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것을 내려놓는다고 표현하지 마세요
“참 희한한 세상이다. 겉보기에는 개인주의가 점차 팽배하는 사회건만,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풍요가 남긴 부스러기 따위를 요구하는 것에 순순히 만족하고 있다. 그러다가 오락이나 수집 목공예 같은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풍요의 부스러기로 연명하던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_ 자크 아탈리
‘몇 달만 아무 생각 없이 좀 쉬고 싶다.’
회사를 그만두고 또 새로운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스타트업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죠. 모든 일, 특히 새로운 비즈니스가 늘 그렇듯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계획과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나름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작했는데, 시작도 못해보고 일은 또다시 꺾이고 말았습니다.
‘역시 세상일이란 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구나……’
나름 노력한다고 해도 여전히 많이 부족한가봅니다. ‘노력의 기준이라는 게 다른 누군가는 더 높은 거겠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세상일이 만만치가 않음을 느낍니다. 게다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변수까지 작용하니 노력도 보통의 노력으로는 운조차 쉽게 따라줄 것 같지 않습니다. 생각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생각의 질량과 실행의 빈도를 극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33살. 저는 본의 아니게 백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구매하고 선호하는 브랜드를 기준으로 세상을 연결하고, 나와 비슷한 선호와 구매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통해 자신도 모르고 있는 나의 진짜 취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브랜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 사람들의 브랜드 선호를 기반으로 좀 더 유의미한 연결을 만들고자 했던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자전거도 열심히 타고, 취미생활을 위한 핑계로 장비를 바꾸고 동호회 활동을 시작합니다. 평일에는 시간이 남아도는 관계로 카페에 가서 하루에 두세 권씩, 예전보다 책도 더 많이 읽어봅니다.
‘아, 몇 달만 아무 생각 없이 좀 쉬고 싶다.’
드디어 제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제 삶의 버킷리스트이자 또 하나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몇 달 정도 쉬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예측가능한 휴식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 이렇게 아무런 기약도 없이 자칫 잘못하면 평생 쉬어야 할 수도 있는 불안한 휴식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불안한 마음만 커져가면서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단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대체 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와 고민까지 이르게 됩니다. 몇 달만 아무 생각 없이 좀 쉬고 싶다던 소망이, 이제는 몇 달이라도 일하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 일명 워라밸.
그 당시에는 이런 용어가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았지만, 저에게 필요한 건 워라밸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워라밸과는 다른 측면이었습니다. 저에게 필요한건 라이프(life)가 아니라 워크(work)였으니까요. 보통 일이 있고, 여기에 개인으로서의 삶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워라밸을 이야기하지만, 저는 100퍼센트 개인의 삶으로 채워진 일상에서 일이 단 10퍼센트만이라도 차지하는 워라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사실은 마치 공기로 호흡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가 계획하고 원하는 수많은 삶의 목록에서 일이라는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만으로 삶을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일 하나만으로 삶을 채울 수 없듯, 삶이라는 공간을 오직 개인의 삶으로만 채울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혼자만의 시간만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과 삶의 공존 속에 존재하는 여백이지, 이 두 가지 항목이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한 채 남은 공백의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얼굴을 마주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줄 공간이 필요합니다. 함께하는 즐거움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공존하며 의미를 찾아줄 수 있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워라밸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일과 삶의 분리라는 워라밸에 반대합니다.
워크라이프 밸런스는 일과 삶을 둘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는 것입니다.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만큼 불행해지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직장에서의 시간은 오직 일이고, 그 나머지 시간만을 삶으로 정의하며 이를 분리한 삶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삶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직장과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일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의 밀도가 우리의 행복을 규정하는 단위라면, 대체 우리에게 삶과 행복이란 얼마나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는 잉여가치에 불과한 것일까요.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인 <소유냐 존재냐>에서 다음과 같이 일침을 놓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로 부터의 자유’를 구가하기는 했지만 ‘~를 향한 자유’로의 도약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제한과 의존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소망 말고는 자기들이 향해야 할 아무런 목표도 추구하지 않은 채, 오로지 반항만 한 것이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12시간이 아닙니다. 당연히 12시간짜리 절반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늘 시간과 여유가 부족한 결핍의 상태에 놓여있게 됩니다. 이런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워라밸, 탕진잼, 소확행이라는 이름의 마취를 놓기도 하죠. 말이 좋아 워라밸, 탕진잼, 소확행이지 사실상 도전과 희망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언어유희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일에서 다 쓰고 남은 잉여의 몫을 누리기 위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본질적으로 삶을 소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더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첨병인 것이죠.
지금 여러분들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요?
일이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일은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단지 아직 그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가, 마윈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구요?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라구요? 반대로 질문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위대함과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함부로 단정할 수 있죠?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증거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위대한 업적과 성과에 대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누구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보다 더 뛰어난 성과와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은 바로 우리들의 이런 가능성을 모색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섣불리 자신의 한계를 단정해선 안 됩니다.
일이라는 수단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서이자 훈련방법입니다. 동시에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가치 있는 결과를 창조하는 도구입니다. 누군가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나아지고 개선되며 사회는 좀 더 풍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하게 됩니다.
일의 의미를 단순히 워크(work)라는 한 조각의 파편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라이프(life)라는 삶의 관점에서 조금은 더 폭넓게 관조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과 삶이 통합된 일상 속에서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10년, 20년 후의 우리는 다채로운 감정을 이해하고 따뜻한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소한 일이라고 쉽게 단정 짓지 마세요. 제가 아는 한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그 일을 잘 해내주고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일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라는 이름의 한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껏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사행습인운(思行習人運)이라고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생각을 바꾸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마음먹은 우리들의 그 생각 하나에 내가 바뀌고 가족과 이웃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우리 사회가 바뀌고, 인류의 역사가 바뀔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은 그 누구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가능성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누군가의 삶이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시작된다면 이보다 더 큰 개인적 비극, 이보다 더 큰 사회적 불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오후 6시에 시작되는 하루에 반대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퇴근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우스갯소리로 다음날 일찍 퇴근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일이란 그렇게 버티면서 살아가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딛고 일어서라는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버티는 삶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극복’입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24시간의 온전한 주인공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의 주체성 회복을 통해 자유를 획득한 직업인으로 남길 바랍니다.
부디,
포기하는 것을
내려놓는다고
표현하지 마세요.
_ 마케터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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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_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