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가는 부분들을 읽어나가며..
대화의 밀도
극히 선택된 일부분들,
내가 관심 가는 부분들을 읽어나가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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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화에서 중요한 ‘향유’라는 것을 전달하려는 듯했다. 우리 모두 그 ‘향유를’ 즐거워하고, 즐겁게 여기기 때문이다.
… 즐거운 대화란 무엇일까? 저자는 그 대답 중 하나로 경청을 말하고 있다.
‘대화의 비율에서 황금비율로 7:3이 있다. 경청이 3, 이야기가 7이다.’
사실 난 이 비율을 보면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과거 나의 대화 이력과 현재에도 가끔 튀어나오는 이력, 그리고 이 비율을 내가 섞어 보았을 때 나조차도 느껴지는 그 황금 비율의 맛이 내 입으로 느껴지고 그게 전해지고 흘러 들어가 내 머리, 내 온몸을 적셔 들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말이 옳다. 그렇다고 저 비율을 무조건적으로 지키는 것은 사람인 이상 저걸 일일이 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쉽지 않다. 가끔은 어길 때도 있을 것이다. 친한 친구와 저런 것 없이 허물없음으로 대화하기도 하지는 않는가? 뭐, 그렇다고 해도 일정한 비율의 법칙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화는 참 복잡하다. 그래. 복잡 미묘하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게 대화나 말을 하다 보면 말이 ‘어, 이 방향이 아닌데?’하며 어긋나 새 가기도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 또 말에 있어서도 상황에 따라 어떤 말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것을 듣고 앉아있어야 하는지, 이것을 이렇게 나가버릴지 이런 태도들도 참 선택하는 것들의 연속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대화에 대해 더 알고, 책을 읽고, 복기를 해나가야 한다고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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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자는 또 ‘복기’도 강조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3패를 거둔 뒤 프로 바둑 기사들과 무엇이 잘못됐는지 대국을 복기하며 결국, 4번째 경기에서 승을 거둔 그날, 이세돌은 여유로운 손짓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복기를 하고, 알파고의 허점을 파악한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이 말에 참 동감하고 동의했다. 복기는 바둑에서 나도 바둑을 모르지만 흔히 듣던 말인데, 복기를 함으로써 허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을.
... 누구든 요리나, 공부나, 게임 등 할 때는 모르지만 그 과정을 녹화하여 자신이 지켜본다고 한다면 아마 쪽 팔려 보이거나, ‘내가 이걸 어떻게 보나’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우선, 나 조차가 그 느낌을 안다. 나도 해봤으니까... 그렇게 전문적이 게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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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대화도 복기를 통해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이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다시 건축하고, 쌓아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더 건설적이고, 더 좋은 대화를 위한 양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복기의 중요성을 알고, 삶에서 중요한 습관으로 자리 잡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또 씁쓸한 대화도 있다고 한다. 술을 먹고 숙취가 나서 머리가 진명 나듯. 쥐가 나듯. 대화에도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이다.
... 저자는, 한 지인의 모임에 초대를 받아 피곤했지만 고마움과 책임감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그곳은 호텔이었고, 대단한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하는 대화가 ‘이번 우리 회사 상장 기대치 높다. 주식 매수할 준비 하라!’, ‘사실은 외국에 있는 명문대학교를(… 이것을 보며 부끄러운 태도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말을 하는지 저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나는 어디 어디 동 어디 아파트에 살고 있다.’까지도 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그래서 대화로 보이나 사실은 자의식 과잉으로 덮인 대화였다고 말한다. 결국, 자랑거리만 내놓는 대화가 된 셈이다. 이런 대화를 보며 차라리 고요함이 그리웠을 정도라고. 이것이 무슨 말인지 나는 책을 읽으면서 단숨에 이해했다. 대화에 양분, 그리고 ‘질’이라는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자랑’이라는 부분으로도 분류되어 다가왔다. 자랑이 나는 그렇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어딜 가든 과한 건 역시 탈이 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정도가 있다고 당연히 생각된다. 이건 이치다.
따라서,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의 ‘질’이다.
… 이혼 관련 상담을 받을 때도 있는데 보면 ‘벽’과 말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혼하겠다고.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이 말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느껴지고는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표현을 했다. 그래서 얼마나 만났냐 라는 그런 것보다는 얼마나 대화의 질이 높은 대화를 많이 했느냐로 관계를 정의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의문을 던지는 동시 저자의 생각을 던졌다. 물리적인 시간보다 정서적 교감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라는 것으로. 사실 나는 이 부분에 상당수 공감이 되는 듯하다. 또한, 저자는 ‘그 사람을 자주 만나도 대화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면, 결국 상실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한다. 이 부분도 공감이 만 배는 됐다. 사실 대화를 왜 하는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고,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 사람은 말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욕구라고 한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가진 욕구 부분이 상당수 해소된다고 한다. -대화의 밀도.
이를 생각하면 우리는 대화를 왜 하는지, 저자가 무엇을 우리에게 전달하려는지 읽어본다면 누구든 이를 캐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알 때에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삶, 인간관계, 일, 가족, 연인 등 모든 부분에서 삶의 질이 최소 한 단계 이상은 상승하리라 믿는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인간이다. 기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