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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Mar 03. 2017

점퍼 하나가 29,000원

부족하다는 것

 친구들과 하는 공부가 있다. 공부는 명목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사는 이야기도 하고 자랑도 하고 그러면서 산다. 그날도 한 주간 잘 지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면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참 집중했고 잘 마무리가 되었다. 선생님은 집에 가시고 우리끼리 아직 더 남은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 친구가 자기가 입고 온 점퍼를 거론했다.

 " 있잖아. 내가 다니는 옷가게에서 90% 할인을 하길래 칠만 얼마에 엄마한테 옷을 사다 드렸더니 아주 따뜻하다고 좋아하셔. 그래서 그 가게에 다른 것도 좋은 게 있나 하고 가봤잖아.  글쎄 그런데 억울하게도 지난번 가격보다 더 싼 29,000원에 똑같은 걸 파는 거야. 단박에 그 자리서 하나 더 샀어. 이 옷 한 번 입어 볼래?"

 " 응. 한 번 입어보자. 어. 맞네. 등이 후둣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나도 하나 사야겠다. 정말 희한하다. 어떻게 점퍼가 하나에 29,000원일 수가 있지. 얘. 근데 지퍼가 좀 이상하지 않니? "

 " 응. 그거는 요령껏 올리면 돼."

 " 그래. 그럼 정말로 하나 사야겠다."


 수업을 마치고 반찬거리가 필요해서 친구 셋이서 마트에 갔다.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산에 운동하러 간다던 좀 전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 그 옷 사러 왔는데 사다 줄까? "  " 응. 그래."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도 "내 것도 사다 줘." 그런다. 시장을 얼추 보고 간식을 먹으려는데 그 친구가 왔다. 점퍼를 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교복처럼 세 사람이 다 29,000원짜리 옷을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이력이야 어찌 됐든 다음날 모임에 새 옷이니까 입고 나가려니 남편이 그 옷 또 샀냐고 묻는다. 친구가 사줬다고 후다닥 거짓말을 해버렸다. 친구 누구냐고 해서 ㅇ ㅇ 친구라고 또 둘러 댔다. 자세히 보더니 그 옷 양면인가 봐 뒤집어 입으면 더 예쁘겠어. 그런다.  "야 신난다. 정말 양면이네."


  운동 끝나고 모임에 가려고 그 옷을 차려입고 나갔다. 가는 내내 등이 따뜻하고 배도 두툼한 게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 하던 대로 운동을 마치고 나땀이 나서 인지 아직 남은 삭풍이 목을 더듬었다. 그 사이 지퍼를 목까지 쓱 올렸다. 잠시 은행에 들렀더니 답답해 지퍼가 내리고 싶어 졌다. 드디어 문제의 지퍼는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랴. 모임에 늦으면 미안하니까 물린 지퍼를 달고 일행을 만났다. 다른 때 같으면 말도 못 할 텐데 워낙 싼 가격에 산 물건이라 이실직고를 할 수가 있었다. 자초지종을 듣고나더니  그중 한 언니가 한참 실랑이를 하더니 지퍼를 내려 주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조심해서 올리라고 했다.


 지퍼를 제대로 올리고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다음 날도 그 점퍼를 입고 오랜만에 만난 다른 친구들에게도 점퍼 자랑을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자기도 남편하고 사러 가겠다고 그런다. 난 흥이 나서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운동 회원 중 한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색감도 좋고 예쁘다고 말해 주어 속으로 들뜬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어제도 간절기에 입기 좋게 모자에 털이 없는 그 사랑스러운 점퍼를 입고 문화의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친구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데 갑자기 그 지퍼님이 또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뭐라고 말도 못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 어렵게 옷을 벗어서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여태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흠을 보이면 안 돼. 그리고 내가 선택한 건데 고쳐서 써야지' 하고 한 땀 한 땀 옷감이 지퍼에 물리지 않게 꿰매어 갔다. 힘이 들어 탁자에 꾹꾹 눌러하려니 바늘이 하나 뚝 부러지기도 하고 손가락이 찔려 피가 나기도 했지만, 끝까지 말끔하게 완성했다. 하던 김에 양면이라서 속감이 겉으로 드러나는 끝도 잘 접어서 손을 봤더니 완벽한 내 옷이 되었다.

                        

새로 바느질한  지퍼



                    솜털 80%

                    거위털 20%

                    생산지는 한국은 아니고

                    생산연도는 1년 4개월 전



 칠십원 상당의 가격표를 달고 시장에 선을 보였지만, 팔꿈치. 지퍼. 또는 유통과정의 어려움 등등으로 내게로 온 이 점퍼는 은근슬쩍 나의 애착물이 되었다. 단단하게 예를 갖춘 이 옷을 입고 내일은 옷을 사다 준 친구 일행을 만나러 가려고 한다. 나의 이러저러한 일들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잘나고 똑똑하다고 자랑해댈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점퍼와 친해지면서 요 며칠 사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

큰 꿈을 가지고 그 옷을 만들었을 생산자의 입장

공짜로 줄 수는 없고 얼른 팔아 치워야 했을 유통하는 사람들의 입장

소비자로서 불편을 감수하다가 그냥 내다 버리거나 방치했을 수도 있지만, 잘 고쳐보고 만져보고 더 보완해서 진짜 내 것으로 만들어버린 나의 입장.


 입춘도 지나고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어도 몸의 온도가 내려가서인지 정국이 쓸쓸해서인지 아직도 냉기가 쏙쏙 들어오는 요즈음 내게 선물처럼 다가온 29,000원짜리 점퍼는 이제 지퍼도 물리지 않고 끝도 단정해졌다.  사뭇 외출이 즐거워지는 이유는 내 속으로 뿌듯한 자랑거리가 있기도 하고 또한 온몸이 다 포근하여서이기도 하다. 더 기쁜 까닭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값비싼 물건이 아니어서 내 맘대로 이리 손대고 저리도 손댈 수 있는 말미가 있다는 점이다. 세상천지에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가 않은 참에 그 점퍼는 나에게 맘대로 해도  되게끔 여유를 준단 말씀이지.


 그러고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흡사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 같다. 내 본디의 색깔은 가지고 있으되 다소의 부족한 점이 있손 치더라도 주눅 들지 말라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가 만지고 보살펴주고 싶어 자꾸만 다가설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정작 완벽한 사람보다 더 사랑받고 더 자주 찾게 되사람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는지. 그러니 그저 생긴 대로 살며 때때로 이 사람 저 사람의 도움도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면그런대로 멋진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29,000원짜리 점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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