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스리 Jul 17. 2022

어쩌다 작가가 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은 맞습니다만 1

내 이름 석 자 뒤에는 '작가'라는 직함이 따라 붙는다. '작가'라 불리는 직업은 다양한데, 여기서 말하는 '작가'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태프 중 하나인 '구성작가'다. 방송 아이템 서치, 자료조사, 취재, 출연자 섭외와 관리, 구성안과 내레이션 집필,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자막까지. 온갖 분야의 일을 다 한다고 하여 '잡가'라고도 불린다. 이런 직업이 예전부터 꿈이었냐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하겠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나는 정말 '어쩌다' 작가가 되었다. 그후로도 지금까지 계속 남들에게 작가라 불리고 있지만 어떤 작가인지가 중요하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다. 내가 쓴 것 중, 기억 또는 가슴에 남는 문장이 하나도 없는 빈껍데기 작가로 살아왔다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직면한 인생 최대의 문제다. '나는 뭐하러 작가가 된 걸까?' 지금이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답 없이 사는 사람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학창 시절, 내 장래희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단연 드라마다. <허준>을 보면서 한의사가 되고 싶었고, <호텔리어>를 보면서는 경희대 호텔경영학과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모양새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는데 하필 인생 드라마가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진짜 방송국엔 지오 선배, 주준영 같은 PD가 없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PD라는 직업을 동경했다. 작품 하나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들의 열정이 좋았다. 촬영하랴, 편집하랴, 밤을 새는 것도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해서라고 생각했다.


인생 드라마의 여파는 꽤 오래 갔다. 원래 기자 공채를 준비했던 나는 대학 졸업 무렵 지원 분야를 시사교양 PD로 바꿨다. PD와 기자를 채용하는 신문, 방송사 공채는 '언론고시'로 통칭하는데, 기자나 시사교양 PD나 공부해야 하는 분야가 비슷해 선택이 어렵지 않았다. 여느 취업 준비생처럼 토익 공부를 하고,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시사 이슈 체크, 작문 연습까지. 해야 할 게 은근히 많다. 그보다 문제는 채용 인원이 아주 적다는 것이었다.  


지상파 방송국이든, 집과 가까운 지역 방송국이든 PD만 된다면 어디든 상관없었지만, 3차 실무평가까지 올라갔던 지역 MBC 채용에서 떨어지고 나니, 공채 시험으로는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들은 모든 부문에서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고 있었고, 그 작은 바늘 구멍을 뚫어보겠다고 달려드는 취업 준비생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외주 제작사는 내 나름의 돌파구였다. 꼭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과해야만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의욕이 넘쳤던 시절의 나는 공부보다는 진짜 일이 하고 싶었다. 언론고시 준비생 중에는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서 채용 게시판에 공채 소식 말고도 외주 제작사 채용 소식도 올라온다. 그 중 주로 EBS에 다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한 외주 제작사에서 조연출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넣었다. 어렵지 않게 면접 기회를 따낼 수 있었고, 면접 자리에서 바로 채용이 결정됐다. 방송국 공채 시험과는 차원이 다르게 채용 과정은 쉽고 빨랐다. ‘뭐가 이렇게 쉬워?’ 싶다가도 드디어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왔다. 조연출 기간을 거쳐 아침방송 코너 하나를 맡아 연출까지 해보니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시키는 것만 알아서 잘 하면 크게 욕먹을 일이 없던 조연출 시절에 비해, PD는 상당히 버거운 자리였다.


촬영 현장은 항상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나는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이 있지도, 리더십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촬영 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는 항상 가슴을 졸여야 했고, 촬영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인생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나도 밤을 새고 모든 정신과 체력을 쏟아부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 작고 귀여웠던 월급도 한 몫 했다. 조연출로 입사했을 때 받은 월급이 세전 80만 원이었는데, 내가 무슨 1990년대에 일을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다. 행복하지도 않고, 힘만 드는데 설상가상 돈도 못 번다니. 그래서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그런 내가 왜 다시 방송을 만들겠다고 돌아온 걸까? 그것도 PD가 아닌 작가로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