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케터 강민호 Jul 30. 2019

마음을 움직이는 기본

차별화의 기회를 발견하는 방법.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_ 법정스님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한창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고객사 미팅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봅니다. 마침 그 시간이 택시 잡기가 쉽지 않은 시간인지, 도로 위에는 택시도 별로 없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상 빈 택시가 오면 저보다 한참 늦게 온 사람들이 제가 서있는 곳보다 살짝 앞 쪽으로 가서는 먼저 택시를 잡아탑니다.


“얌체 같은 사람들……”


  ‘아, 그냥 내 차를 가지고 가야겠다.’ 택시 잡기를 포기하고 회사 주차장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마침 빈 택시 한 대가 앞을 지나갑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웠습니다. 으레 택시에 앉자마자 목적지를 이야기하려는 찰나,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정도의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택시기사님이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제 차에 탑승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묘합니다. 손님에게 당연히 건네는 인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저에게는 이 인사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택시를 타면서 ‘제 차에 탑승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인사 한마디를 다르게 전달하는 게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 줄이야. 갑자기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많은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사님은 아무런 말씀도 없이 묵묵히 운전을 하시는데, 저도 내릴 때까지 별말 없이 계속 그 인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기껏해야 몇 분 걸리지 않는 곳이라 금세 도착해서 택시비를 지불합니다.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기사님도 호탕하게 인사를 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일 많으실 겁니다.”


  택시에서 내리고 나니, 택시를 탔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일하면서 이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해주시는 분도 계시구나.’ , ‘별 것 아닌 일상의 인사도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어줄 수 있구나.’


  나름 매일 하고 있는 일이 경영전략이, 브랜드니, 마케팅이 어쩌고 하면서 혹시 그동안 본질적인 무언가를 못보고,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 날 우연히 마주친 택시기사님은 늘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이 잊고 있는 진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하필이면 택시도 잡히지 않았던 그 날, 짜증을 가득 내며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순간에 만난 한 대의 택시는 아직도 저의 마음속에 큰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요? 결국 무슨 일이든 그 시작과 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언가를 파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의 목표라면,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은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죠. 무언가를 팔려는 노력보다는 누군가를 풍요롭게 하려는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본질적인 목적에 닿으면, 그보다 낮은 지점에 존재하는 일의 목표는 자연스레 달성됩니다.


  어느 병원의 브랜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의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병원이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십중팔구는 그리 호의적인 느낌이나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겪는 일들의 대부분은 유쾌한 경험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습니다.


 기껏 오랫동안 기다려서 만난 의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 감정, 공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아까 택시기사님처럼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인터넷에서 치면 나오는 이야기를 기계적으로 2~3분 정도 해준 뒤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은 상황에 놓여 찾아간 병원이지만, 이곳에서는 차가운 권위가 흐릅니다. 몸이 아파서 입원을 하거나 병원을 옮기게 될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검사를 왜 다시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한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그냥 다시 해야 한다”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 뿐입니다. 병원이라는 장소는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아파 가는 곳인데, 이미 예민해있는 감정은 추스를 여유도 없이 날카로운 말이 되어 밖으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모든 병원과 의사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병원의 솔직한 느낌은 그랬습니다. 병원의 의사선생님들에게 제가 기억하는 그 택시기사님 정도의 배려만 있어도 조금은 더 환자들의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에 대한 약간의 선입견은 잠시 마음속에 접어두고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은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요청합니다. 기업들이 겪는 문제는 자명합니다. 대부분 성과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컨설팅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먼저 브랜드의 문제를 내보이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달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의뢰한 이 병원은 조금 달랐습니다. 지금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잠재적인 문제를 발굴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요청받은 컨설팅 중에 가장 바람직한 경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경영 매출자료를 바탕으로 연평균 성장률인 CAGR(Compound Annual Growth Rate), 고객생애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RFM(Recency, Frequency, Monetary) 분석, 마케팅 전략을 위한 7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process, physical evidence, people) 등의 기본적인 분석을 마무리했는데, 여기서 굉장히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찾아오는 고객의 90% 정도가 실제로 이곳을 경험한 지인들의 추천을 통해 병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NPS(Net Promoter Score)라고 하는 순추천지수 조사를 실시했을 때, 고객추천지수가 웬만한 기업에서는 근처에 도달하기 어려울 만큼 높았습니다. 이 병원이 별다른 외부 마케팅 활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서비스를 경험한 고객이 다른 사람에게 그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는 것은 해당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가 높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고객들이 왜 이렇게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는지 알아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를 검증하기 위한 별도의 설문조사와 FGI(Focus Group Interview)라고 하는 표적집단면접을 실시했습니다.


  “고객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이 병원을 주변의 지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다방면의 조사를 했지만 확실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직접 고객 몇 명을 회사로 모시고 와서 이야기를 하던 마지막쯤에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님, 이 병원을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혹시 다른 병원도 이렇게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 있나요?”

  제가 이렇게 질문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아니요, 지금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다시 질문했습니다. “왜죠? 다른 병원도 잘하는 곳이 많잖아요. 그럼 추천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마지막에 이 여성분의 답변이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여기는 뭔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분이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합니다.


  “맞아! 여기는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가 일어나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주잖아. 내가 어디 가서 의사들한테 이런 인사를 받아보겠어?”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똑같이 “맞아, 맞아” 하며 공감을 표시합니다. 컨설팅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를 반드시 경험해보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들어갑니다. 여기도 사전에 고객으로 위장해 방문하고 진료를 받아본 적이 있기에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생각해보니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의 45도로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저는 진짜 고객의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고 프로세스를 한번 살펴본다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죠. 기계적인 체험을 한번 하고는 정말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마는 실수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고객과의 만남에서 이런 실수를 바로잡았기에 망정이지 큰 것을 놓칠 뻔했습니다.


 이 병원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 그리고 단순히 방문하는 것을 넘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이유, 그 이유는 뭔가 거창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이 진료를 잘 보고 친절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기본 중에서도 진짜 기본에 해당하는 사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기본을 놓치지 않은 것이죠.


  이런 기본을 발견해내는 차이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있을까’라는 목표가 아닌,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라는 목적의 물음을 답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풍부한 미사여구와 엄청난 기술이 담긴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따뜻한 마음이 담긴 한마디의 인사, 그 인사를 건네는 사람의 온기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 병원의 차별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의사와 환자의 첫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안녕하세요”라는 단순한 인사였습니다.


  “제 차에 탑승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일 많으실 겁니다.”


  택시기사님이 건넨 인사 한마디는 누군가의 마음을 풍요롭게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사는 누군가의 마음을 풍요롭게 변화시키고 있을까요?


오늘 여러분이 건넨 인사는 어땠나요?



_ 마케터 강민호


* 출처_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에서...



<유튜브 바로가기>

https://bit.ly/376DZa9


작가의 이전글 오늘을 살게 만드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