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다 그만할 생각 말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자주 했던 잔소리가 있어요. "하려면 제대로 해. 사람 일 두 번 하게 하지 말고. 하기 싫으면 아예 하지 마 그냥" 엄마가 청소를 시켰는데 머리카락이 덜 밀려 있거나, 설거지를 했는데 기름이 덜 씻겨 있으면 늘 저런 식으로 잔소리를 하셨어요. 사람 일 두 번 하게 하지 말라고. 엄마는 그게 가장 싫으신가 봐요.
늘 사업은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누가 없었어요. 여수에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었어요. 어른들 대부분은 여수국가산단에 있는 기업에 다니거나, 사업을 해도 대기업의 일을 받아와 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사업을 실제로 시작해보고자 할 때 두려움이 컸어요. 어떻게 할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산업을 경험할 수 있는 회계사를 하다가 나중에 기회가 보이면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그것도 적당히 미룰 생각은 없어서 군대에서부터 공부를 했어요. 서른 전에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게 아까웠고, 특히 군대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었어요.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1차 시험을 칠 정도는 되었어요. 제가 1월에 제대를 했고 시험이 2월이었는데 정말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내용은 많고 시험은 얼마 안 남았는데 볼 때마다 내용이 새로우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습니다. 말년에 직원이 스트레스를 좀 줘서 위염도 앓고 있는 상태였고요. 그래서 제대하고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공부하고 짜증 내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역시나 한 말씀하셨습니다.
"야. 그냥 하지 마라 그렇게 하기 싫으면. 뭘 하기 싫은 걸 하고 앉아있냐."
억지로 끝까지 공부해서 시험을 치긴 했지만 떨어졌어요. 합격점과 점수차가 크게 나지 않아서 내년에 다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했던 말이 맘에 걸렸어요. 하기 싫은데 왜 하고 있지. 제가 대학에 오기 전까지 하기 싫던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딱 하나였거든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하기 싫은 공부 안 하려고' 그런데 또 하고 있자니 미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스타트업에 관련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업 포기의 기로에서는 오히려 엄마의 비슷한 말에 힘을 얻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엄마는 아마 T가 120% 정도가 나올 것 같은데, 저도 T여서 그런지 그런 말에 힘을 얻어요.
작년 말 하비픽커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추스를 겸 여수에 갔었습니다. 그때 마침 여러 회사에서 제안도 왔었고, 돈과 기회를 나쁘지 않게 준다길래 그냥 다 접고 일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얘기를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 사업을 접으려고 하고 마침 이런 제안이 와서 가서 일해보려 한다. 이 정도 연봉이면 용돈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까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그 정도 돈 벌려고 지금까지 그 개고생 했냐고.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3년은 더 일할 수 있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가 원래 하고 싶었던 거 끝까지 해보라고. 네가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 죽겠는데 도저히 못하는 상황이 오는 거 아니면 끝까지 해보라고.
남들은 왜 그런 거 하냐, 언제까지 할 거냐, 이제 그만해라, 다음 기회를 노려라 하는데 저희 어머니는 끝까지 해보라고 오히려 저를 다그치시는 모습에 참 여러 감정이 오갔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절대 내손으로 놓지는 말아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 가짐이 모여서 지금까지도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일을 하고 있어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무엇을 성취한 적이 없어요. 우리 팀원들, 엄마, 친구들 크고 작은 응원과 도움이 모여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작은 성취들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끝까지 잊지 않기 위해 글을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