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경민 Oct 28. 2023

피봇을 강요했던 투자자

혹시 그쪽도 저희 아이템을 아세요?

주간회의 기반 성과관리 시스템, 티키타카 출시와 함께,

저와 저희 팀의 경험과 이야기를 담은 웨비나를 개최합니다.

https://forms.gle/Sw58YXNVc3RTab5S9

많은 신청 바랍니다.



그래도 지난 3년간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글로벌창업사관학교까지 굵직한 정부 지원 사업과 입주 지원 프로그램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었다. 중간중간 엑셀러레이터의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는데, 멘토링 시간 내내 피봇만을 얘기하던 엑셀러레이터 대표도 만났다.


팔레트에서 하비픽커로 넘어가던 시점에 민간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모든 스타트업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그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이유는 투자금에 있다. 거기서 가르쳐주고, 엑셀러레이팅을 하는 것은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후순위 일 수밖에 없다. 일단 모든 기업은 생존을 해야만 하니까. 당시에도 해당 프로그램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말에 지원을 했었다. 그렇게 서류, 면접, 발표의 3단계를 거쳐 선발이 되었다.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된 적은 많았지만, 민간에서 주도하는 투자 프로그램에 선정된 적은 처음이었기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게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당시에도 런웨이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선정이 된 이후에는 엑셀을 돌려가며 늘어난 런웨이에 '이제 돈 걱정 없이 사업에만 집중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팀원들하고도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하지만 첫 OT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OT에서 준비한 프로그램 자체는 좋았는데, 선발된 팀들 중 '일부'에게만 투자를 할 것이고 나머지는 약 3달간의(3달 정도였던 것 같다) 프로그램에서 성장을 하면 투자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찝찝하긴 했지만, 그 일부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끝나고 동영 이사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돈을 못 받을 순 있겠다.'는 얘기를 하긴 했다. 집으로 돌아와 받을 수 있는 금액에 맞게 런웨이를 돌려보며 돈 걱정 없이 사업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기쁨을 누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돈 걱정을 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주 뒤, 엑셀러레이터 사 대표님과의 1대 1 멘토링을 진행했다. 멘토링 내용에서 이상하고 맘에 안 드는 말들 투성이었다.


첫 번째는 우리는 투자하는 '일부' 팀이 아니라는 것. 그 당시 초기창업패키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어서 그 돈으로 버티면서 3개월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했다. 원래 자금을 모집하는 게 단순히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계획한 시점에 공격적으로 지표를 올리고 성장의 모멘텀을 갖기 위해선데 그냥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계획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안은 있는지, 지금의 계획과 대안 중 어떤 것이 더 나은 방향일지에 대한 대화는 전혀 없이 버틸 수 있으니 그 돈으로 버티며 프로그램을 이수하라는 말만 했다.


두 번째는 피봇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봤을 때는 이 아이템이 안될 것 같단다.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만든 지표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도 '내가 이 시장 잘 아는데, 나도 해봤는데, 이렇게 하면 안 돼. 팀이 좋아서 뽑았으니 그냥 피봇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팀원들은 잘 알겠지만, 그리고 나와 한번이라도 대화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정말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다. 사업을 하다가 친해진 심사역 형이 '창업자들, 특히 학생창업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자기의 자아가 정말 강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너는 이상하리만치 그런 게 하나도 안 느껴진다.'라고 나를 평가했을 정도로 내 의견만 맞다고 고집부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피봇을 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무턱대로 귀를 막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와 피봇을 할 경우 방향성 등에 대해서 하지만 그게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 엑셀러레이터 사 대표가 우리 아이템에 대해 서류가 아닌 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은 건 발표 심사에서의 5분과 질의응답 5분뿐이었다. (1대 1 멘토링에서 내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본인 이야기만 했으니까) 그런데 피봇을 하라고 얘기했다. 이유는 본인이 "봤을 때" 안된다는 것이었고, 팀의 어떤 강점을 살려서 어떤 방향성으로 피봇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화가 많이 났다. 그 프로그램을 참여했을 때가 1년 8개월 동안 취미 시장에 대해 연구하고 소비자를 만나고 서비스를 만들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고작 10분 동안 이야기를 듣고 피봇을 결정하라는데 너무나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런 기본적인 예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대표라는 사람이 어디 투자사랑 1시간 이야기 나누고 오더니 팀원들에게 비전과 꿈을 제시하던 아이템을 집어던지고 다른 아이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팀원들이 그 대표를 믿을 수나 있겠는가.


어쨌든 그날로 이야기를 끝내고 (따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화를 내도 달라질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내 인생의 모토가 적은 만들지 말자니까) 일주일 뒤 다음 미팅 프로그램 날짜를 전달하는 담당자에게 정중히 프로그램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읽고 답장도 안 하더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조차 지키지 않는지) 


사업을 하면 우리에게 돈을 주는 투자자가 미묘하게 우리의 갑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들의 위치가 그러하니 우리는 자연스레 을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3년 동안 내로라하는 투자사의 심사역들, 대표들, 파트너들을 만나본 결과 진짜 제대로 된 투자자는 그런 갑을 관계를 느끼지 않게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예의를 지킨다. 그러니 이상한 투자자의 권력 놀이와 생각 없는 말들에 상처받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플러터 혐오자에서 플러터 신봉자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