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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리 Jul 23. 2022

개처럼 자고, 개처럼 일어나기

개와 살다 보니 개처럼 살고 싶어졌다

여름날의 새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뒤척이다 눈을 뜬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바로 우리집 막내 강제제. 언제 일어나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침 해가 떴으니 빨리 일어나라는 무언의 압박

열에 아홉은 나보다 먼저 일어나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제제를 볼 수 있다. 시계를 보면 보통 6시 언저리. 물론 나는 더 자고 싶다. ‘제제야, 언니 30분만 더 잘게'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건네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럼 곧바로 일어나라는 듯 ‘멍!’ 하고 짧게 짖는 제제. 아, 잊은 게 있다. 모닝 간식.


한때 제제는 새벽에 공복토를 자주 했는데, 그래서 요즘은 아침 식사 전 공복을 달래주기 위한 모닝 간식을 조금 준다. 이제 공복토는 거의 안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언니들이 간식을 주니, 제제에겐 당연한 일과가 됐다. 간식을 보관하는 서랍을 열면 제제가 와다닥! 조급하게 다가온다. 간식 봉지를 들자 요란하게 흔들리는 꼬리. 제제의 최애 간식, 황태 조각을 하나 꺼내 입에 물려주면 오물오물 순식간에 사라진다. ‘더 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제제의 얼굴을 붙잡고 그제서야 아침 인사를 한다. ‘잘 잤어, 제제?’


제제의 얼굴을 마주하고 달달한 아침 인사를 나눠도 내 몸과 정신은 아직 졸음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적어도 1시간은 더 잘 수 있는데 제제는 꼭 새벽에 나를 깨운다. 잠귀가 어두운 나의 사람 동생은 아직도 한밤중. 잠이 깨지 않으면 나도 그 옆에 다시 눕는다. ‘제제야, 언니 정말 30분만 더 잘게' 하고.


사람이 피곤하면 잠을 더 자려고 하듯이, 제제도 전날 산책을 많이 했거나 잠이 부족했으면 모닝 간식만 챙겨먹고 다시 눈을 붙이곤 한다. 그런 날은 땡큐. 하지만 대부분의 날엔 어림도 없다. 다시 일어나라고 계속해서 짖고, 장난감을 가져오고 던져달라 짖고. 눈만 감고 손으로만 건성으로 놀아주면 또 안 된다. 눈도 마주쳐가며 열정적으로 놀아줘야 한다. 원래 개들은 새벽부터 이렇게 노나? 그렇게 반 수면 상태로 제제와 실랑이를 하다 보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된다. 잠도 제대로 못 잘 바엔 일어나서 뭐라도 할 걸. 후회하면서도 잠이 많은 나는 내일 또 이러겠지.


제제가 항상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 지나고 쌀쌀한 가을이 오면, 그래서 점점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면 제제의 기상 시간도 같이 늦어진다. 겨울이 되면 똑같은 6시라도 제제에겐 한밤중이다. 밖이 어두우니 7시가 되어도 쿨쿨. 그럴 때면 오히려 내가 제제를 깨운다. 출근 전에 산책도 시키고 밥도 먹여야 하니까 말이다.

겨울에는 불을 켜고 헤어 드라이기를 써도 바깥이 어두운 시간이면 제제는 잠을 계속 잔다

나의 하루는 계절이 바뀌어도 늘 비슷한 시간에 시작되는데, 제제의 하루는 해가 뜨면 시작이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날이 밝아지면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해 뜨는 시간, 날이 밝아지는 정도로 자기가 일어나야 할 때를 판단한다니. 역시 자연의 일부, 동물답다. 제제는 살면서 자기가 체득한 흐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제제처럼. 자연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본다. 날이 밝으면 일어나서, 텅 빈 배를 채우고, 놀며 쉬며 에너지를 분출하고, 밤이 되면 다시 잠이 드는 하루. 아주 옛날, 아기였을 때나 경험해 본 일이다. 언제 또 그런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 사회적 또는 관계에 의해 약속된 시간 말고 자연히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일상 말이다. 나도 가끔은 자연의 일부이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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