는 코너 별 다음 주 아이템과 그다음 예비 아이템까지 올라간다. 섭외 확정 단계가 아니어도 일단 올리고 본다. 다른 제작사와 메뉴가 겹치면 안 되기 때문에 미리 찜하는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메인작가로부터 '다른 아이템 없니?'라는 메시지가 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야근 확정.
눈이 뻐근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아이템을 찾아도 별 소득 없이 퇴근했던 날도 많다. 그럴 땐 집에 있어도 생각이 많아진다. 출근과 동시에 인터넷 검색창에 '최저가', '무한리필'이라는 단어를 입력한다. 블로그 검색 페이지가 50이 넘어가든, 100이 넘어가든 찾아내야만 했다. 블로그 리뷰에도 새로운 게 없으면 카페 게시글을 뒤졌다. '어디가 싸고 맛있더라' 하는 게시글, 하다못해 댓글이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이런 집이 있긴 하다는 거니까, 찾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한 번은 정확한 위치도, 전화번호 정보도 없는 닭볶음탕 무한리필 식당을 하나 찾았는데, 로드 뷰까지 뒤져가며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취재에 성공한 적이 있다. 다행히 방송도 잘 나갔다. '방송에 나오는 집은 실제로 가보면 다 맛이 없다', '방송국에 돈 내고 출연하는 거'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땐 정말이지 억울했다. 차라리 협찬이나 광고가 들어와서 한 주 아이템이라도 막아주면 감사하지. 물론 우리 제작사에 협찬이 들어올 때도 간혹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내 코너는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일. 그 안에 아이템을 찾아 취재도 해야 하고, 섭외가 완료돼야 피디가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한다. 최종 편집된 영상을 보고 내레이션 멘트와 자막도 써야 한다. 모든 과정은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생방송 시간은 정해져 있다. 아이템을 늦게 찾을수록, 그만큼 후반 작업할 시간이 촉박해진다. 당장 촬영을 나가야 하는데 아이템이 없어 쪼들리는 시간. 그 시간이 미치도록 힘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도저히 출근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끔찍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짧은 제한 시간 안에 원고를 무사히 털었을 때. 회를 거듭할수록 메인작가의 빨간펜 코멘트가 줄어들 때. 시청률이 좋았을 때. 방송 나가고 장사가 잘 돼 행복하다는 사장님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보람도 있었고, 뿌듯했다. '힘 안 들이고 쉽게 하는 방송이 어디 있니?' '힘들수록 배우는 것도 많을 거야' 스스로 다독이고 채찍질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아이템 스트레스를 희석시킬 수 없었다.
어느 때보다도 시간에 쫓기며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던 그 시기. 나는 늘 도망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