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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an 20. 2017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호박 고드름



 문득 창을 보니 밤사이 눈이 와 앉아 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신년음악회를 갔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 한터라 아침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잤나 봅니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고드름이 드라큘라 이빨처럼 자라 있습니다.





지난밤 음악회의 여운이 남아 있어 집안을 이리저리 휘돌다가 베란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보나 했습니다. 고드름이 주르륵 있습니다. 얼른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진 한 컷을 찍자마자, 고드름이 한꺼번에 퍽하고 떨어져 내립니다. 11층에서 저 아래로 말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이던 베란다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조금 전 저 아래로 달아나버린 피아노 고드름은 이 시간에 어디로 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릴 때를 떠올립니다.


세상을 온통 뒤덮듯 눈이 내린 다음날에는 약속이나 한 듯 해님이 반짝 떠오릅니다. 꽁꽁 언 손으로 만들어 놓은 눈사람은 점심을 먹을 때쯤이면 행색이 초라해지기 시작합니다. 차려입었던 솔방울 단추랑 솔잎 눈썹도 떨어져 나가고 해서 나는 아쉬워서 애가 탑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붕 위에서 생겨난 고드름도 녹기 시작해 추적추적 토방 아래를 적시기 시작합니다. 금방 작은 시내를 이루고 맙니다.


 그런 날 고드름은 할아버지 적삼 앞섶에 달린 호박 단추 색을  했습니다. 초가지붕 아래에 생긴 고드름은 더 발갰습니다. 그때는 그런 고드름이 지저분하게 여겨졌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나 봅니다. 오늘 본 고드름은 어제의 흐린 하늘과 닮은 은회색입니다.  결코 맑고 투명한 형상은 아닙니다. 그 고드름이 녹아 흘러서 어디론가 갈 테고 언젠가는 강물이 될 테지요. 그러면  맑고 푸른 강물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걸까요.


대비되는 호박색 고드름과 은회색 고드름은

평화롭던 농촌의 색과 오염으로 얼룩진 도시의 색과의 대비는 아닐까요.



 


따뜻한 공간에서 잘 자란  꽃을 보면서 은회색 고드름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발견을 합니다. 그렇다고 치면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을까요.



옷을 한 겹 더 입고 집안 온도를 1도 낮춘다?

아님 냉장고의 물건을 하나 뺀다?

그렇지 않으면 세탁물도 간단한 건 내가 얼른  손으로 빨아 해치운다?



 어떤 식으로 하면 아름답고 푸른 강물을 만드는데 나도 조금쯤은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궁리해 보는 아침입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선율이 흐르고 있을 때

           새털처럼 가볍게 날던

           무희들의 춤사위는

            다가올

           새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100년도 넘지 않은 세월 동안에 호박색 고드름이 은회색으로 변하였습니다. 그것에 일조한 게 또한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떨떠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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