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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Mar 02. 2016

아버지와 달구지

스케이트

 

 겨울 장날이면 아버지의 달구지엔 나락 가마니가 잔뜩 실린다. 나갈 때는 짐 만 가득하지만 해 질 녘에는 아주머니들과 장바구니로 바뀌어 버린다.  

    

 그날은 저수지가 꽁꽁 언 날이었다.      


 군대 간 큰오빠가 용돈을 아껴서 사다 준 스케이트를 저수지에서 타고 있었다. 탔다는 건 약간 진실이 아니고 초보라서 연습을 하느라 이리 뒤뚱 저리 뒤뚱 연속으로 엉덩방아를 찧고 있을 때였다. 땀만 나고 바지는 얼음에 젖어 질척이는 고달픈 신세였다. 그때  먼발치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니겠지 하고 무심코 쳐다보니 아버지의 손사래가 보였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먹기가 어려웠지만 평소 아버지의 실루엣이 떠오르니 그 뜻이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했다. 지금 하는 짓을 멈추고 곧장 내게로 오라는 신호다. 겁먹고 달려가 보니 달구지에는 아주머니들이 피난민처럼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빼곡히 앉아 있었다.     


 “얼른 타라.”

 그리고는 달구지는 미끄러지듯 집으로 꾸역꾸역 걸어갔다.     


 이제 막 스케이트를 배우고 있는 나에게 왜 집으로 가자고 하셨을까. 예컨대 그것은 말만 한 여학생이 그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저수지에서 뛰노는 것이 아버지는 맘에 들지 않으신 게다. 당신 딸만큼은 다소곳하고 얌전하게 잘 커서 시집 잘 가는 게 바람이셨는가 싶다.

그래서 큰오빠가 귀하게 사다 준 스케이트는 그날로 녹이 슬기 시작했고 빨간색 티셔츠는 그냥 아무 때나 입었다. 군대에 있으면서 귀여운 동생에게 주려고 큰 맘먹고 사다 준 오빠의 맘은 그대로 묵사발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겨울이면 연하장을 그려서 친구에게 보내고 이모한테나 여기저기 편지도 쓰고 그러던 나의 소일거리는 다시 그런 일로 한정되었다.      


 장날이 아닌 평일에 날이 푹하다 싶으면 아버지는 양지 끝에서 달구지도 손 보고 봄에 쓸 보습이나 여러 가지 농기구 등을 단속했다.  아버지의 봄맞이는 그런 식으로 사부작사부작 진행이 되어갔다. 아버지는 건강하고 부지런했다. 훌륭한 농군임에는 틀림이 없어  땀 흘려 일하였지만 우린 가족이 많았다. 땀에 절게 일했지만, 늦가을 추수가 끝나갈 무렵이면 아버지와 엄마는 밤마다 한숨이었다. 어느 곗돈은 어떻고 애들 학비는 또 어찌어찌하고 하면서 하루도 배부르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곗돈이란 계모임에서 가장 먼저 타고 그다음부터 고리를 내는 그런 형태를 말한다. 없는 형편이라 그럴 수밖에 다른 방법이 따로 있을 리 없는 아버지는 고달플 뿐이었다.      


 고육지책으로 소를 기르게 되었는데 황금 알을 기대하며 여러 마리를 사 오긴 했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은 꼭 막차였다. 송아지를 어미 소로 길러 내다 팔 때면 다시 소 값이 송아지 값으로 내려 버리고, 마늘도 일 년 내내 키워 놓으면 몇 푼 안 주고 장사꾼이 트럭으로 한차 싣고 달아나 버렸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맨 날 고생만 했다. 내 친구네는 생강이 한 가마에 십 만원이면 그것을 굴속에 저장했다가 봄에 내다 판단다. 그러면 그것이 세 배가 되어서 삼십 만원에 팔 수 있다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런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봄까지 불어나는 이자가 더 많아 애만 탔다.      


 난 결심했다.  난 커서 절대로 누구한테 돈을 빌리지 않겠다고.     


 그렇지만 아버지의 지난한 나날들도 다 그렇게 고달프기 만한 것은 아니었다. 겨울날 삼한사온이 분명해 따사로운 햇살이 사랑채 쪽 마당에 비칠 때면 광 속에 있는 당신이 사용하는 농기구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내내 손질할 때는 아주 그것에 쏙 빠진다. 엔지니어가 된 셈이다. 그렇게 포근한 날엔 앞산에 즐비한 키 큰 소나무에 산만큼 쌓인 눈들이 후루룩 후루룩 떨어져 내렸다. 덤불을 이룬 신우대에 쌓인 눈이 녹을 때에는 이파리가 동치미 위에 덮인 대나무 잎사귀와 닮아서 뾰족뾰족 파랬다.      


 겨울이 다 가고 시냇물이 찰찰 거리면 봄은 동네 어귀까지 와서는 아지랑이를 드리운다.      


 아직 새로이 피어나는 봄 같은 딸아이가 위험한 저수지에서 그것도 남학생들이 더 많은 데에서 말처럼 뛰노는 것이 당신이 그토록 소처럼 일하는 이유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그날 나는 달구지에 실려 집으로 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들녘 기계가 모를 심는 광경을 바라보노라면 허벅지까지 올려 부친 아버지의 건강한 다리가 떠오른다. 그리운 아버지는 달구지와 미루나무 사이로 그림처럼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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