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생신은 보름이 일주일쯤 지나 서다. 아이들이 방학이기도 해서 설날에 시댁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겨울 나들이를 한다. 퇴근한 남편과 출발해 서울서 다섯 시간을 달리다 보면 밤 한시나 돼서야 마을 어귀에 다다른다.
차가 헤드라이트로 골목을 비추면 여름내 무성했던 담장의 호박 덩굴은 쪼그라들어서 새까맣게 쩍 붙어 있다. 그 덕에 시멘트 블록이 견디나 싶게도 말이다.졸음 가득한 부모님께 절을 하고 이내 우리도 잠자리에 든다. 우리가 자는 사랑방에 불을 넣으신지가 얼마 안 되는지 방바닥이 따뜻해지기 전까지는 기분이 말똥말똥하다.
여독으로 고단한 며느리는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고 꿀잠에 빠져 있자면 어머님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아버님의 헛기침으로 날이 샌다. 아버님의 생신이니까 맛있는 건 천지다. 읍내에 사시는 솜씨 좋은 동서 형님은 우리를 한껏 행복하게 해 준다. 그것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고가 숨어 있을까는 짐작도 못하게 생일상은 참 맛나다.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또 먹고 치우다 보면 다시 밤이 온다.
주방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먹은 식혜 그릇을 닦아 엎어놓고 손에 로션이나 발라야지 하고 사랑방에 들어서면 이불을 난장판으로 깔아놓은 조카들이 구물구물하다. 육 남매가 다 모인 날이라 아이들이 다닥다닥 많다. 밤이 이슥해지기도 하고 이야기꾼인 내가 등장하자 하나같이 달라붙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동아줄 이야기. 소금장수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곰 잡으러 간단다 등등 이야기를 꺼내지만 별반 밑천이 없는 나는 결국엔 드라큘라 이야기를 꺼내고야 만다. 벌써 몇 탕째인데도 말이다.
" 드라큘라가 관에서 나오려는데 관이 일어서는 거야.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으 으 으 으~~~~~~~~ 관 뚜껑이 열리는 거야. 드드득 드드득~~~ 시커먼 옷을 입은 키가 190도 넘는 드라큘라가 긴 발을 쭉 내딛는 거야. 저벅저벅저벅~~~~ ~~~~ ~~~~. 저벅저벅저벅" 할 때는 내 손으로 조카들을 더듬으면서 말한다. 그러면 굳어있던 아이들은 움찔움찔하면서 머리끝까지 소름 끼쳐했다.
그럴 때면 스러지기 시작한 달빛이 창호지를 발라둔 창문 너머로 아스라하다. " 있잖아. 창문을 열고 드라큘라가 우리를 잡으러 오는 거야. 저벅저벅 ~^~ ~^~ ~^~." 그때 아이들의 표정은 이미 얼음공주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조차도 가슴이 두근두근 했지만 조카들은 나의 두려움 따위는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강도 높게 강도 높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내게 더 많이 밀착되며 밤이 깊을 때까지 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