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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리 Jul 26. 2022

바둑이 어게인

10년 만에 다시 마주한 내 생애 첫 반려견

우리에겐 제제 이전에 바둑이가 있었다. 흰색 바탕에 군데군데 갈색 얼룩이 있던 아담한 몸집의 암컷 개. 바둑이는 외할머니가 키우던 개였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같이 살게 됐다. 외가에 놀러 갈 때 가끔 얼굴만 비추던 나는, 바둑이에게 낯선 인물이었을 것이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몹시 짓고 경계했던 걸 보면 말이다. 몸집이 작았어도 집 지키는 역할은 톡톡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 웬일로 바둑이가 짖지도 않고 꼬리까지 흔들며 졸래졸래 따라오는 게 아닌가. '평소와 무엇이 달랐을까?' 생각해 보니 그때 내 가방 속에 붕어빵이 있었더랬다. 역시 맛있는 냄새를 싫어하는 개는 없다. 붕어빵 조금 떼어주는 것으로 바둑이와의 교감에 성공한 나. 그제야 나도 자신의 가족 무리에 포함시켜 준 듯했다. 


먹을 것으로 환심을 사서 바둑이와 겨우 친해졌지만, 타지로 대학 진학을 한 탓에 이별을 해야 했다. 그래도 한 번 우정은 영원한 우정. 가끔 주말에 집에 내려가면, 아무리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도 바둑이는 꼬리 치며 반겨줬다.


어르신들이 흔히 '발바리'라고 부르는 시골 믹스견 바둑이. 바둑이는 정말 똑똑한 강아지였다. 식구들이 멀리 외출할 때와 동네 가까운 곳에 다녀올 때를 구분했다. 집 근처 슈퍼에 가거나 학교 운동장에 운동하러 갈 땐 꼭 따라오지만, 엄마가 출근을 하거나 동생이 등교를 할 땐 마당까지만 배웅을 해줬다. 식구들이 돌아올 때쯤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멀리 모습이 보이면 달려와 마중 나오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깔끔하기는 또 어찌나 깔끔한지 대소변은 절대로 집 안에서 보지 않았다. 동네 어딘가를 쏘다니다 밖에서 해결하고 왔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니 바둑이가 배변활동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정말 가물가물하다.


옥상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던 위풍당당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한 바둑이. 바둑이는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엄마와 동생을 따라 길 건너 마트에 다녀오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차를 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둑이는 어릴 때부터 마당에서 풀어놓고 키웠던 개라 목줄을 갑갑해했고, 우리 또한 초보라 바둑이를 리드하기가 어려웠다. '괜찮겠지', '지금까지 알아서 잘 다녔으니까' 안일하게 생각하며 방심한 사이, 사고는 예기치 않게 벌어진 것이다. 


당시 나는 타지에서 일을 하고 있던 중이라 전화로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집에 내려가면 언제나 볼 수 있었던 바둑이를 이제 볼 수 없다니.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한동안 불쑥 우는 일이 많아졌다.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엄마도 퇴근 시간 맞춰 집 앞에서 자기를 기다리던 바둑이가 그립다고 했다. 휴대폰 카메라 기능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을 때라 남아있는 바둑이 사진은 딱 한 장뿐이다. 학교에서 사진 실습수업이 있던 학기에 찍어 둔 흑백 사진. 그게 마지막까지 간직하게 될 바둑이 사진일 줄은 몰랐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바둑이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무지개다리는 잘 건넜을까? 먼저 하늘나라로 간 외할머니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을까? 지금쯤이면 환생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진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바둑이가 우리 곁을 떠나고 8년이 지난 2017년 8월. 정부 정책을 소개하는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템 중 하나가 '동물복지 정책'이었고, 월드컵 경기장 반려견 놀이터에서 열렸던 유기견 입양 행사 현장을 촬영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견 토리를 만나고, 마약 방석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바로 그 행사였다. 


주말이기도 했고, 웬만하면 촬영 현장에 잘 가지 않지만 그날은 예외였다. 인터뷰에 응해주는 시민이 없을까 봐, 동생에게 인터뷰를 시킬 참이었다. 동생은 친구들과 유기견 산책 봉사를 몇 번 해본 적이 있으니 대답을 잘해줄 것 같았고, 동생만 보낼 수 없어 나도 함께 가게 됐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둑이와 똑 닮은 유기견 해리, 지금의 제제를 만난 것이다.  


싸이월드 사진첩에 남아있던 2007년도의 바둑이와 10년 후인 2017년에 만난 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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