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서리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아기 낳은 날 새끼줄에 빨간 고추를 달아 걸어 두는 삼 줄 모양으로 엮어서 학교 건물 뒤쪽에 있는 화장실 앞으로 데려가셨다. 분명 죄인들의 행색이었다. 우리들의 상의 앞섶은 정도의 차이는 좀 있었지만 다들 불룩하였다.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바로 아침 자습 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한탕해 온 복숭아였다. 아직 덜 익어서 땅땅한 복숭아는 꺼끌꺼끌한 터럭이 있어 온 몸이 간질간질한 나는 이미 속으로 울고 있었다. 복숭아의 기다란 이파리가 불룩한 배꼽 밑으로 새파랗게 삐져나왔다. 서리를 한다고 뛰어들었으니 제대로 따는 법도 모르고 거의 훑다시피 해서 획득한 것이라 거칠기 그지없었다.
설익은 복숭아를 과수원 아저씨는 어린 학생들에게 오십 원에 일곱 개씩에 팔았다. 한 개에는 십원인데 처음으로 출시된 라면이 이십 원에 한 개였다. 계란 크기 만 한 복숭아를 그런 가격에 사 먹기보다는 나무에 열린 걸 그냥 따먹는 편이 났다는 무리한 판단을 우리 중 누가 해 냈을 것이다. 통도 크지. 학교에 오자마자 제일 일찍 온 아이들 위주로 몇 명이 작당을 하고 평소 살펴 둔 그 과수원으로 갔다. 약간 언덕진 곳으로 올라가자니 슬리퍼 사이로 이슬이 젖어 발가락이 흥건해졌다. 풀 섶이 종아리를 스치는 느낌이 아주 고약했다. 그래도 목적물을 향해 원두막 할아버지도 안 계신 틈을 타서 우리는 돌진하였다. 마치 전쟁 때 총공격을 위해 움직이는 군사들의 용맹스러운 모습과도 흡사했다. 키가 얼추 되는 곳만을 공략했는데도 우리네 보따리는 금세 불룩해졌다. 집에서 자고 얼굴만 괭이 세수를 하고 학교에 온 터라 내 쌍가마 머리는 제대로 된 가르마가 온 데 간 데 없이 흩어졌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우리 일당은 줄달음으로 담을 넘어 독서장을 지나 학교로 왔다. 수돗가에서 한 개를 씻어 껍질째 먹어보니 겉껍질이 까륵하니 씹히는 게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속살 맛은 달랐다. 파각 파각 부서지는 그 맛이라니. 우리들의 아침 간식으로 그렇게 꿀맛인 것은 드물지도 모른다. 신발은 이미 죽탱이가 되었는데도 우리는 표정 정리를 하고 교실로 향했다.
흥분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우리는 뭔가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까지 가슴을 콩닥거리게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처음 알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긴 혀를 휘돌리며 침까지 발랐다. 첫째 수업 시간이 무슨 시간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친구는 그중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땡땡땡~~~ 쉬는 시간이 오자 , 눈빛이 번쩍대는 우리는 가진 전리품을 어찌할까 하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만 가지 생각으로 십 분의 쉬는 시간은 지나가고 시작종이 울렸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다른 시간과 다름없이 출석부와 책 한 권을 오른손으로 대학생처럼 들고 드르륵 교실 앞문을 여셨다. 평소 그토록 잘 생긴 선생님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었다. 너희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기 물건이 아닌 것은 모두 윗옷에 담으라고 하셨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새벽부터 큰일을 치른 우리 몇몇은 손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감당하기에는 곤란하기 짝이 없는 이 물건을 어찌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 채 우리는 교실 밖으로 쫓겨 나왔다. 반 학생은 육십 오명 정도 되었다. 교실 밖 뒤꼍에 있는 수돗가에는 청명한 햇살이 방긋 웃고 있었지만, 그것이 비웃음으로 보이다니 이건 또 웬 상실감이랴.
이윽고 북어가 묶여서 행진하는 것처럼 우리 반 모두는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선생님께서는 누구누구가 그랬는지도 묻지 않으셨다. 너희들이 복숭아를 먹고 싶었을 거라는 건 선생님도 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희들 것이 아니고 원두막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땀 흘려 농사지으신 건데 다 익지도 않은 것을 그렇게 가서 따온 것은 ~~~~ 하고 하던 이야기를 목까지 삼키셨다. 자~~~~ 너희들이 훔친 복숭아는 너희들 스스로가 싸 놓은 똥보다 더러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들의 정당한 물건이 아니므로 정말 똥보다 더러운 것이다.라고 하시고는 한참을 서 계셨다. 마음이 숙연해진 우리들의 어깨는 자라목이 되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그 더러운 똥을 모두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려라. 기기에다 너희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순한 그것까지도 모두 던져 버리라고 하셨다. 예닐곱 명이 저지른 일 때문에 육십 오명의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한 번씩 용무도 없는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이른 복숭아 철이라 방학 전이었으니까 칠월 중순쯤이었을 게다. 그때 나는 화장실 냄새는 코를 찌르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아침 간식으로 한 개 깨물어 먹어 본 기억으로 보면 딱 먹을 만한 것을 변기에 쏟아붓다니 마음은 선혈이 낭자했다. 그 행사를 하는 동안 우리의 가난한 모습을 본 사람은 전교생 중 한 명도 없었다. 단 교장선생님께서는 신출내기 선생님인 우리 담임선생님의 위기 대처 능력을 교장실 복도에서 조용히 지켜보셨을 지도 모른다.
팔월이면 농익은 황도의 껍질을 쭉쭉 벗겨 한입 물면 쪽 하고 흐르는 물이 다디달다. 간식도 부족하던 시절 학교 담장 너머의 발그레한 햇복숭아는 우리의 허기진 영혼 앞에 등장한 고혹적인 유혹이었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유혹을 퀴퀴한 화장실 변기에 쏟아붓게 한 담임선생님의 생각은 그 이후로 내 인생의 지침이 되었다. 훔친 물건은 내 똥보다 더럽다. 교육자란 어떤 모습 이어야 하는가 하고 복숭아의 달콤한 육수가 팔꿈치까지 흐르는 팔월의 단상에 이 글을 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