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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Feb 26. 2016

버들피리

보릿고개

  내 집 대문을 나서면 바로 시내가 흐른다.  언덕에는 물싸리가 봄이면 새하얗게 피어난다. 봄 미나리도 쏘록쏘록 ,  봄비로 물이 조금이라도 불어나면 적송 그림자가 물가에 구름처럼 피어난다. 물론 눈차리 떼도 부지런히 이리저리 쏘다닌다. 우리들이 마을 어귀를 떼 지어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 그들보다도 제일 먼저 우리를 부르는 것은 버들강아지다.  녹다만 시냇가에 얼음이 버짐 핀 마른 손톱마냥 흐르는 물을 덮고 있을 때에도 버들강아지는 벌써 솜털을 쇠 천엽을 달고 있는 듯 시커머둥둥 드러낸다ᆞ 가만  들여다보면 버들강아지의 줄기는 코끼리 등걸을 닮은 늠름한, 가죽이 탱탱하기가 방금 삶아 껍질을 까 놓은 계란만이나 하다.  햇빛에 비치기라도 하면 그 빛깔이 더 건강하다.


 오빠들이랑 같이 냇가를 쏘다니다가 어느덧 그것을 보고는  뚝 잘라 보지만 겉껍질이 하도 질겨서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 가지를 찢어 가지고는 집에서 갖고 나간 낫으로 깨끗하게 자른다. 양쪽 끝으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를 반복한다. 급기야 젓가락 만한 피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막내 오빠가 제일 잘했다. 허연 나무속을 빼내고 윗부분에 구멍을 낸다. 그리고는 입에 물고 불어 보면 방귀소리보다는 탄력이 있고 학교에서 불어오던 피리소리에 비하면 덜 정교하지만 듣기가 상당히 낭랑하다.  


 한량이라도 된 듯 모두들 입에 물고 피리불기를 하다 보면 볼거지가 터지게 아팠다.  잔해는 이내 시들었다. 집 앞 버드나무는 몇 그루 되지도 않았지만 해마다 그렇게 우리들의 놀잇감이 돼 주었다.


 얼음이 녹고 들에 나무새를 뜯으러 두어 번 가고 나면 어느덧 산속 깊은 곳에서 부엉이가 울어댄다. 그러고 나면 바쁘게 모내기가 시작되기도 하고 들판에 보리가 영글기도 한다. 그때를 보릿고개라고도 하는데   보리 대궁을 낫으로 꺾어다가 짚 불위에  올려놓으면 노르스름한 이 같이 생긴 보리가 나온다.  한 움큼 입에 넣어 씹어보면 질겅질겅 씹히는 맛이 요즘에  마이구미를 먹어 본 사람은 그것의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게다. 보리 민댕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맛볼 때쯤이면 바가지를 들고 대문 앞에서 누런 이를 드러내며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기성을 부린다.


  집안에 먹거리가 넉넉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일은 없었다. 무엇이라도 들려서 보내는 게 그 사람들에 대한  당시의 인심이었다.


 때로는 타관에서 우리 마을에 들어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때문이라고들 수근거렸는데 무슨 일인지 며칠이라도 빈집이 있을라치면 실수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화재가 나곤 했다.  자잘한 나뭇가지를 엮고  거기에 황토흙과 지푸라기 썬 것 그리고 물 섞은 것을 개서 지은 집이 태반이었다. 그러니 화재가 나면 순식간에 타 버렸다.  지붕마저 짚을 엮어 이엉을 처리한 터라 설상가상으로 불은 날개를 달았다. 그런 일은 겨울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일어났다.


 가난하고 제 살 곳이 없는 떠돌이들은 그렇게 불행한 말로를 걸었다. 어떤 사람은 지독한 화상으로 문둥병 환자  이상일만큼 험한 경우도 있었다.


 외가에 다니러 가다 보면 먼발치에 언덕이 높고 양지바른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천막(가마니 떼기)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근처에 갈 수 없었다. 어리기도 하고 여자아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했는데 거기에는 상이군인들이 산다고 했다. 일반 걸인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상이군인들은 달랐다. 동냥을 왔다가 얻어가는 것이 적거나 맘에 흡족하지 않으면 집안 토방까지 들어와서는 찝짜를 붙곤 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데 좀 산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아니꼽게 굴어도 되냐” 면서 갈고리 같은 팔을 들어서는 우리 가족을 윽박지르곤 했다. 그럴 때 우리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문에 손 구멍을 뚫고  훔쳐보곤 했다.


 공포의 시간은 엄마가 광에서 뒤주를 훑는 소리와 함께 지나갔다.


 그들만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우리네도 겨우내 양식을  열두 식구가  먹고살다 보면 봄이면 빨리 보리라도 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길 만큼 궁색했는데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허울만 기와지붕이지 부엉이가 울어대고 소쩍새가 소쩍소쩍할 적에는 우리 집도 누구네도 그저 그랬다. 그렇게 궁할 때는 산에 가서 칡을 캐다가 먹기도 했는데 암칡을 씹으면 그 속에 알이 그득했다. 알을 먹으면 배가 불러지는 것 같았지만, 웬일인지 그 계절엔 모두 다 헛헛했다.


 그래도 모내기를 하고 온 세상이 초록으로 환해지기 시작하면 산딸기도 생겨나고 머위대 나물도 있고 상추도 아욱도 나서 점점 살기가 나아진다. 거기다 보리까지 수확하면 최고의 효자가 된다. 보리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밀도 익어서 국수도  빼먹고 수제비도 해서 한 양푼 씩 비워내며  곤궁을 잊었다.


 이른 봄 차가운 시냇물 소리와 함께 불던 버들피리는 다가올 보릿고개를 아랑곳하지 않는 철없는  어린것들의 놀잇감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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