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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an 18. 2017

중국어 수업 없는 날

있다가 없는 것

 있다가 없는 것


있을 때는 모르다가 그 자리가 비거나

있던 친구가 어디론가 이사를 가거나

같이 살던 자식이 여행을 떠나거나


 하여간 있다가 없는 것은 나의 무릎 아래의 힘을 빼는 일이다.  수업이 없어서인지 오늘따라 힘이 빠져 창을 내다보니 미세먼지가 하늘을 잘 볼 수 없게 희뿌옇다.  밖을 나가기도 싫고 해서 엉덩이에 맥반석 방석을 깔아 놓고 그 따뜻함에 나를 의지하며 멍한 채 있다.


 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어떤 카페에서 다섯 명이 모여 앉아 중국어 공부를 해 왔었다. 물론 선생님 포함 5명이다.  점차 기억력도 떨어지고 사는 게 그저 심드렁하기만 하던 차에 친구들에게 '중국어 할 사람~~~~'하고 물었더니 생각지도 않게 다들 오케이다.  미루지 않고 득달같이 수업을 시작했다. 마침 전부터 알고 지내던 선생님께서 시간을 내주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우린 용감했다. 사실 중국어에는 성조도 있고 한자도 있고 거기다 전혀 알지 못하던 말인데 덤비다니 참 겁도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 초여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왔으니 꽤 괜찮은 만남이다 싶다.  수업방식도 어찌 보면 유치원생을 보는 것 같은 모양새지만, 나름 삶에 힘을 주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까지도 준다. 그리고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게 또한 어찌나 앙큼하게 재미났는지 모른다.


 그러는 우리 반에는 반장님이 있다. 키가 크고 날씬한 반장님은 반장님답게 수업시간 한 시간쯤 전에 "공부하러 가자." 고 편지를 보낸다. " 예. 반장!"하고 가방을 꾸려 수업에 간다.  반장님은 올 때마다 계란을 잔뜩 구워가지고 온다. 요즘엔 AI 때문인지 그 숫자가 줄긴 했지만, 그래도 반장님은 고구마랑 맛있는 간식으로 우리를 더 그 자리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 그 밖의 친구들도 열심히 공부하니까 처음 시작할 때의 무기력한 모습은 사라지고 훨씬 생생해졌다. 립스틱 색깔도 진해지고 옷차림도 더 근사하게 변해가고 있다.  선생님도 더 예뻐지시는가 싶더니 요사이 친정어머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시는 과정을 보살펴 드리느라 살이 4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지난주에 큰일을 겪으셨고 그래서 오늘 수업은 없다.


하나씩 알아져 가기도 하고

공부를 못해가서 후달리기도 하고

또 수업 끝나고 나서 사는 이야기도 더러 나누고

그러면서 우리는 더 예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오늘처럼 중국어 수업이 없는 날은 어항 안에서  유영하는 구피와 빨간 물고기. 초록 초록한 수초들이 나의 친구다.

 아마도 우리 중국어 선생님도 떠나신 엄마의 자리가 오래도록 무릎 아래의 힘을 뺄지도 모른다. 삼가 가신분의 명복을 빌며 하염없이 고개를 떨구고 계실 선생님의 어깨에 비둘기의 깃털을 보낸다. 부디 평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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