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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Mar 28. 2017

우리는 무엇을 향해 유영하는가

어제 봄비-봄 단속-


 알고 보면 뭘 배우러 다니고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그것도 모자라  잠시 시간이라도 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어디 뭐 모일 일은 없나 아니면 누구 따로 또 만날 사람은 있나를 찾아 헤맬 때가 우리에게는 있다.  물론 건강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럴 때 혹여 내 맘 안에 빈구석이 많아졌을 때가 아닌가  스스로를  진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한다


 어제는 봄비가 내렸다  삼라만상은 한줄기 내린 봄비에 그동안의 갈증을 덜어내고 상큼한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농부에게는  뿌릴 씨앗을 골라 정리하고 겨우내 묵혀 두었던 농기구를  손봐 놓는 일이 봄에 있다.



 나 같은 주부에게도  봄을 맞는 행사가 있다.



옛 어른들 김장독을 비우고  광속에  두었던 알뿌리를 꺼내서 화단에 심고  볕 좋은 날엔 솜이불을 빨랫줄에  척척 널어 거풍을 시켰다.  집안 문은 제 열고 장롱문까지 열어 제키면 봄볕은 집안 속속들이를 태우듯 파고든다.  볕이 눈부신 날엔 특별히 임신한 새댁의 얼굴에 기미가 깊었다.  아지랑이가 산등성이에서 아롱아롱 거리면 입덧이 심한 임산부는 더 자주 고단해했다. 그때는 임신한 부인네들이 많던 시대였다.  이렇듯 봄 풍경이 기지개를 켤 때면 몸도 나른하고  무엇인지 모르는 해롱해롱한  상태가 있었다.


 올해처럼 겨울이 길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매주마다 광화문광장에 모이는 인파와 뉴스에서 떠드는 나라님에 대한 원망과 한숨소리 이런 것으로 얼룩진 이번 겨울은 임산부의 입덧보다 거북하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었다.


 3년 묵은 배를 바다에서 건져 올린다고  방송에서 연일  큰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나는 조용히 집안일을 해 나갔다.  김치냉장고에 있는 묵은 김치통을 씻어  맑은 물을 채워 두었다가  비워서 볕에 말리고  홍갓이 나왔길래 배추를  사다가 절여서 새로 김치 아홉 포기를 담갔다. 황사가  없는 날에는 환기도 자주 시키고 제라늄  넝쿨이 생겨나 꽃대도 세워주고 넘치게 자란 베란다 꽃들은 자를 건 자르고 나눠 심을 건 포기를 갈라 주고 물도 흠뻑 주었다.   거기다 우리 먹고 살 대파도 한 단 화분에 묻어 두었다.  고구마 상자며 먼지 묻은 신발들을 꺼내서   버릴 건 버리고 털 건 털고 그랬다.


 주방에는 그동안 살다 보니 짝 맞는 컵이 하나 없어 고민하다가 이번에 깨끗하고 봄스런 것으로 바꿔  보았다.   안방에도 밤에 가로등 때문에 왠지 숙면이  되지 않는듯해 암막커튼을 달았더니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수월하다.  아직 공기청정기 필터,  정수기 필터  가는 일이 남았고 식탁 옆에 있는 다용도 서랍도 열어 봐야 하고  할 일이 꾸준히 남아 있다.


 한동안, 오래도록,  갱년기라는 허무맹랑한 병고를 치르느라 이리저리 휘돌아 다니다 보니 집안 살림이 끝 간 데 없이 낡아져 있다.


새살림을 하듯

내가 지금 신혼이 된 듯

봄맞이를 하고 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장독대에 물을 뿌리고 천연 수세미로 문지른 다음

 다시 한번  두레박으로 물을 떠서 훅훅 부셔내던 어머니의 모습.   

마른행주로 항아리 항아리 마다를 햇빛처럼 닦아내던 어머니의 모습.

봄은 늘 그 말끔한 장독대에서 왔었다.


 그래야 고운 꽃님들을 맞을 때 우리도 당당할 수 있지 않으려나.


 그래서 이곳저곳  갈데없나 찾아 헤매는

 벌 나비이기보다는  

 집을 잘 단속하는

 새댁으로

 살고 있다.  

 지금

 현재.



유영하던 물고기는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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