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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리 Jul 24. 2022

방송 그만두고 다이어트 했습니다

제가 한 선택은 맞습니다만 2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자아 성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워낙 박봉인데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느라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본가에 내려가지 않는 이상 생활비를 벌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첫째는 ‘9 to 6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송 일을 할 땐 야근은 기본이고, 한창 편집 기간이면 사무실에서 접이식 침대를 펼쳐놓고 자곤 했다. ‘저녁 없는 삶’이다. TV 프로그램은 여름 휴가철에도 쉬어 가지 않기 때문에 가족,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힘들었다. 천금 같은 휴일, 여의도 벚꽃놀이 인파를 뚫고 종편 작업을 위해 종편실로 넘어갈 때의 심정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둘째, ‘퇴근 후에는 신경을 꺼도 되는 일’이어야 했다. 물론 방송 일을 하면서는 그럴 수 없었다. 편집이 잘 안 풀린 채 집에 돌아오면, ‘내일은 몇 분이나 붙일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었고, 출연을 번복했던 출연자와의 촬영을 앞둔 날에는 ‘내일 갑자기 연락이 안 되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팀장에게 가편집 영상을 보내놓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수정이 많으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이 컸다. 퇴근을 해도 온 정신은 일터에 묶여 있는 셈이었다.


머지않아 두 가지 기준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냈다. 한 출판사의 전자책 제작 보조 업무였다. 보통 수준의 컴퓨터 활용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마감 일자가 시급하지 않아 여유가 있었다. 물론 퇴근 후에는 업무에 대해 일절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규칙적인 출퇴근 생활에 나는 금방 적응했고, 만족스러웠다. 다만 PD를 그만두고 싶었던 거지,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그만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시기의 나는 조금 방황을 했다. 뚜렷한 목표 없이, 남는 시간에는 그냥 남들 다 하는 공인영어시험과 한국어능력시험 공부를 했다. 어디다 쓸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단조로운 9 to 6 일상이 이어지던 시기, 내가 유일하게 몰두했던 건 다이어트였다. 원래도 통통한 체격이었지만 잦은 야근은 연쇄 야식 섭취를 불러왔고, 스트레스를 술과 음식으로 풀었던 탓에 일하는 동안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기도 했다. 불규칙한 생활 탓에 다이어트는 작심 1일도 못 가곤 했다. 이젠 시간도 있으니 살 좀 빼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엉겁결에 시작했지만, 나 자신도 슬슬 살 빼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새벽이면 한강에 나가 달리기를 하고, 스스로 짠 식단으로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퇴근 후 저녁엔 또 운동을 하고. 일상의 포커스가 다이어트에 맞춰져 있으니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5개월 만에 20kg 가까이 감량하고 보니 삶의 만족도가 엄청 높아졌다. 그러다 "다이어트 업계로 취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새해'마다, '계절'마다, '매월 1일'부터,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반복해서 결심한다. 목표 체중을 달성하더라도 요요 없이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다이어트 관련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거라 예상했다.


모처럼 하고 싶은 게 생기니 신이 났다.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면서, 식품영양학이나 운동생리학 같은 책도 사서 읽고, 민간 업체에서 주는 자격증도 땄다. 지식을 넓혀보겠다고 아무 연고도 없는 학회까지 가서 발표를 듣는 열정도 있었다.  그럼에도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관련 전공도 아니고, 자격증만 딴다고 취업이 잘 될까?’ ‘이제 와서 대학을 다시 갈 수도 없고, 취업이 계속 안 되면 어쩌지?’ 이런 불안감 속에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함께 일했던 작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같이 방송 해보지 않겠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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