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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리 Aug 06. 2022

먹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어느 맛집 코너 작가의 고군분투기 1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선 막내들이 ‘입봉’, 그러니까 영상 콘텐츠 하나를 오롯이 혼자서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오르려면 십중팔구 거쳐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데일리’라고 통칭하는 각 방송사의 아침, 저녁 생방송 프로그램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하기 때문에 ‘데일리’다. 많은 외주 제작사가 각 방송사의 데일리를, 요일별로 나눠 제작하며 ‘아웃’되지 않기 위해 시청률 경쟁을 한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조연출 시절 어깨너머로 ‘막내작가의 일’을 체득한 덕분에 바로 서브작가가 되었지만 나 또한 ‘데일리’를 피하지 못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퀴즈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는 한 지상파 방송국의 저녁 생방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시청률과 인지도가 높았던, 지금도 방영 중인 프로그램이다. 하루에 3~4개 코너가 방송됐고, 내가 맡은 코너는 맛집 소개 코너였다. 그냥 맛집이 아니었다. 가격은 획기적으로 저렴한데 맛까지 끝내주는, 가성비 맛집이어야 했다. ‘아니, 이 음식을 이 가격에 판다고? 장사가 돼?’ 이런 반응이 절로 나올 수 있는 식당만이 아이템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 


코너를 맡게 된 후 첫 아이템은 ‘돼지고기 구이 집’이었다. 삼겹살과 등심, 양념갈비 등 각종 부위의 돼지고기와 김치찌개까지, 1인 12,000원이면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맛집이었다. 전임 작가가 취재와 섭외까지 진행한 건이라 나는 촬영 구성안과 편집, 내레이션만 담당하면 됐다. 데일리 생방 중에서는 꽤 유명한 코너였고, 오랫동안 담당해 온 피디가 있어 촬영과 편집은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내가 과연 내레이션 원고를 시간 안에 잘 쓸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동네에서 맛집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맛’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갖고 먹는 사람은 아니다. 할 줄 아는 맛 표현이라고는 ‘맛있다’, ‘매콤하다’, ‘시원하다’, ‘단짠단짠’ 수준이다. 게다가 편식도 심하다. 떡볶이는 너무 좋아하지만, 해산물은 냄새도 맡기 싫다. 이런 내가 시청자에게 음식 맛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걱정과는 달리, 나의 내레이션 원고는 매번 무난하게 통과되었다. 비결은 ‘잘 흉내 낼 줄 안다는 것’. 다른 맛집 코너나 이전에 방송됐던 아이템의 원고를 참고하며 다양한 맛 표현을 카피했다. 


육류가 나오면 ‘쫄깃쫄깃’, ‘씹는 맛이 일품’, ‘육즙이 가득 흘러나와 풍미가 좋다’ 등의 표현을 쓰면 되었고, 국물 음식이 나오면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얼큰함’, ‘갖은 재료로 정성 들여 끓인 육수의 진한 맛’ 등의 미사여구를 썼고 ‘감칠맛’이라는 단어도 애용했다. 장어나 삼계탕 같은 보양식이 나올 땐 ‘먹는 순간 힘이 솟아난다’는 다소 부끄러운 표현도 썼다. 물론 스스로 공감할 수 없는 맛 표현들이다. 힘이 솟긴 무슨 힘이 솟아, 배만 부르지.


가장 난감한 건 해산물 아이템이다. 겨울 제철인 굴을 9,900원에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식당이었는데, 도무지 굴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 몸에 좋다고 어른들이 억지로 입에 넣어주면 절대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켜 버리는 나였기에 ‘비리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는 것이다. 결국 촬영하면서 인터뷰했던 손님들의 말을 참고해 ‘싱싱하다’, ‘바다의 향이 살아있다’ 등의 뻔한 멘트로 시간을 때웠다.


사실, 맛집 코너에서 내레이션 멘트는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먹음직스럽게 찍은 음식 타이트 샷, 손님들이 탄성을 지르며 맛깔나게 먹는 장면 몇 컷만으로도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시청률이 높은 구간과 방송 시간을 비교해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내레이션 멘트까지 귀 기울이며 맛집 코너를 볼까? 알지도 못하는 맛을 표현하느라 고심했던 나의 시간은, 한 귀로 들어갔다 한 귀로 흘러나가는 내레이션 멘트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나 스스로도 설득시키지 못하는 내레이션인데...’

‘이렇게 써도 방송이 나간다고?’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고민은 깊어져도 돈을 벌려면 하는 수 없다. ‘이렇게 써도 방송이 나가니까’ 나는 그저 마감 시간에 쫓겨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을 예찬하고, ‘담백한 맛’이 뭔지도 모르면서 ‘담백하다’는 표현을 남발하는 빈껍데기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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