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 May 28. 2019

작사가가 되려고 천만 원을 썼더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어느 공무원 학원의 광고를 보니까 학생의 불합격은 학원 책임이라며 수강료를 전액 환급해주더라. 물론 그 환급 조건에는 완강을 해야 하고 블라블라 까다롭게 이것저것 붙겠지만... 그것까진 내 알바가 아니고. 그걸 보니 내가 그동안 작사 학원에 쓴 수강료가 얼마더라. 의미 없는 계산을 해보고 너무 놀라 쓰기 시작하는 글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처음 작사가 지망생으로 발을 디딘 L학원의 한 달 수강료가 40만 원. 10개월의 필수과정을 수료하고 처음으로 실전 데모곡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40*10=400만 원이었다. 그리고 작정하고 쓰면 말이 엄청 길어지는 몇 달간의 방황을 거쳐 간 두 번째 학원은 달에 30만 원. 수강료가 저렴한 편이었으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작사가 뭔지 경험해보자고 찾는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커리큘럼이어서 두 달째에 패스. 30*2=60만 원이 들었다. 세 번째 옮긴 학원 역시 한 달 수강료는 40만 원으로 9개월 정도를 다니면서 실전 데모곡을 받았다. 40*9=360만 원. 이렇게 심플하게 학원비만 계산해보니 820만 원이 나온다. 여기에 차비나 스터디 회비 뭐 이런 자잘한 것을 포함하면... 진짜 천만 원이 우스워진다.


탕진잼


여기에서 조금 엇나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작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얼마나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왜 스트레스를 만병의 근원이라 하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위장장애를 얻었다. 만성위염과 더불어 역류성 식도염이 꽤 심해서 약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했는데 나중에는 양약은 듣지도 않고 달에 40만 원씩 주고 맞춘 한약만 약발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은 작사에 올인해야 했으니 몸을 쉬어주거나 챙길 새가 없었다. 회사에 연차를 쓰고 링거를 맞으러 가야 했고 6개월마다 위 내시경과 복부초음파도 해야 했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무엇보다 병세권(병원 세력권), 죽세권(죽집 세력권) 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작사를 그만두고 이를 회복하는데만 반년이 넘게 걸렸으니까, 난 정말 돈과 시간만 쓴 게 아니다. 거창하지만 내 몸도 다 바쳤다고!



아마도 처음부터 누군가 '너는 작사가가 되기 위해서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쓸 거고, 몸도 망가질 거고, 3년간의 청춘을 바치게 될 거야. 그렇지만 결국 작사가가 되지 못하겠지.'라고 예언해주었다면 이 도전은 절대 절대 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도전하는 걸 좋아하지만 안정적인 기반이 있어야 가능한 아이러니한 사람이니까. 분명 내가 선택했던 길이었고 열심히 했지만 지금 와서 그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 천만 원이면... 말이지. 참 할 수 있는 게 많단 말이지.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여행도 다녀올 수 있는 돈이고 사고 싶었던 가방도 지를 수 있고 또 뭘 할 수 있지?를 고민할 정도로... 






어차피 다 지난 일인데 '나는 말이야. 내 꿈을 위해서 천만 원을 투척해봤네! 누구나 그 정도는 쓰지 않나? 하하.' 쿨하면 좋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무척 촉촉해진 눈을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아 정말 돈 많이 썼네. 아깝다...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깝기는 한들 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여서 가능했던 일을 했던 거니까. 앞으로 내가 또 어떤 것에 꽂혀서 다른 도전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처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다. 스트레스는 무지하게 받았지만 참 즐거웠다. 서른에도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있단 걸 직접 느꼈고, 열 살이 어린 친구들과 한 클래스에서 공부하며 낯선 자극을 받았다. 가사를 쓰며 내가 이런 감정을 알고 있나? 놀라고 아무도 몰래 가슴속에만 묻어 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아마 작사를 하지 않았다면 나조차 모르고 넘어갔을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했다. 



그러니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오글거리긴 해도 왜 이런 건 돈으로 살 수 없다 잖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까. 난 꽤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비록 작사가로 데뷔하지 못한 지망생이었을 뿐이지만. 성공하지도 못 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런 나를 왜 한 번도 칭찬해주지 못했나 싶다. 혼자만의 실패담으로 간직하기엔 어딘가 아쉬웠는데. 이런 게 필요했던 거구나 싶다.



작사가가 되려고 노력했고, 실패했고, 비록 그걸 아까워하는 나지만... 그런 나라도 잘했다고 오늘에야 토닥토닥해본다. 나의 성공은 누군가의 실패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의 실패는 누군가의 성공이겠지 뭐! 나의 새로운 무기는 언젠가 찾을 수 있을 테고...


... 찾을 수 있겠지?






>> 나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이 땅의 많은 지망생 여러분, 모두 건승하시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