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과의 면담을 앞두고 쓰는 글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3.6.9법칙. 직장인들에게 위기와 기회는 입사후, 3. 6. 9년에 한번씩 온다는 법칙이다. 머피의 법칙이나 하인리히 법칙처럼 우리가 살면서 알게 되는 법칙은 무수히 많지만 이만큼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법칙이 있을까? 사실 매일 매일 솟구치는 퇴사욕구를 견디며 사는 것이 이 시대 직장인들의 숙명인데, 이런 주기를 따지는게 무슨 의민가 싶기도 하지만. 뭐.저런 법칙 하나라도 있어야 '그래 내가 이상한게 아니지. 원래 다 저런거니까 법칙이 다 생긴 거야.' 하고 위기의 나를 토닥토닥해줄 수라도 있지 않을까.
물론 모두에게 3.6.9법칙이 찰떡이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나에게는? 말해 뭐해.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지.
먼저 첫 직장을 딱 3년차에 그만 뒀다. 흔히들 3년차에 겪는 슬럼프 이런건 아니었고 그저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버틸 수가 없어서 그만뒀다. 계속 이 일을 하면서 살 자신이 없었다. 아직 20대였기에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 과다한 업무량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를 참을 수 있었지만 당장 30대만 되도 못해먹을 것 같았다. 밤 늦게 퇴근해 집에 오면, 맥주 한 캔을 마셔야만 잠이 오는 날이 잦아졌다. 맨 정신에는 몇시간을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을 때 즈음, 다신 이쪽을 돌아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들어온 지금 직장에서도 3.6.9는 피해갈 수 없었다. 1, 2년차에는 전 회사와 비교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낯설었지만 금방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러니 자신감도 빠르게 붙었다. 일을 혼자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니 업무 스케쥴도 내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더이상 상사가 퇴근 시간 후 잡아놓은 회의 때문에 강제 야근할 필요가 없었고 주말에 작가님이 회의하자고 부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극단적인 케이스를 경험해보고 들어온 회사라 그런지 모든 게 다 좋았다. 당연히 일의 능률도 올라갔다. 워라밸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원래 타고난 소(음메,우는 소)에 가까운데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하다보니 점점 휴농기에도 홀로 밭을 가는 소가 되어갔다.
그렇게 평탄하게 시간은 흘러가고, 그동안 열심히 밭 일을 한 소는 예전보다 더 넓은 면적의 밭을 더 짧은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스킬을 터득하게 된다. 남는 시간에는 자꾸 잡생각이 들고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소 주제에 익숙함과 더불어 불안함을 알게된 거다. 그렇다. 슬럼프가 와버렸다. 일이 익숙해지면서 회사 내에서의 안정감은 생겼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하게 될까. 중소기업은 오래 다녀도 40이라는데, 아니 그때까지 다닐 수나 있으면 다행이게. 분명 언제까지나 회사에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때 내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을 치게 되지만 그땐 서른이 특별해야 되는 줄 알았다.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새로운 도전이 절실했다. 이제 퇴근 후 시간과 주말도 온전히 내 것인데 못할 것 없었다. 그렇게 작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사와 회사 일을 병행하는 건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시간도 시간인데 스트레스라는 복병을 만나 고군분투했다. 회사에서는 일하느라, 퇴근 후엔 작사 하느라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스트레스가 왜 만병의 근원으로 명성을 떨치는지 몸소 경험하게 된다. 내 소중한 소화기관들이 제 기능이 뭔지를 잊고 일할 생각도 없어진 것 같을 때 즈음, 그 핑계로 직장을 그만두면 어떨까 고민하게 된다. 뭐랄까. 새로운 꿈을 위해서 직장을 관둔다는 것. 어쩐지 반항적이고 낭만적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굉장한 무모함의 장착은 덤이고.
그렇게 직장생활 6년 차, 퇴사의 위기를 다시 맞이한다.
다행인건 퇴사의 위기와 결혼이라는 기회가 함께 찾아왔다는 거다. 일과 작사 두개를 병행하기 힘들어서 퇴사를 생각했는데 결혼 준비까지 겹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퇴사라는 선택지가 제일 먼저 날아갔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는 반항도 낭만도 튕겨져 나갈 뿐. 결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이리저리 머리 굴려봐도 회사가 필요했다. 결혼을 생각하니까 오히려 세상 물정에 번쩍 눈뜨게 되었다고 할까. 거진 6개월간을 고민하던 퇴사는 이렇게 현실과의 저울질 끝에 참 쉽게도 나가 떨어져버렸다. 특별한 서른살은 잠시 미뤄두고 나는 다시 그저 그런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어느덧 9년차가 됐다. 사회 초년생 때만 해도 10년차 직장인들이 너무 거대해보이면서도 왜 그렇게 직장인으로 오래 살아가는 걸까 의문이었는데 살아보니 그 의문은 풀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살아가다보니 10년이 되는 거 더라. 그리고 직장인으로 10년을 산다는 것은 제일 쉬운 길인 것 같지만 제일 힘든 일이기도 하다. 9년차에 잠시 서서 앞으로 가야할 까마득한 길을 바라보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현재 나는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잠시 뒤에 있을 대표님과의 면담을 앞두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며칠 고민한 일도 아니고 혼자 고민한 일도 아닌데 정말 잘 모르겠다. 일을 잠시 쉬고 싶은 것인지 이 일 자체가 하기 싫어진 건지, 이 회사를 영영 떠나고 싶은 것인지 역시 모르겠다. 그래서 퇴사로 결정이 날지 또 그냥 어제처럼 자리에 앉아 그렇게 몇년을 더 버티게 될지도 전혀 모르겠다.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닌 나의 일인데 왜 모르겠는지를 모르겠지만...
9년차가 됐으니 더 쉬울 줄 알았다. 경험치라는게 이럴 때 쓰는 거 아닌가. 어떤 결정을 해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어렵다. 3년 차의 나는 앞으로 충분히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자심감으로 무작정 그만두는 게 가능했고 6년 차에는 덧셈 뺄셈 끝에 현상유지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이런 중대사에 이토록 무책임한지 모르겠으나... 모르겠다. 글로 쓰다보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음, 역시 아니었다. 여전히 모르겠다.
문득 궁금해졌다. 3.6.9...그리고 그 다음은? 12년, 15년, 이렇게 3년 주기로 이 법칙은 계속 이어지는 걸까? 혹은 그저 그 다음은 없는 걸까. 아마도 그때부턴 정말 내던져지는 거구나 싶다.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 길을 걷는 시기를 지나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시기로 들어서는 거구나. 지금도 이렇게 어려운데 그 시기는 또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당장 걱정할 일을 앞에 두고 미래의 걱정부터 해보는 나도 참 문제다.
그래서 저 법칙은 대체 누가 만든겁니까?
정말 귀신같다. 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