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 Jul 24. 2019

상사의 생일파티에 동원되었다

그 성대한 생일파티의 의미



그날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 일이 벅차기만 한 2년 차 직장인이었다.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주말 업무도 많았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긴장상태에, 스트레스로 점점 말라가던 시기. 그런데 그날은 예정된 주말 업무가 없었고 급히 연락 올 일도 없었기 때문에, 퇴근이 더욱이 기다려지던 그런 날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 남자 친구와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한지도 너무 오래되었던 터라 이번 주말은 정말 즐겁게 보내야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대표님이 찬물을 끼얹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일 너희 팀장 생일인 거 알지? 팀장님 생일인데 그래도 같이 파티라도 해야지.

다들 내일 시간 괜찮지?" 



꾸-궁!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서 잊을 뻔했지만, 일단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회사 상사의 생일 파티를 주말에 밖에서 한다니? 정말 창의적인 발상이었다.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우리 팀장님 생일파티를 꼭 당일에, 회사 밖에서, 직접 챙겨드리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팀장 생일 파티를 무려 주말에 챙겨라.' 지령이 내려오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물며 바로 전날 통보였다. 나도 그렇고 다른 팀원들의 토요일 시간이 괜찮을 리가 없다. 그 회사를 다니면서 일단 평일은 밤이든 새벽이든 회사가 필요로 하면 모두 반납하고 있었고 주말도 때때로 그랬다. 오랜만에 주말을 주말답게 좀 쉬어보나 했더니... 업무상의 이유도 아니고 상사의 생일파티를 하러 나오게 생겼다.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팀원들도 "싫다. 뭔 멍멍이 소리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썩은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내일 봬요." 쓸쓸히 퇴근할 뿐이었다.  

우리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회사의 일개미들이었으니까-



토요일 당일, 남자 친구와 나는 평소보다 일찍 만나 데이트를 했다. 저녁시간에 맞춰 생일 파티 장소인 이태원에 가야 하니까, 그전에 영화 보고 밥이라도 오붓하게 먹으려면 부지런해져야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인데 저녁도 같이 못 먹고 헤어져야 하다니. 그것도 상사의 생일파티 때문에! 화가 나고 분통이 터졌지만 결국 나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말했지만...나는야 오라면 가야 하는 일개미였으니까- 






대표님은 팀장의 생일 파티를 작정한 듯 성대하게 치러주었다. 무려 1차부터 3차까지. 심지어 2차 장소는 5성급 호텔 클럽이었다. 음식과 술값이 내 한 달치 월급은 되는 듯했다. 



이쯤 되니 나도 에라, 모르겠다. 그냥 즐겼다. 즐겼다기보다는 즐기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나의 토요일은 끝이 났고, 내 돈 주고 올 일은 없는 곳이니까 해주는 대로 먹고 마시고 놀았다. 그리고 그 값은 팀장의 생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축하드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생일파티는 새벽 2시가 넘어 끝이 났고 나는 내 위와 간 회복에 일요일 하루를 몽땅 날려야 했다. 그렇게 아주 몹시 소중한 나의 주말은 팀장의 생일파티와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 



대표님은 왜 그러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뭐 애초에 상식대로 굴러가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우리 팀장 위로는 이사님, 부사장님도 있었고 다른 부서 실장님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생일 땐, 회사에서 케이크 컷팅도 하지 않았는데! 아니 그들의 생일은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간 것이 더 정확하다. 팀원들의 생일? 우리끼리 케이크 하나 올려두고 노래 불러주는 게 끝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생일파티가 열려야 했던 걸까? 

회사에서 딱 한 명,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아무래도 대표님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처럼 회사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하면, 어찌 보면 작은 이벤트인 개인의 생일도 회사에선 이렇게 답해준다는 것을! 너희도 그렇게 영혼까지 갈아 넣어서 일하면 성대한 생일파티를 하사 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는 늘 준비가 되어있지만 지금 그녀 빼고는 이런 생일 파티를 열어줄 정도의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한테 직접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그녀는 자신의 24시간을 회사에, 아니 대표님께 모두 헌납하는 사람이었다. 일을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회사 입장에서 그 정도로 충성을 바치는 직원은 없었을 거고 앞으로도 없을 거란 사실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 '와, 부럽다. 나도 그녀처럼 회사에 헌신해서 꼭 이런 생일파티를 선물 받아야지!' 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일단 나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절대 이곳에서 저런 생일파티를 받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회사에서 열어주는 성대한 생일파티보다 집에서 가족들과 먹는 미역국 한 그릇에 더 행복한 사람이다. 나를 이곳에 더이상 갈아 넣고 싶지 않았고 사실 더 갈아 넣을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회사에서는 한 달에 한번,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직원들을 주인공으로 파티를 한다. 별 거 없다. 케이크 하나에 초를 꽂고, 몇 가지 스낵을 함께 준비한다. 회사에서 주는 선물은 현금 5만 원. 직원들이 함께 모여 30분 정도 생일을 축하해주고 담소를 나누다 자리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생일파티도 복지인데 회사에서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 초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의 생일파티가 딱 좋다.



회사에서 해주는 생일파티는 순수하지 않으니까. 받는 만큼 아니 그것보다 배로 갚아야 하는 게 회사이니까.


축하받고 싶은 이들에게 축하받을래요.



성대한 생일파티는 집에서 가족들과,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과 할래요.

그게 제일 마음 편해요.




정말 순수하게 직원의 행복을 위해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어주는 회사가 있다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작사가가 되려고 천만 원을 썼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