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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Apr 18. 2017

선유도 예찬

어루만져주기



 선유도를 사랑하게 된 것은 내게 유서 깊은 일이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어느덧 모두 다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남편은 회사에서 늦도록 근무하는 토요일 오후에 , 혼자만의 시간이 두려워 집을 나서면  한강을 따라 나도 모르게 나는 선유도에 가 있곤 했다.


 특히나  봄비가 내리는 날엔  다소 두터운 스카프를 묶고 비바람 몰아치는 선유도 다리를  건너간다.  그럴 때 우산을 드는 일은 안간힘을 쓰지 않고는  되지가 않는다.


 여름밤 교각에 비치는 불빛은 하늘빛이 까말수록 더 아름답다.


  오래도록 좋아해 오던 선유도에 벚꽃이 다 져갈  즈음 영산홍이나 휘휘 늘어진  수양버들을 보려고, 벼르고 별러 버스를 타고 갔다.  비가 봄비 치고는 후드득후드득 내리는 오후에 버스정류장에서 골뱅이처럼 돌아 들어가는  통로를 걸어서  선유도에 도착했다.


풀위의 꽃비


 빗물이 자작한 선유도 입구에는 마지막으로 앤딩을 알리는 벚꽃이 꽃비를 내리고 있었다.  밟아도  되나 어쩌나 하게 어여쁜 정경에 첫 감동이 생겨났다.   새순을 돋우는 수양버들은 연한 빛깔에  낭창낭창 유한 게 맘씨 좋고 상냥한 한  친구가 생각나게 했다. 그 친구는 참 유연하다. 그래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실은 오늘 선유도 나들이에는 샌드위치랑 김밥을  싸가기로 맘먹었는데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냥 가게 되었다.   소풍은 아니고 나의 청춘시절을  보는듯한  그곳에서 무엇을 찾아내려고 갔을까.

조팝나무

조팝나무가 하얗게 피어나고,  봄꽃이 많이 그러하듯 다홍빛 영산홍, 뽀얀 배꽃, 돌단풍의 톨통한 빛깔, 푸른 잎을 가진 황매화, 전나무의 새순, 아직 꽃은 없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인동초, 여기저기 뿌연 피부를 지닌 자작나무들, 하락하락 잎사귀를 휘날리는 귓불이 반짝이는 미루나무, 빗물의 무게를 감당하며  바람결에  흩날리는 새로 핀 단풍나무 가지의 흔들림, 간간히 놓여있는 빈 의자 위에 떨어진 꽃잎,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휘억한 강물.


 평소  보던 것들이지만,  최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병치레를 좀 하고 해서, 겨울이 길다 싶던 내게 선유도는 또 다른 숨통이 되어 주었다.



복숭아과수원


 매점을 지나니 고향마을 친정아버지 생신 때면  볼 수 있는 복숭아꽃이 작은 과수원을 보는 듯 펼쳐져 있다.  비가 그치고  남산타워까지 보이는 맑은 날에 햇살이 비친 복숭아나무는  아직 빗물에 젖어  새까맣다.  그래선지 분홍빛 꽃이  더더욱 곱다.  무엇으로 그렇게 예쁜 것을 그려낼 수 있을지.  복숭아 꽃밭 너머로 연초록 느티나무가 서 있으니 작은  복숭아 과수원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2층  카페로 올라가 아직 싹이 트지 않은 담쟁이 커튼 저 멀리로 흐르는 한강의 무표정을 도전하듯 나도 더  강단 있게 바라보며  나의  비 온 날의  봄 선유도  여정을  곱씹는다.


 내 사는 것이 덥수룩할 때 특히나  봄비가  휘리릭 꽃 설거지를 할 때면  난 버스를 타든 걸어서든 선유도에 가곤 한다.  그러면 그 안에는 신작로도 있고 타이타닉호를  탄  여배우가  가슴을 열고  치맛자락을 날릴 것 같은  버드나무가 척척 늘어진  카페 난간도 있어, 그동안 닫혀있던 가슴을 펴고 그 안에  신선하다는 그 어떤 것을 꽉꽉 채운다.  물론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는  일이 더 먼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창때는  아이들과 모닝빵에 딸기잼을  넣어 먹던 자리 ,  여름엔 맨발로 물놀이하던 징검다리, 소시지처럼 달린 부들을 보기도 하고, 신우대가 꽉 찬 울타리를 지나기도 하며,  저 한쪽에 있는 정자에도 가서 신발을 벗어놓고  한참을 앉아서  시름을  달래 보기도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그리고  겨울에까지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사진을 찍는다 하는 사람이면 한 번이라도 꼭 가 봤을 곳이 선유도이다.

쓰던 저수탱크를 그대로 살려 새롭게  만들어진 선유도 공원은 그래서 미루나무도 얼마나 높이 큰지 모른다.  사람들이 너무 예쁜 곳이라  쓰레기를 잘 버리지도 않지만, 한강과 맞닿은 선유도는 수생식물들을 다 볼 수 있는  곳으로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늘 깨끗해서 더 맘에 쏙 든다 ᆞ




쉴 수 있는 그네와 그리고~~



 아침에는 갈까 말까 쿨쿨했던 내 가슴에 새로운 기운을 준  선유도가 난 참 좋다.  내 속을 씻어주고 만져주고 채워 주는 곳.  그곳에서 놀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 오려니 지나가는 차량들의 움직임이 굉음으로 들러왔다.


  이제  다시  현실이 내게 있음에 깜짝 놀라며  두 손 불끈 쥐고  세상 앞으로 다시 나왔다.  꿈처럼 아름다운 그곳에서  나는 도움닫기를 했던 것이다.

      비가  

        그친 밤하늘엔

           반달이

              멀거니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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