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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ug 20. 2019

내 친구가 해고되었다.

정리해고의 상처는 남은 사람에게도 있다.

"딱 1년이 되었더라구. 그동안 잘 해온 내가 장했어."

얼마 전 친구가 카톡으로 내게 전한 말이다. 이 친구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이자 직장 동료였다. 

그리고 1년 전, 우리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했다. 





끔찍하게 더웠던 작년 여름 어느 날의 퇴근 무렵, 메신저 알람이 깜빡깜빡 울렸다.

'저녁에 약속 있어? 같이 밥 먹자.' 

디자인 팀의 팀장님이었다. 우리는 다른 팀이긴 하지만 종종 저녁을 함께 먹곤 했다.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파스타 집에서 먹는 알리오 올리오가 어찌나 맛있던지, 연신 감탄하고 있는데 어쩐지 그녀가 말이 없다. 평소 말 수가 적지 않은 그녀인데 이때부터 조금 수상했다.  

"있잖아. 정리해고가 있을 거래."


아침 드라마에서 마시던 오렌지 주스를 그대로 뱉는 장면처럼, 파스타를 입에 물고 멈춰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뭔 소리야? 정리해고? 잘못들은 건가?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처럼 작은 회사에서는 정리해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리해고는 대기업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나 하는 거 아니었어? 왜... 그전에 희망퇴직 신청도 받고 그러면 퇴직금에 위로금조로 일 년 치 월급도 더해주고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장점이라고는 휴가와 사람뿐인 우리 회사에서 해고라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대표님은 늘 '밀리지 않는 월급''제 발로 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내가 자르는 경우는 없다!'를 최고의 자랑으로 여기시는 분이었다. 이렇게 빨리 못 지킬 말이었으면 왜 뱉은 건데. 나는 그걸 믿었다고.


"우리 팀에서 두 명, 기획팀에서 한 명, 마케팅에서 한 명. 총 네 명이 될 거라네."

무려 네 명이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하도 사업을 문어발 식으로 확장하길래 그냥 앓는 소리인 줄 알았다. 늘 돈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대표님이라서. 역대 최고 매출액을 달성한 해, 대표님은 더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시면서도 회사 사정이 안 좋다는 얘길 했으니까.  


"기획팀에서는 C대리가 나가게 될 거래."

C대리는 내 친구이자 동료였다. 이전 회사에서 내 후배로 들어왔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나의 친구.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지금 회사에 자리가 났을 때, 주저 없이 이 친구를 추천했다. 그렇게 회사 두 군데에서 함께 근무한 조금은 특이한 관계랄까. 우유부단하고 걱정을 달고 사는 나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이자 배울게 참 많은 똑똑한 동료라서 내가 참 좋아했다. 매일매일 회사에서 보는데도 할 말이 생겼고 그녀와 나누는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것보다 흥미진진했다. 이 친구가 있어서 회사를 다니는 게 즐거웠고 일도 더 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회사에서 나가게 될 거란다. 


잠이 올리가 없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차라리 내가 잘린다는 말을 듣는 게 덜 충격이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이 잡히질 않았다. 그동안 나는 일에 있어서는 판단을 잘하는 편이라고 자부해 왔다.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아니. 판단이든 커뮤니케이션이든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이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하얘졌다. 바보가 된 것처럼 어떤 것에도 손댈 수 없었다.


나는 C대리의 친구이자 팀장이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도 이럴 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 건지 보고 들은 바가 없었다. 읽었던 책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혼자 끙끙 앓았다. 그동안에도 늘 그래 왔듯이, C대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다만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며칠의 유예 기간이 지나고, 대표님의 호출이 왔다. 어쩌면 변동사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 처럼 연기해야 했을 뿐. 막 따져묻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이 자리는 하네마네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었고 모든 결정은 끝나 있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의 변명을 듣고 있었다. 대표님은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본인의 책임이 아닌 것 처럼 이야기 하셨다. 그럼 누구의 책임일까. 왜 나가는 사람들이 잘리는 마당에 이런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 역시 그 책임을 떠안을 자신이 없던건 마찬가지였고, 애꿎은 커피잔만 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날이면 해고 통보를 받을 C대리에게 하루 먼저 이야기해주는 것뿐이었다. 대표님은 미리 얘기하지 말아 달라 당부하셨다. 그래야 준비 없이 잘릴 수 있으니까. 준비되지 않아야 대표님이 원하는 대로, 유리 한대로 상황을 끌고 갈 수 있을 테니까.  

비록 대표님에게 맞서서 부당함을 이야기하거나 이 결정을 돌릴 수는 없었지만, 이거 하나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사실은 나 역시 너무나 피하고 싶었다. 위에 계신 상사들이 해주길 바라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친구가 아니고 그저 팀장과 팀원과의 관계였다면 입 꼭 다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친구로서의 결정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와 술을 마셨고 다음날 벌어질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더 속이 착잡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전해 들어야 하는 그녀의 심정은 감히 지금까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쨌든 내일 통보가 갈 것이고 나는 내 친구가 그에 조금이라도 대비할 수 있길 바랐다. 당황스러움에 아무 말 못 하고 챙길 것도 못 챙기고 나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고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 일하고 있다. 사람은 줄었지만 일의 양이 줄어들진 않았다.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면서 그렇게 회사는 일 년을 버텨냈다. 매출도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가끔 궁금하다. 대표님은 작년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으실까. 오히려 잘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계실까.


그리고 C대리, 그녀와 다시 연락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저히 먼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잘 지내?' '우리 봐야지!' 이런 문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졌을지도 불안했다. 나를 많이 미워할 수도 있고 앞으로 보고 싶지 않아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보면 어쨌든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 테니... 


그렇게 매일 함께 밥 먹고 커피 마시던 친구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 욕해줄 사람도 이제 없었다. 마음이 공허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녀의 빈자리를 보며 실감했다. 

그 후로 반년이 지나서야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에 보란 듯이 입사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만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딱 1년이 되었더라구. 그동안 잘 해온 내가 장했어."

얼마 전, 그녀가 보내온 카톡에 어떤 답장을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됐다. 이 말이 좋을까 저 말이 좋을까 카톡 하나 보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내가 잘 모르는 그녀의 1년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까 소심해졌다. 결국, 곁에 있으면 박수 쳐주고 싶다고 했다. 사실은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혼자 또 너무 무거운 마음인 게 티 날까 봐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났고 그녀는 다시 자신의 일을 잘해나가고 있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조만간 만나서 밀린 수다를 해결할 참이다. 

잘 모르겠다. 앞으로 그녀와 나의 관계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더 좋아질지도 혹은 그렇게는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는 그녀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냥, 저 카톡을 받고 이제는 그래야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1년 간 어디둘 곳 없던 마음을 이제라도 이 글에 털어 놓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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