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서 있는 곳은 어느 쪽 입니까?
“농부가 거두는 수확은 그의 권한 밖에 있는 강수량과 토지의 비옥한 정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그의 노동에 따라서도 결정된다.”
-파스칼
직장인(職場人):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직업인(職業人):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여기에 똑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정의하는 이름표가 다릅니다. 한 명은 직장인, 또 한 명은 직업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일을 합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이 둘의 목적과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직장인은 일하는 공간인 장(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고, 직업인은 업(業)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직장인들은 직업인으로서의 필요조건을 갖추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직장에서 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진 직업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는 직장인이 부지기수입니다.
일과 삶의 분리를 이상할 정도로 강력하게 주장하는 워라밸 예찬론자에게 직장은 단지 일하는 시간을 채우면 급여가 나오는 공간일 뿐입니다. 진정한 삶은 이미 오전 9시부터 시작 되었지만, 이들은 이 공간을 벗어나는 오후 6시가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우리를 행복의 길로 안내한다면 이 모든 것은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행복한 삶이지, 고통스럽게 일만 하다 끝나는 인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직업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직장인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좋지 않은 상황으로 내몰게 됩니다.
직업인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단기적으로만 놓고 봤을 때 이들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일의 명분을 찾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좀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관문만 무사히 통과하면 직업인이 명예롭게 생각하는 업에 대한 소명의식은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인에게 출퇴근 시간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생각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념의 문제로, 단순히 기계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되는 것과 같은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레카!(알아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원전 350년 경 이탈리아 남쪽, 시라쿠사의 왕인 히에론 2세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신전에 바칠 왕관을 제작하기로 합니다. 왕관을 제작하는 금 세공사에게 재료로 쓰일 금을 주고 왕관을 주문했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공사가 받은 금을 전부 사용하지 않고 은을 섞어서 왕관을 만들고 남은 금을 가로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이틀 안에 왕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아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왕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진위여부를 가려내야 했던 아르키메데스는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 채, 물이 가득 차있는 목욕탕의 욕조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그자 물이 넘치는 것을 본 아르키메데스는 갑자기 유레카를 외칩니다. 물체, 즉 금과 은이 가지고 있는 부피와 질량의 차이를 이용해 왕관의 진위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는 실마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방법으로 왕관이 순수한 금이 아닌 은이 섞인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시간과 순간의 총량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입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갑자기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을까요? 아닙니다. 아마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의미 있는 착상을 해내기까지 평생을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의 멈춤, 휴식과 같은 힐링과 위로의 말들이 유행합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생각을 멈춰야 할 사람들보다는, 지금보다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한 이들이 더 많습니다. 힐링과 휴식이 아닌 훈련과 몰입 말이죠.
혹시 이런 상상해보셨나요? 잠시 멈추고, 휴식하고, 지금의 노력으로 충분하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분들의 하루가, 과연 멈추고 휴식하고 만족하는 식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쏟아붓는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은 그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힘들게 노력하고 죽을힘을 다해서 그 자리에 올랐으면서, 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해왔던 정반대의 길을 권하는지… 아마 그런 글을 토해내는 이유는 아쉬움일 겁니다.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
그렇습니다. 생각의 잠시 멈춤과 진정한 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알면서도 이를 실천하지 못해 아쉬워하지만, 반대 급부의 사람들은 이미 생각하기를 멈춘 채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즐기면서도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위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배울 준비가 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그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막연히 미루고 유예시켜 왔을까요? 똑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해도 생각과 태도에 따라 누구는 무언가를 배우고 발견하고 깨닫지만, 누군가는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겐 욕조의 물이 넘쳐흐르는 것이, 떨어지는 사과가 별다른 의미 없는 현상에 불과하지만, 고민과 생각의 방향을 특정한 주파수에 맞추고 몰입하는 이들에게 물과 사과는 본질의 발견을 위한 착상이 됩니다.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했다면 반드시 목적과 목표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야 합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흐지부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버티고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회사가 아닌 동호회에서나 통용되는 미덕입니다.
목표에 부합하는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몰입합니다. 몰입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목표를 세웁니다. 하지만 낮은 목표를 가지고는 몰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몰입은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성과와 결과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이유와 필요를 스스로 납득할 때 나타나는 특별한 업무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목표에 대한 내적 기준이 외부의 기준을 훨씬 초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내놓은 결과에 칭찬해도 정작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직업인입니다.
반면에 타인의 기대와 기준에 겨우 맞추면서도 스스로 안도하며 만족하는 패턴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를 통해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의 기준과 편안함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결코 남이 나를 바로 세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이 말은 누군가 지시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혹시 일방적인 업무지시를 통한 수동적인 일의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볼 질문이 있습니다. 왜 수동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지금 맡고 있는 일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일을 맡고 있는 당사자입니다. 상식적으로 그 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전문성에 있어서도 그 업무만큼은 다른 누군가를 압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일방적인 지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일과 업무에 대한 고민과 몰입이 부재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입니다.
지금 서있는 바로 그 자리, 그 위치가
정확히 당신이 있기로 선택하고 결정한
그 장소입니다.
수많은 시간의 고민과 깊은 몰입이 있었다면, 나보다 고민의 밀도가 적었던 누구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던 수동적인 직장인으로서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신뢰를 잃고 일방적인 업무지시를 받고 있는 상황까지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까지 오게 된 과정은 까맣게 잊고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조직은 이런 문제점이 있어.’ 하지만 문제를 조직에서 공론화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요? 이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조직은 원래 그래. 어쩔 수 없어.’
‘윗사람들이 그런데 내가 뭘 어쩌겠어.’
답이 없는 조직, 개념 없는 상사,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누가 결정한 일일까요? 그리고 왜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혹시 일자리, 직장의 필요성 때문인가요? 막상 내가 원하는 다른 곳을 선택하자니 그만큼의 역량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 그동안 역량과 경험을 쌓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이 보일 듯 말 듯,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처음 몇 년은 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삶의 자율성을 잃어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직업인은 직장에서 자율성을 획득하는 반면, 직장인은 직장이 내 삶과 자유를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역량 있는 인재가 이직을 하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분명합니다. 회사가 그들에게 더 이상 배우고 성장할 여건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성장하는데 회사가 성장하지 못하면 사람은 떠나게 됩니다. 반대로 회사가 성장하는데 사람이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성장하는 속도와 방향이 맞아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개인의 성장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회사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에 대한 후행지표입니다.
개인이 성장하면 회사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개인이 가진 역량의 총합이 조직이고, 이러한 조직이 만들어가는 것이 브랜드입니다. 위대한 브랜드는 훌륭한 개인들이 모여 있는 뛰어난 조직에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브랜드를 가꾸어 가려는 조직은 먼저 사람에 투자해야 합니다. 직장인을 직업인으로 성장시켜야 할 더 큰 책임은 조직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경험과 훈련, 성장을 위해 투입해야 할 비용과 이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냅니다. 기껏 투자하고 성장시킨 인재가 이직을 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더 끔찍한 상황은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회사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인재를 위한 투자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의 성장을 요구하고 강력하게 지원하는 조직을 이탈하는 사람들은 이미 성장의 의지가 충분하지 않은 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루라도 빨리 길을 비켜줘야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죠.
직업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직장인이 조직에 남아 중요한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브랜드의 실패 가능성과 정확히 비례합니다.
성장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 배움에 대한 열망이 없는 사람을 조직에서 빨리 내보내거나 개선하지 않으면, 마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듯 성장과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점차 발언권을 잃어가고 무능함은 조직의 문화가 됩니다. 안타깝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함께 갈 순 없습니다.
회사가 함께하는 사람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돕는 것은 브랜드의 성장은 물론이고, 건강한 사회와 조직을 위해 마땅히 필요한 일입니다. 이 과정을 제대로 제공한다면, 조직에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한 조직문화는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매한 조직에 애매한 사람들이 모여 애매한 일을 하는 것만큼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는 만족을, 누군가는 불만을 표시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역량 있는 핵심인재들이 어느 편에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답은 비교적 쉽게 나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고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낮은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때때로 훌륭한 경영자는 좋은 사람의 반대말이 되곤 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도전하며, 이 과정을 통해 성과를 내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요합니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하향평준화는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일수록 실제 문제해결 역량이 낮을 가능성이 높고, 이들은 불평불만을 이야기 하면서도 웬만해선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경험칙은 진실에 가깝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직업인이 되지 못한 채, 생존비법을 터득한 직장인이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는 경우입니다.
후배들을 끌어주고 직업인으로서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어야 할 자리에 직장인이 자리하게 되면 악몽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무엇을 지시해야 할지 모르는 역량과 경험이 부족한 직장인 상사는 모든 일의 역할과 책임을 애매모호한 경계에 두고 성과는 자신의 역할로,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테크닉을 터득하게 됩니다. 이런 꼼수조차 없었다면 그 자리에 무엇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요.만약 여러분이 젊고 더 성장하고 싶다면, 이런 장소와 사람들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강하게 훈련시키고 성장시켜줄 수 있는, 힘들지만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직업을 찾으면 직장은 어디에도 존재합니다. 직장인이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직업인이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습니다. 직장은 누군가에 의해 빼앗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업은 내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 인위적으로 잃게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도 거의 모든 회사들은 인재에 목말라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분야에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직업인을 찾고 있습니다. 반면에 많은 회사들이 갈수록 일할 장소를 필요로 하는 직장인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는 계속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은 직업인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직업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압도적인 인풋입니다. 평소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계신가요? 어떤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공부와 독서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과 도전의 결핍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평소 아침을 여는 시간은 몇 시입니까? 순전히 일하는 시간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몰입을 하고 있습니까? 주말은 무엇으로 그 많은 시간을 채우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하는 사람이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반드시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합니다. 마찬가지로 더 노력하는 사람들이 꼭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반드시 좀 더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당장 오늘 저녁의 즐거움이 있는 삶이라도 그 삶에 내일의 행복이 없다면 어떨까요? 그 삶이 내일의 나를 더 회사에 의존적인 직장인으로 강화시켜주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오늘의 노력이 내일뿐만 아니라, 당장 오늘을 위해서도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도전과 고통, 실패와 성취 같은 경험을 이야기할 수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만 반복된다면 내일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삶에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지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는 현명한 답을 찾길 바랍니다.
_ 마케터 강민호
<유튜브 바로가기>
* 출처.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