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모자와 가방
밤사이 내린 비로 땅은 젖었고, 하늘은 어제의 맑음은 사라지고 먼지로 덮인 듯 뿌옇다. 겨울이 깊었고 조만간 봄이 오겠거니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겨울 동안 그저 날이 추워지니까 남들이 하는 김장도하고 동치미가 맛있게 익을 때쯤이면 고구마도 쪄서 곁들여 맛있게 먹기도 했다. 그렇던 동치미가 똑 떨어지면 김치 냉장고에서 시지 않을 만큼 맛든 김치를 꺼내
겨울의 풍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먼데 나들이가 줄어든 겨울은 아무래도 집안에서의 시간이 많다.
동지에는 팥죽을 끓이고 눈이 내리면 호박죽을 만들고 홍시를 얼려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처럼 먹는다 해도 겨울은 길다.
그래서 사이사이 틈을 내서 보드라운 모자도 떠 보고, 잡는 느낌이 튼실한 가방을 떠보기도 했다.
모자는 캐시미어로 떴고,
가방은 코마얀에 모헤어를 섞어서 따뜻하고 도톰한 감이 있게 했다. 몇 년간 뜨개질을 하면서 강하게 가방 뜨는 게 즐거워졌다. 어쩌면 전문가 수준이랄까. 주부로 살다 보니 빨래를 널려고 옷걸이를 준비했는데 그게 다 널고 났을 때 딱 떨어지면 은근한 쾌감이 있다. 그것처럼 가방을 뜰 때도 맘에 드는 실배합이나 뜨다가 어느 정도의 실이 들겠다, 라벨은 뭐가 어울리겠다, 손잡이 길이는 이 정도가 좋겠다를 짐작해 보다가 작품이 생각 외로 만족스러울 때면 빨래 옷걸이의 딱 떨어지는 그 기분과 같은 기쁨이 있다.
집돌이로 사는 겨울.
나만의 작품을 만들면서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는 순간순간들이 참말로 좋다.
어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올 때에도 몇 줄 뜨고, 또 세탁기 돌려놓고 짬이 날 때도 몇 줄, 살다가 혹여 나쁜 생각이나 잡생각이 나서 나를 성가시게 할 때도 몇 줄 뜨다 보면
시름도 사라지고 이것이 완성되면 뭘 어찌어찌해야지 하는 궁리로 몸에서 남모르는 에너지가 생겨난다.
최근에 동대문에 가봤더니 가방에 단추 대신 가죽 부자재가 생겨 그걸 주문했다. 언제 다나 싶었는데 딸과 카페에서 있게 되어 딸은 책을 보고, 난 바늘꾸러미를 싸 가지고 와 가죽 단추를 달면서 차를 마셨다.
겨울이 내내 있을 것만 같더니 일월 일일부터 새해가 시작되고, 무심히 지내다가 잠깐 고개 들어보니까 어느덧 중순.
이렇듯 후딱 지나가는 세월 앞에서 한 땀 한 땀 곱씹어 가는 나의 날들이 바람직한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스스로 만든 모자를 쓰고, 또 가방을 들어보면 그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일 것 같다.
가방아~
네가 있어 좋구나.
모자야 네가 있어 참 따뜻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