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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Apr 03. 2017

동치미 무 된장찌개

소꿉놀이

 

 지붕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온 세상이 걸음걸이조차 소복소복 소리를 내는 한겨울이면 소영 언니네 집에는 동네 애들이 여럿 모여서 놀았다.


 소영 언니네는 동남향 집이어서  하루 종일 따뜻했다.  마당에 비해 방은 두 칸 밖에 없었고 형제도 세 명인지  네 명인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다들 외지로 나가고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소영언니와 남동생 하나가 부모님과 살았다.


 우리가 노는 방은 안방을 건너서 작은 방인데 그곳에는 고구마 퉁아리도 있고 이러저러한 살림이 있어서 상당히 비좁았다. 그래도 그 안에서 곰살곰살 놀았던 기억이 있다.  아주머니께서는 장에 가시고 나서 집이 비기라도 하면 우리는 빨간 보자기, 파란 보자기를 있는 대로 찾아 묶어 가지고 문고리에 엮어 무대를 만들었다. 노래부를 가수를 불러 내어 노래를 시키고, 청중으로 앉은 사람은 박수를 치고, 또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은 나팔바지를 입고 누구 흉내를 내는지 엉덩이를 비틀고 발을 꼬면서 웃고 떠들었다. 따뜻한 방바닥은 우리의 외투를 활활 벗겨 내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 집안에 어른들이 계시면 작은 방에서 예쁘게 글씨 쓰기, 딱지 접기 같은 걸 하고 실핀으로 머리 꾸미기도 했다.


 소영 언니네는 고구마 농사가 잘 안되는지 우리들 간식으로 나오는 고구마는 새끼 고구마였다. 아주머니께서 쬐그만한 고구마를 쪄 내오시는데 맛은 최고였다. 밤고구마였고 우리들 새끼손가락만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얇은 껍질을 기묘하게 벗기면 속살이 뽀얀 게 한입에 딱이다. 찐 고구마 그릇이 동이 나게 다 먹고 한창 놀이에 빠지다 보면 훌렁 점심때가 된다.


 소영 언니네 밥상에는 반찬이 딱 세 가지다.

배추김치

무김치

동치미 무 된장찌개


 간식은 이웃집 아이인 우리들에게도 차지가 되었지만, 점심밥은 먹으란 말씀도 못하고 너희들 그만 집으로 가라고도 할 수 없어 우리는 암묵적인 상황에서 자기 집으로 가야 했다.


 작은 방을 나와서 본 안방에 차려진 밥상은 어찌 그리도 맛이 있어 보였는지.  냄새는 또 얼 마나 군침이 돌았는지....  그 된장찌개의 새큼달달한 맛이 무슨 맛인지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 뚝배기 된장찌개는

된장, 동치미 무 채 썬 것, 멸치, 눈 속에 파묻혀 양지 끝에 뾰족이 모습을 드러낸 쪽파, 아니면 대파.


 된장 본래의 투박한 맛에 동치미 무의 새콤 빡빡한 맛, 멸치의 구수한 향기, 쪽파인지 대파인지 찌개 위에 보글보글 얹어진 하얗거나 초록이거나 하는 고명 위에 조용히 숟가락을 얹던 아저씨의 신중함을 보면서 우리는 점심시간이 한창일 때 입맛을 다시며 그 집을 나와야 했다.


 꼭 그때의 그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겨울이 깊어져 가면 동치미 무를 채 썰어서 된장찌개를 끓여 보면, 느른한 속을 확 당겨주는 맛이 참말로 깔끔하다.


 어제는 친구가 쑥과 냉이를 캐 왔다고 이 만큼을 건네준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거기에 어린 쑥을 다 넣고 된장을 풀었다. 벌써 꽃이 필 듯 억세진 냉이는 한두 뿌리만 짧게 썰어서 국이 다 끓었을 때 위에 살짝 넣고 불을 껐다. 그리고 김치 한 가지에 밥을 먹었다.  남편은 속이 확 풀린다면서 봄을 한가득 먹었다고 좋아한다.


 친구에게 잘 먹었다고 전화했더니 그러냐며 잘했다고 그런다.  쑥 냉잇국을 먹고 속이 개운해지자, 어릴 적 쳐다보기만 했던 소영 언니네 동치미 무 된장찌개가 문득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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