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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Jul 19. 2019

제주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의 하루

혼자, 제주도 투어 이용기 (1)



올해 2월, 혼자 제주도를 다녀왔다. 

회사의 새 분기가 시작되기 전에 털어야 할 휴가가 있었고 남편은 휴가를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여느 날처럼, 서울에 있으면서 휴가를 탕진하기엔 왠지 아깝고… 어쩔 수 없이(?) 혼자라도 씩씩하게 제주도에 다녀오겠다고 통보했다. 3박 4일간의 일정이었고 하루는 일일투어를 신청했다. 남편 없이는 뚜벅이 신세인 내가 가장 방문하고 싶은 두 곳이 차 없이 이동이 어려웠는데, 마침 그 투어 코스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바랐던 것,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었고 그 일상의 8할은 매일 비슷비슷한 직장 생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름 소심한 성격이라, 평소라면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일인데... 그땐 그랬다. 막연하게 그런 시간이 나에게 필요한 시기라고 느꼈던 것 같다.



이동도 편리하고 낯선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일일투어. 비록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그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신청 완료! 



 이렇게 적은 짐을 들고 떠난 적은 처음






그리하여 순조로운 제주 여행 중 맞이한 대망의 투어 디데이. 

무슨 근자감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당연히 나처럼 혼자 온 여행객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투어 차량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둘, 둘…  다들 짝이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커플이 없다는 것? 아무리 혼밥과 혼영을 잘하는 나지만 혼자 투어는 조금 뻘쭘했다. 마치 가이드가 내 일행인 양 가이드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설명도 어찌나 열심히 들었는지. 하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느라 뒷목이 다 아파왔다. 



제주 스위스마을에서의 자유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볼 게 없어서 혼자 어슬렁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어찌해야 하나... 카페라도 들어가야 하나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주변에서 딸과 사진을 찍고 있던 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갈 건데 , 같이 차 한잔 할래요?"



티는 안 냈지만 마치 첫 데이트 신청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난 지 두 시간도 안된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테이블. 몹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그래서 그 순간이 재밌었다. 사실 이 나이 먹고서는 그런 어색함을 느낄 일이 거의 없다. 나는 벌써 6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고, 늘 익숙한 얼굴들과 매일 밥을 먹고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런 무료함이 수시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들에, 이런 낯설음이 주는 어색함은 반갑기까지 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가 좀 어려웠다. 어떤 말이 실례가 되지 않을지... 특히 요즘은 서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무례함'으로 전달되기 쉬운 세상이니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왠지 잘 보이고 싶었다. 오늘 하루 동안 웃는 얼굴로 함께 하고 싶었으니까. 어버버버 생각하고 있는 사이 먼저 질문을 받았다.



"혼자 왔어요?"

질문에 감격해서 입에 모터를 달고 TMI를 남발했다. '남편은 휴가를 쓰지 못해서 혼자 왔다. 빛의 벙커와 종달리 서점에 꼭 가고 싶었는데 뚜벅이라 고민하고 있던 차에 투어를 발견했다. 혼자 온 사람이 더 있을 줄 알았는데 혼자여서 당황했다 등등...'

그래도 TMI에 순기능이 있었다. 대화거리가 많아진다는 것. 간단한 대화가 오가면서 그쪽에서는 내가 결혼한 유부녀라는 것에 놀라셨고 나는 둘의 사이가 모녀지간이 아니라는 것에 놀랐다. 



"20대인 줄 알았어요. 결혼한 것처럼 안 보여서..."

"저도 모녀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더불어 쓰면서도 약간 민망한 칭찬들이 오고 갔다.(;;) 원래 낯선 만남에는 칭찬이 뒤따르는 법이니까. 그러나 나는 정말 모녀라고 하기에는 아이는 고등학생인데 엄마가 너무 젊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모녀가 아니라면, 어떤 사이길래 둘이서 여행을 오는 걸까? 

이모? 숙모? 어쨌든 어미'모'로 연결된 혈연지간 아닐까 싶은데. 



"저는 선생님이고 제자예요." 

아아, 나는 정말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나 보다. 선생님과 제자가 여행이 가능하구나! 그렇지만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관계였다. 내가 선생님과 단둘이 여행을? 상상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차를 마시며 지켜본 둘의 모습은 모녀 관계라고 착각한 내가 당연할 만큼 참 따뜻했고 가까웠다. 보통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타인끼리 가지게 되는 경계선이 있기 마련인데, 그 선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이 제자를 바라보는 눈에는 애정이 뚝뚝 흘렀고, 제자가 선생님을 보는 눈에는 감사함과 존경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순간, 이미 투어의 흥미는 제주도의 아름다움 뭐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대화들과 잘 어울렸던 스위스마을의 한 카페



'선생님과 제자'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찰나, 자유시간은 끝났고 다시 투어 차량에 탑승할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이제는 고픈 배를 채워줄 때였다. 가이드는 원래 점심 먹을 때 추천 맛집을 몇 곳 알려주고 자유시간을 준다고 했다. 보통 일행 별로 움직이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에...

'아,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구나.'  

제주에 와서 계속 혼밥이었지만 어쩐지 시무룩해지던 찰나,

그날 투어 동지분들은 흔쾌히 다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해주셨다. 

럭키!  





돼지 두루치기 집에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내 옆에 자리한 두 명은 제주도민들이었다. 제주도민들이 왜 돈을 들여 제주도 투어를 하죠?라고 모두들 의아해했는데, 이들은 벌써 이 투어를 두 번째 참여한다고 했다. 

하긴... 나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며 나도 한국이 처음이던가? 싶을 정도로 낯선 곳들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일상을 보내는 공간과 여행의 눈으로 보는 공간은 많이 다르다. 



이 두 명의 제주도민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한 명은 제주 토박이였고 한 명은 서울러에서 제주도민이 된 지 1년이 갓 넘었단다. 아, 나에게 있는 백가지 정도의 로망 중 한 가지였다. 도시를 떠나 제주도에서 살아보기.

서울에서 이주한 제주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더 이상 앞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흑돼지 두루치기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너무 궁금했다.  제주도에서의 삶은 서울에서보다 좋은지. 내 시끄러운 속도 제주도에서 살면 잠잠해질 수 있을지... 



나는 현실적인 것들을 차치하고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현실적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겠지.


"일단 여기는 월세로 집세를 내야 해서 월세 부담이 있어요. (제주에는 전세가 없다.)

저는 직업이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올 수 있었지만, 제주에는 회사가 많지 않아요."


사실 몰랐던 이야기는 아니다. 알고 있으니 로망이었던 거고 그저 입버릇처럼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 얘기하는 거지 실현할 생각은 없었을지도... 그래도 뼈 맞았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식사에 집중했다. 

동네 분들만 온다는 식당에서 제주도 흑돼지 두루치기에, 제주도 막걸리를 곁들이며, 제주도민들과 함께 식사를 하니까!

어쩐지 제주에 사는 느낌을 1.11111% 정도 받는 것 같아서...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때만큼은 나도 제주도민!



부른 배의 투어객들을 실은 밴이 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2년 전에 신랑과 함께 왔을 때 본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그때만 해도 카페가 2-3곳뿐이었는데 지금은 도로변이 모두 카페였다. 당시에 자리 눈치 싸움이 심했던 핫한 카페는 겉에서 봐도 빈자리가 많았다. 대신 옆으로 자리 잡은 신상 카페에 손님들이 바글거렸다. 



가이드가 이쪽 동네 땅값이 무지하게 올랐다고 설명해준다. 서울이든 제주도든 같구나. 반복되는 상황, 다음에 제주를 오게 되면 이곳에 텅 빈 카페들만 보이려나. 또 다른 동네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이곳은 점점 가라앉겠지.   

그래도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제주만큼은 슬로우-슬로우-이길 바란다. 

그게 어울리는 곳이니까! 






- (2)편에 이어집니다.





>> 이따금 여행 가는 걸 좋아하지만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어딘가에 적어보는 건 처음이네요. 저도 낯선 글이라 이렇게 자질구레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써도 되려나 싶은데... 저에겐 즐거운 기억이라 꼭 남겨보고 싶었어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적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말이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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