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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Feb 13. 2017

달빛 창가

ㅎㅎㅎ



 아버님 생신은 보름이 일주일쯤 지나 서다. 아이들이 방학이기도 해서 설날에  시댁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겨울 나들이를 한다. 퇴근한 남편과 출발해 서울서 다섯 시간을 달리다 보면 밤 한시나 돼서야  마을 어귀에 다다른다.  



 차가  헤드라이트로 골목을 비추면 여름내 무성했던 담장의 호박 덩굴은 쪼그라들어서 새까맣게  쩍 붙어 있다.  그 덕에 시멘트  블록이 견디나 싶게도 말이다. 졸음 가득한 부모님께 절을 하고  이내 우리도 잠자리에 든다.   우리가 자는 사랑방에 불을 넣으신지가 얼마  안 되는지 방바닥이 따뜻해지기 전까지는 기분이 말똥말똥하다.



 여독으로 고단한 며느리는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고 꿀잠에 빠져 있자면 어머님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아버님의 헛기침으로 날이 샌다.  아버님의 생신이니까 맛있는 건 천지다.  읍내에 사시는 솜씨 좋은 동서 형님은 우리를 한껏 행복하게 해 준다. 그것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고가 숨어 있을까는 짐작도 못하게 생일상은 참 맛나다.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또 먹고 치우다 보면 다시 밤이 온다.








 주방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먹은 식혜 그릇을 닦아 엎어놓고 손에 로션이나 발라야지 하고 사랑방에 들어서면 이불을 난장판으로 깔아놓은 조카들이 구물구물하다. 육 남매가 다 모인 날이라  아이들이 다닥다닥 많다.  밤이 이슥해지기도 하고 이야기꾼인 내가 등장하자 하나같이 달라붙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동아줄 이야기.   소금장수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곰 잡으러 간단다  등등 이야기를 꺼내지만 별반 밑천이 없는 나는 결국엔 드라큘라 이야기를 꺼내고야 만다.   벌써 몇 탕째인데도  말이다.



" 드라큘라가 관에서 나오려는데 관이 일어서는 거야.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으 으 으 으~~~~~~~~ 관 뚜껑이 열리는 거야.   드드득 드드득~~~  시커먼 옷을 입은 키가 190도 넘는 드라큘라가  긴 발을 쭉 내딛는 거야.   저벅저벅저벅~~~~    ~~~~   ~~~~. 저벅저벅저벅"  할 때는 내 손으로 조카들을 더듬으면서  말한다.   그러면 굳어있던 아이들은 움찔움찔하면서 머리끝까지 소름 끼쳐했다.



  그럴 때면 스러지기 시작한  달빛이 창호지를  발라둔 창문 너머로 아스라하다. " 있잖아.   창문을 열고 드라큘라가 우리를 잡으러 오는 거야.   저벅저벅 ~^~  ~^~ ~^~."  그때 아이들의 표정은 이미 얼음공주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조차도  가슴이 두근두근  했지만 조카들은 나의 두려움  따위는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강도 높게 강도 높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내게 더 많이 밀착되며 밤이 깊을 때까지 친해졌다.



                                           

                                        


                           쌔근쌔근 아이들이

                           잠든 사이

                           달빛에 딸려 들어온

                           마른 호박잎이

                           나를 더 잠 못 들게 했다.  


 

                                             

 

           마른 호박잎 대신 수수잎을 올립니다  ~^^~




                하루 내내 시댁 잔치에

                고단하련만

                샛별이 보일 때까지

                 달빛과 시름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

                   달빛 창가에서의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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