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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pr 28. 2019

서른을 앞두고 작사 학원에 등록했다.

작사가 지망생이었습니다


나의 이십 대에서 드라마를 빼놓을 수 없다면, 삼십 대 초반의 삶에서는 작사를 빼놓을 수 없다. 내 나이 스물아홉부터 시작된 작사가 지망생의 삶은 지난한 3년의 시간을 거치며 작사가로 업그레이드되지 못하고, 결국 지망생에 멈춘 채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 얘기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십 대였으면 내가 시작한 도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기라도 했을 텐데, 삼십대로 진입하던 시기의 도전은 그러기엔 왠지 좀 민망했다. 된다는 보장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었기 때문에, 꼭 작사가로 데뷔해서 멋지게 소문내야지!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작사가가 되려고 돈도 많이 썼고 시간도 많이 썼으며 (이상한 표현이지만) 건강도 많이 썼는데! 이걸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서글퍼서.  짧은 글 몇 개로 엮어보려고 한다. 솔직히 이렇게 공부했으면 뭐라도 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드라마에 이어 작사에도 열정을 바쳤다. 그 열정만큼 능력이 따라주지 않은 건 유감이지만- 


아마도 내가 작사가가 되었다면 이 글은 꽤 드라마틱한 글이 되었을 거다. 그러나 그렇지 못함을 미리 고지한다. 이 글은 지극히 현실이며 실패담이다. 이런 어려움과 역경을 견디고 작사가로 데뷔 성공! 하면 참 폼날 테지만 이렇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안된다! 는 것만 보여주는 못난 글이 될 예정이다. 왜 이걸 미리 얘기하냐면 이 글을 '작사가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분이 계실까 봐...  괜히 제 발 저려서 그런다. 






스물아홉 살. 그때 나는 삶이 좀 무료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스펙터클 그 자체였던 첫 직장에 비해서 이직한 직장에서의 생활은 무난한 편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참 열심히 일했지만...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집에서 건강식으로 아무리 푸짐하게 먹어도, 기름진 반찬이 없으면 허전한 느낌. 정말 원해서 들어갔던 첫 직장과는 다르게, 어쩌다 일하게 된 곳이어서였을까. 아무리 많은 일을 소화해도 금세 허기지곤 했다. 다행히 원했던 일은 아니었어도 잘하는 일이었고, 회사 사람들도 좋아서 그냥저냥 쭉 다니고 있던 게 벌써 2년을 넘긴 시점이었다. 


그리고 곧 서른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서른을 앞둔 그 시기에는 너무나 특별한 나이!  누구나 나의 서른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라야만 한다고.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상과는 반대로 무료한 삶을 살고 있으니 뭔가를 해야 하지 않나 조급해졌다. 그저 작은 회사의 기획자로 서른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를 자극할 수 있는 것, 푹 빠져서 하고 싶은 것, 그렇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에 도전하는 패기 넘치는 나이도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게 뭘까를 고민했다. 


기본적으로 노래 들을 때 가사를 부러 찾아보는 편이었다. 누가 썼는지,  이 사람은 멜로디에 어떤 단어를, 문장을 입히는지 찾아보는 걸 좋아했다. 가사는 짧은 문장에 함축적인 표현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긴 호흡의 글에 얻어맞는 것보다 짧게 뒤통수를 탁 치고 빠지는 표현에 감정 출혈이 더 큰 편이다. 확 끌리는 가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멜로디와 그 분위기를 증폭시켜주는 글의 시너지는 정말이지 매력적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김이나 작사가가 나오는 걸 봤다. 당시 브라운 아이드 걸스, 아이유 등 인기 있는 가수의 타이틀 곡 정보에는 모두 '김이나' 석자가 쓰여 있을 정도로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전년도에 억대의 저작권료를 벌었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외모의 작사가라니!



능력도 외모도 출중한 사기 캐릭터, 김이나 작사가 (kbs 해피투게더)



아, 멋지다. 뭔가 시작하고 싶어 근질거리던 내 마음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저거다! 

시간 끌 것 없어 무작정 인터넷 검색부터 들어갔다.


Q: 작사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이나 작사가가 마음에 불 지른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나 보다. 비슷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댓글들은 다양했지만 내가 픽한 가장 현실성 있어 보이는 답변은 '학원을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작사가가 되려면 일단 데모곡을 받는 것이 필요한데, 기획사 측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곡을 주지는 않으니까. 이게 가장 어려운 점이다. 그런데 학원을 다니면 일정 과정을 거친 뒤 곡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돈을 내고 기회를 사는 것이다. 역시 모든 건 다 돈이라는 불변의 진리는 이곳에서도 통한다.






지금은 작사 학원이 훨씬 많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이름 있는 학원은 딱 두 곳이었다. 'K'와 'L'

나는 그중 강사진이 빵빵하고, 데뷔 작가가 많은 곳, 수업 체계가 잘 잡혀 있는 'L'을 택했고 바로 그다음 개강일, 학원을 방문했다. 일주일에 하루 2시간 수업을 듣는데 학원비가 월 40만 원이란 소리에 살짝 '헙'했고, 실전 데모곡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0개월이라는 말에 크게 '헉'했다. 기본적으로 400만 원을 깔고 들어가야 한단 소리였다. 그렇지만 쏘 쿨 하게 오케이 했다. 그땐 이 과정이 얼마나 길어질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400만 원 정도야 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까!

 400이면 되는 줄 알았지 그때는...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미 마음은 작사가 된 것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첫 수업을 호기롭게 들어갔는데... 무척 당황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한번 쓱 둘러봐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보였다. 다들 풋풋한 20대 초반의 얼굴들, 앞으로의 기대로 생기가 가득 넘쳤다. 심지어 뒤이어 들어오신 선생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보였다. 오 마이 갓. 그도 그럴 것이 L학원은 아이돌 노래를 위주로 작업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 특히 SM 가수들의 곡 가사가 대부분 이 학원 소속 작사가들로 채워졌다. 그러다 보니 아이돌 곡에 익숙한 연령대인 20대 초반 학생들이 주로 학원을 찾아왔다. 심지어 일찍 진로를 정했다며 온 고등학생도 있었다. 첫 수업답게 어색한 자기소개를 이어 갔고, 아니나 다를까 내 나이가 제일 많음을 확인받았다.  '저 노땅은 대체 여길 왜 왔대?'라는 의문 어린 시선은 덤이었고... 아무튼 그렇게 작사가 지망생이 되었다.


학원에서 설명해준 것처럼 초급반부터 시작해서 중급, 상급을 수료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개월이었다. 이 기간을 수료해야 실전 데모곡을 받아 공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짜리 수업은 각자 낸 과제를 학생들이 서로 합평하고 선생님이 피드백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가사를 쓰지 않으면 수업을 듣는 의미가 없었다. 월 40만 원이니까 한번 수업에 10만 원. 작사가가 되는 건 둘째치고 돈이 아까워서라도 일주일에 한 곡씩 꼬박꼬박 가사를 써서 제출해야 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작사가 그렇게 어려울 거라 생각지 못하고 덤볐다. 평소에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그거면 되는 줄 알았다. 물론 특별한 글 솜씨는 아니었지만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직업적으로도 글 쓰는 게 익숙한 사람이니까 할만할 줄 알았던 거다. 왜 가끔 작사가들이 TV에 나와 히트곡의 가사를 1시간도 안돼서 썼다고 하니까. 작사라는 건, 갑자기 영감이 파바박- 오면 순식간에 써 내려갈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아, 나는 그렇게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물론 같이 스터디하던 친구들 중 정말 몇 시간 만에 가사를 쓰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최소 필요한 시간이 꼬박 하루에서(이것도 몇 년 해서 익숙해졌을 때 얘기다.) 2-3일은 족히 걸렸다. 데모곡을 듣고 글자 수를 따거나 구성을 짜는데 필요한 시간만 해도, 초반에는 몇 시간을 잡아먹었다. 거기에 콘셉트를 떠올리는 것도, 어떤 날은 곡을 듣고 바로 좋은 콘셉트가 떠오르지만 어떤 날은 수업 전날까지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콘셉트가 정해지면 가사를 써 내려가는데 이것도 역시, 한 줄 쓸 때마다 더 좋은 표현, 단어는 없는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했다. 성격상 과제곡이라도 대충은 절대 하기 싫었고 실제로 의뢰받아한다는 생각으로 엉덩이는 무겁게, 정성은 한가득 쏟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직장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때가 남편과 한창 결혼 준비를 슬슬 시작해볼까? 할 때였다. 지금도 미련 돋게, 그때 회사를 관두고 작사에 올인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만큼 그러지 못했다. 결혼을 하기 전, 백수가 되는 건 어느 쪽으로 보나 위험한 선택이었고 그렇게 되면 작사에 기대는 바가 너무 커져 제대로 된 생활이 안될 것 같았다. 걱정 많은 내 성격에 불안함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일단 10개월을 지내보고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직장인과 작사가 지망생으로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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